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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타샤를 읽고...

by 전주 posted Jan 1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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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의문투성이다.  

고요하고 잠잠해 보이는 일상속에서 늘 물음표를 던진다. 

미네르바가 지은 죄가 뭘까? 거짓말은 뭐지? 검찰, 애네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농부를 생각하면 이 겨울은 좀 더 추워야 한다고 생각하다 도시 빈민자들을 생각하면 이 겨울은 따뜻해야 한다고 생각을 고쳐 먹는 순간 우리에게 영원한 것은 무엇일까? 뜬금없이 자문한다. 부장의 회의소집에 다시 일상에 매몰되는 것도 잠시 출장 갔다 세차 안해 놓으면 책임을 묻는다는 말에 업무와 관련된 본질적인 회의를 해본적이 언제인지 생각하다, 상사들은 왜 가면갈수록 돌아이가 되가지? 의문을 갖는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왜 공격하는 거야? 나쁜 놈들, 혼자말을 한다. 저 우는 아이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어쩌냐? 순간 옆의 동료는 내게 결혼을 묻는다. 그래. 난 왜 여태껏 사랑을 못하고 있는 거지? 사랑 과잉생산의 시대에 난 왜 아직도 애정결핍환자처럼 이러고 있지?   



'우리는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우리를 찌르는 그런 종류의 책들만을 읽어야 한다고 난 생각한다.

만일 우리가 읽고 있는 책들이 머리를 치는 일격으로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 책을 뭣 때문에 읽지 ? 책이란, 우리 내부의 얼어 붙은 바다를 깨기 위한 도끼가 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나의 믿음이다" (카프카)

 


그렇다. 카프카의 믿음, 그것은 곧 나의 믿음이었다.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 이유는 한 번도 소설이 나의 머리를 도끼로 내려 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스타샤란 소설을 읽는다는 내 블로그 글을 본 후배는 그래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소설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하지만 그녀가 내게 나스타샤가 당신의 머리를 내리쳤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그렇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야기속에 내재된 인식의 힘, 그리고 깊은 사유와 성찰....

소설을 읽으며 이렇게 많은 글에 밑줄을 그어 본 책은 아마 나스타샤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조지는 우리에게 수 많은 삶의 의문에 답을 해 주었다. 난 그대로 나스타샤였고. 그의 사랑하는 연인이었다.


'어딘가에 나 자신을 매몰시키고 싶었던' 열망, 그러나 젊음은 늘 열망과 고통을 함께 동반해 우리를 괴롭혔다. 여름 한 낮의 태양처럼 눈이 부시고 뜨겁기만 했다. 금방 지쳤고, 자신의 열망에 상처만 입었다. 

'한 참을 살고, 한 참을 운전해도 기껏 몇주가 흐를 뿐인' 막막함.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구하지 않고 사는 오늘의 삶을 견딜 수 없어'하는 확실치 않은 갈망 사이에서 우린 늘 존재의 이유를 묻곤 했다.



이분법적 사고는 어떠했나? 정신과 육체의 문제, 영혼과 물질사이의 갈등은 심심하면 화두처럼 던져졌다. 

허영과 허위의식을 경멸하면서도 왜 난 끊임없이 그 세계로 진입하려고 하는지도 의문이었으며 이중적인 내 삶의 태도 역시 환멸스러웠다. 그러나 의문은 마침표가 아니었다. 도돌이표처럼 끊임없이 되물어지는 물음에 답을 찾고 있을 때 조지는 그의 상처를 보여주며 나스타샤인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이 덧없고 외로운 삶을 지탱하기 위해 가장 먼저 구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공감과 이해"라고.... "소통과 이해와 공감에 의해 그 존재 의의를 지탱해 나간다고"


사랑할 대상이 없어 사랑을 하지 못한다고 난 늘 외쳤다. 그러자 그는 "사랑은 주권의 포기이며, 권리의 양도"인데 너 그럴 수 있어? 라고 힐난했다. "상처 입지 않기 위해 누구나 사랑하지 않았고, 모두에게 선의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언제라도 도망갈 준비"를 한건 너 아냐? 라고 ...



난 당황스러웠다. "살기보다는 관찰하려 했고 느끼기 보다는 느낌을 이해하려 했을 뿐"이라는 그의 말은 내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사랑은 분석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감과 일치다" 하지만. 난 분석했다. 그 누구도 그 분석의 틀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었다. 난 사랑에 겁을 먹고 있었다. "행복과 기쁨조차도 두려웠다"는 조지의 고백은 내 마음처럼 아팠다.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는데 하나는 사랑에 대한 열망이고,

둘은 지식에 대한 탐구이며, 셋은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이다. (러셀)

 



내 심장을 떨리게 하고, 내 머리를 내리치게 하는 러셀의 좌우명. 촘스키도 이 글에 반해 그의 연구실에 붙여 놓았다는 글. 소설 나스타샤엔 이 모든 열망이 함축되어 있었다. 캐나다에 살면서 느꼈던 다민족 사람들과의 사랑. 그 끊임없는 철학적 문제에 대해 그가 말한 명철한 생각들, '그의 세계관을 알면 미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그의 생각은 고스란히 책에서도 느껴졌다.

기독교와 유대교의 문제, 민족과 인종, 성별을 뛰어 넘는 인간애. 그는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 철학에 대한 사랑, 예술에 대한 사랑, 사유에 대한 사랑, 인식에 대한 사랑, 이해와 공감이 가득한 사랑. 죽음까지 뛰어 넘는 사랑.



"운명이 우리를 괴롭혔다 해도 내 기억은 운명에 저항하고 있다"

나스타샤는 죽지 않았다. 조지가 "추억으로 행복한 이상, 그의 기억이 운명에 저항하고 있는 이상" 나스타샤는 그의 곁에 있다.  

책을 읽은 우리 모두가 이제 당신의 나스타샤라고.

그리고 나스타샤처럼 우리 역시 당신 때문에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다.



(* 어제 선생님께 책을 선물로 받은 회원입니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간단한 리뷰를 적어보았습니다. 어제 귀한 시간을 내어 주신 선생님과 함께 해 주신 많은 백북스 회원분들께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