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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필립오딘’과 ‘필라델피아’와 ‘조영창의 12첼리스트’ 콘서트...

by 김세영 posted Dec 0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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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필립오딘’과 ‘필라델피아’와 ‘조영창의 12첼리스트’ 콘서트...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이끌려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그 곡이 끝날때까지 쪼그리고 앉아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주머니에 돈이 없던 저는 음악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님이 별로 없던 서너평짜리 조그만 레코드가게에 뛰어 들어가 음악의 제목과 연주자를 물었고, 다음에 꼭 사러 오겠다고 다짐을 하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었습니다.

며칠 뒤 용돈을 모아 산 그 LP레코드 판은 CD플레이어만 있고 턴테이블도 없는 저의 집에 아직 잘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첼로라는 악기와 저의 설레이는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때는 그 곡에 관한 정보도 전혀 모른채 막연하게 음악에 이끌렸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곡은 Jean-Philippe Audin 이라는 유명한 첼리스트가 연주한 Toute Une Vie(일생)곡이었고 영화 닥터지바고에도 삽입되었던 곡이었습니다.



어제 조영창선생님과 11명의 제자들이 함께하는 연주회에 갔었습니다.

그동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나 독주연주로 첼로를 만난 적은 있었지만 12개의 첼로들로만  이루어진 스승과 제자가 엮어내는 하모니에 대한 기대는 주말을 들뜨게 했습니다.

‘에이즈 예방을 위한 콘서트’라는 타이틀답게 입구에서는 에이즈 예방 홍보를 위한 붉은리본배지를 천원의 후원금을 받고 달아주고 있었습니다.  팜플렛을 받고 조영창선생님의 베토벤 전곡 음반을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하고, 예쁜 붉은 리본 배지를 달고 회원님들을 기다렸습니다. 반가운 얼굴들이 하나둘 모이고, 교수님께서 마련해 주신 특별석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오프닝 멘트를 직접하러 나오신 조영창 선생님께서는 에이즈로 사망한 배우 록허드슨과 퀸의 보컬 프레드 머큐리를 말씀하시며 ‘AIDS'는 “이제 다 살았구나”라는 절망이 아니라 “이제 다시 생각하자.” “이제 다시 살아보자”라는 희망의 메시지로 바꾸어 보자고 말씀하시더군요. 에이즈는 손가락질 받고 저주받은 천형이 아니라 고통받는 영혼을 함께 치유해야할 질병으로 보자는 말씀이셨습니다. 제약회사에서 마련해준 콘서트에 대한 의례적인 답례가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그분의 진심같이 느껴져 내심 흐믓했습니다.



에이즈란 병이 혈액이나 수유 기타 주사기에 의한 감염보다는 성접촉에 의한 감염이나 동성애가 원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저역시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런 편견을 조금이나마 깰 수 있었던 것은 톰행크스가 주연했던 영화 “필라델피아”를 통해서 였습니다. 에이즈에 걸린 후 모든 것을 잃고 절망하며 사회의 편견과 싸우던 변호사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그의 인간적인 고통이 음악과 함께 절실하게 다가왔었습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The Street of Philadelphia’나 닐영의 ‘Philadelphia’도 좋았지만 자신의 변호를 맡은 동료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들려오던 마리아 칼라스의 오페라 아리아에 눈물을 흘리며 온몸으로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던 톰행크스의 연기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오페라 ‘안드리아 셰니에’(Andrea Chenier)에서 막달레나의 아리아로 불리는 ‘어머니는 돌아가시고’(La Mamma Morta)가 바로 그 곡인데요. 죽어가는 자신의 육체보다 사회적인 고립과 사람들의 손가락질로 고통스런 영혼의 죽음을 먼저 맞이해야 했던 그의 절망이 절실하게 느껴지게 했던 곡이었습니다. 그때의 전율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드디어 연주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바하,구노,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가 아닌 피첸하겐의 ‘아베마리아’...

오펜바흐의 ‘쟈클린의 눈물’이 아닌 ‘4중주’....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가 아닌 ‘즉흥곡’...

프랑소와, 포퍼, Z.에릭이라는 낯선 작곡가의 ‘누가 새를 쏘았는가’같은 재미있는 곡들...

심준호라는 어린 친구가 연주하는 짧지만 인상적이었던 ‘왕벌의 비행’ 그리고 지미헨드릭스의 자유로운 영혼을 표현하려는 듯 연주자들이 모두 우스꽝스러운 가발과 모자와 가면을 쓰고 연주했던 ‘퍼플 헤이즈’까지...

첼로라는 악기 하나로만 이루어진 연주였지만 첼로를 활로 연주하는 것 이외에 현을 퉁기고, 활로 첼로의 몸통을 두드리고, 심지어 탱고를 연주할때는 파트너와 춤을 추듯 악기를 빙그르 돌리는 퍼포먼스까지 하면서 그들은 첼로라는 악기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온갖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 또 하나 권총이라는 센스있는 깜짝소품까지 준비해 청중들에게 기분좋은 웃음을 선사했던  007시리즈의 테마곡도 앙콜곡으로 있었습니다. 



이번 연주회는 유명 작곡가의 또다른 곡들을 접할 수 있고, 평소 듣지 못했던 낯선 작곡가들의 새로운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자리였습니다. 연주가 끝난후 제자들을 일일이 안아주시며 볼에 뽀뽀를 해주시던 조영창선생님의 모습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남자 제자들에게는 한볼에 여자 제자들에게든 양볼에 해주시더군요. *^^*

다음에도 좋은 연주회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연주회에 초대해주신 임해경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08. 11.30.  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