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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1 00:55

[뉴욕] 5. 블루노트 재즈바

조회 수 2649 추천 수 0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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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사람이 모이는 도시이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트렌드, 새로운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곳.

돈이 먼저일까, 사람이 먼저일까.

예술가가 먼저일까, 관객이 먼저일까.

아무튼 뉴욕은 돈이, 사람이, 예술가들이, 관객들이 모이는 도시다.

 

 

뉴욕에 가기 전 인터넷으로 'Blue Note'에서 공연하는 'Avishai Cohen Trio' 연주를 예매했다. 재즈레이블 중 가장 유명한 레이블 중 하나인 '블루노트'는 재즈클럽 체인을 가지고 있어서 몇 해 전에는 서울에도 문을 열었었는데 입장료가 터무니 없이 비싼 8 만원 선이어서 관객을 끌지 못하고 결국은 문을 닫고 말았다. 어쨌거나 뉴욕의 블루노트라면 최고의 재즈 연주자들이 서는 무대일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이 있었다.

 

Avishai Cohen Trio는 피아노, 드럼, 베이스의 전형적인 트리오 구성이었고, 예매할 때 알아본 바에 의하면 밴드의 리더 Avishai Cohen은 이스라엘 출신의 베이시스트로서 세계 100 대 재즈 베이시스트의 반열에 드는 꽤 유명한 연주자였다.

 

 

블루노트는 넓지는 않았지만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연주를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블루노트의 cover charge(입장료)는 $25 으로 비싸지 않았고, 맥주와 함께 즐긴 닭날개 요리도 아주 맛있었다.

 

첫 곡부터 심상치않은 분위기에 바로 필받은 나는 각 파트 연주자가 순서를 바꾸어 즉흥연주를 할 때마다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열광하고 있었는데 세번 째 곡 쯤에선가 드러머 마크 쥘리아니가 즉흥연주로 드럼을 때려대기 시작했다.

 

마크 쥘리아니의 드럼 솔로가 1분 쯤 계속되자 점점 내 숨이 차 오르기 시작해서 이제 그만 연주해 주었으면 싶을 정도로 주체못할 지경이 되었는데도 마크 쥘리아니는 드러밍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나는 눈물을 주르르 쏟아 내고 말았다.

 

마크 쥘리아니의 드럼은 내가 들어 본 드럼 솔로 연주 중 가장 창의적이어서 2 분 여 동안 드럼만 치는데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잘게 쪼갠 리듬은 들어본 리듬 중에 가장 창의적이었고, 강약과 완급의 조절, 섬세함과 파워를 모두 갖춘 그의 드럼 연주를 들으면서 내가 음악을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나 하는 결론에까지 도달할 정도였다.

  

 

귀도 레니의 그림 <베아트리체> 앞에서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경험을 했다는 스탕달의 일화에서 유래한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것이 있던가. 내가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린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는데, 1년 전쯤엔가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손열음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 번>으로 혼을 빼 놓은 뒤 앵콜로 연주한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들었을 때가 처음이었다.

 

그 때는 내가 2 년 전 Paris에 갔을 때의 기억과 쇼팽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촉매로 작용했었다. 심장은 조국땅 폴란드로 보내도록 유언을 남기고 파리에 잠든 쇼팽의 묘비에 들렀을 때, 나는 쇼팽의 묘비 앞에 30 분 동안 쪼그려 앉아 <빗방울 전주곡>을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그 날 비가 오진 않았지만 나는 무척 비를 기다렸더랬다.

 

병약했던 쇼팽이 요양삼아 마요르카 섬에서 '조르주 상드'와 지내던 시절에 <빗방울 전주곡>을 작곡했는데 아마도 쇼팽은 마요르카 섬에서 행복감과 죽음에의 공포를 동시에 느꼈었던 것 같다. 쇼팽이 마요르카 섬에서 작곡하고, 손열음이 연주한 <빗방울 전주곡>에는 분명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손열음의 앵콜 연주가 끝나자 바로 인터미션이었는데 다들 자리를 털고 커피 마시러 나가는 통에 나는 공연 팜플렛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쇼팽 스페셜리스트였던 피아니스트 코르토는 쇼팽의 곡에 자신의 감상메모를 덧붙인 것으로 유명한데 코르토가 <빗방울 전주곡> 연주 노트에 '그러나 죽음이 여기 있다. 어두운 그늘에'란 메모를 남겼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그 이후였다.  

 

 

이번 블루노트에서의 경험은 아무런 감정의 촉매 작용이 없었고 순전히 그들의 창의적인 화성과 리듬에 농락당한 것이었다. 나는 그 세번째 곡 이후로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박수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흘러 넘치려는 감정 덩어리를 가슴 속에서 터지지 않게 꾹 누르고 있어야만 해서 물리적으로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의 연주를 직접 들려줄 수 없고 나의 표현력은 '섬세하고도 치열한 리듬과 창조적인 화성의 전개, 진지하면서도 여유있는 무대 매너' 정도에 그치는 한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눈물 고백이라도 하게 된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아비샤이 코헨 트리오>의 음반과 드러머 <마크 쥘리아니>가 세션으로 참가한 음반을 보이는대로 사 왔지만 그때 그 공연장에서의 연주는 평생 경험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같이 간 영주 씨는 테이블 맞은 편에 앉아 무대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어서 공연 중에는 대화를 나누지 못했는데, 공연이 끝나자마자 뉴욕에서 본 연주 중 가장 좋았다는 감상을 나눴다. 블루노트에 간 날은 뉴욕에서 6 일째 되던 날이었기 때문에 이미 재즈바를 10 군데 정도 들렀을 때였다.

 

블루노트에서의 공연은 뉴욕에서뿐만 아니라 내가 최근 5 년 이내에 본 공연 중 최고였다고 느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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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수 2007.11.11 00:55
    이정원님은 모습뿐만 아니라 글에서도 세련됨이 느껴집니다. 하하하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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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수 2007.11.11 00:55
    올리는 글의 배경이 되는 장소마다 아내분과 함께 하셨네요^^ 섬세한 그림과 사진 설명 감사합니다. 생각해 보니 그간 미술간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자연 풍경만 관찰하던 저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사진과 그림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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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윤호 2007.11.11 00:55
    덕분에 뉴욕 여행 자알~~~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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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동환 2007.11.11 00:55
    저역시 덕분에 뉴욕여행 잘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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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원 2007.11.11 00:55
    소립님은 항상 하하하 웃으셔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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