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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 박경철의 직격인터뷰 <9>


교사 정년 퇴임한 시인 김용택


[중앙일보]


환경 공부? 그냥 좋아서 해, 책 읽고 놀지 그게 요즘 일이야












축담 갈라진 틈에 민들레가 용케 뿌리를 내렸다. 시인의 게으름인가. 시인이 아껴서인가. [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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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을 즐기는 이에게 섬진강은 ‘재첩국과 참게탕’으로, 풍류를 아는 이에게 섬진강은 ‘산수유와 벚꽃 길’로, 문화를 사랑하는 이에게 섬진강은 ‘시인 김용택’으로 등치되곤 한다. 시인은 이제 섬진강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제 ‘그가 떠난 섬진강은 섬진강이 아니다’라는 시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의 어떤 시인도 그 자체로서 한 지역의 대표성을 이토록 장악한 적은 없다. 이를 두고 혀 밑에 도낏자루를 숨긴 사람들은 ‘김용택이 섬진강을 팔아먹었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진짜 그가 섬진강을 팔아먹어 버렸는지, 만약 그렇다면 그 강은 대체 어디로, 얼마에 팔려갔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전북 임실군 덕치면에 있는 시인의 고향집을 찾아보았다.

1. 길은 있지만 문(門)은 없었다

문(門)은 사람이 낸다. 문은 소통이 아니라 구별의 도구다. 문은 열리면 길이 되고 닫히면 벽이 된다. 문은 안과 밖을 나누고, 우리와 너희를 가르며,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는 시작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땅에 담장을 두르고 문을 닫는다. 문의 안쪽에는 식구(食口)가 있고, 바깥쪽에는 타인(他人)이 산다. 그런데 시인의 집에는 문이 없다. 아무나 내키면 발을 들여도 된다는 신호다. 마을 입구에 시인이 심었다는 느티나무에서 집 앞 진입로를 거치면 누구나 시인의 집 마당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니 시인의 집에서는 비로소 문이 달린 안방 문지방까지는 누구나 한 식구인 셈이다.


Q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면, 그만큼 미워하는 사람도 같이 늘기 마련인데요, 그런데 선생님에게는 왜 그 흔한 안티조차 별로 없을까요.

잘 모르겠네요. 없기야 왜 없겠어요…. 다만 근본이 시골 초등학교 교사다 보니 적은 거죠. 평생 평교사로 살았으니, 뭐 출세나 다른 길을 선택하려는 것이 보이지 않았을 거고, 그러니 누가 신경을 쓰겠어요? 교장이나 뭐 그런 걸 하려 했으면 몰라도….

Q 그래도 선생님은 보통의 시골 초등학교 교사와는 비교도 안 되는 ‘문화 권력’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여쭤 보는 건데 이제 퇴임도 하셨으니 다른 사회적인 역할을 하실 의향은 없나요?

나는 분수를 아는 사람이에요. 제 분수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고, 그것을 벗어나면 스스로 불행해지는 사람이지요.

Q 시인이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어느 날 시가 내게 다가왔다’. 뭐 이런 건가요?

처음에 학교 선생이 되니까 오전수업을 하고 나면 할 일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월부 책을 사서 읽었죠. 공부는 삶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돌아오는 건데, 읽다 보니 우리 아버지·어머니 사회가 예전과 다르게 다가와요. 새롭게 다가오는 재미를 느낀 거죠. 그래서 책을 더 보고 생각을 키웠지요. 무엇을 대충 보지 않고 자세히 보니 자꾸 생각이 커져요. 그러다 보니 그걸 정리하고 싶어졌고, 그래서 일기·편지·쪽지 형식으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시가 되었어요.

Q 시를 따로 공부한 건 아니지만, 독서의 영향으로 세상을 저절로 시인의 눈으로 보게 되었다는 뜻인가요?

어느 날 보니 내가 시를 쓰고 있더군요. 처음에는 ‘이게 시일까?’ 의심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게 ‘시’냐고 어디 물어볼 데가 있나. 어쨌건 그때는 그냥 계속 써지더라고요. 나중에야 이게 ‘시’인가보다 싶어 다시 읽어보니까 감동이 ‘딱’ 생기는 거라…. 시는 자기 감동이 가장 중요해요. 그 후에 스스로 완성도가 있다고 생각한 시를 골라 잡지사에 보냈더니 나중에 연락이 왔어요, 시집에 실어주겠다는 거예요.

Q 스스로 시에 재능이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이 잘사는 방법은 자기가 잘사는 길을 가는 것이겠죠. 그러고 보면 지금 이게 내가 잘사는 길이다 싶으니, 책 읽고 글 쓰는 재주가 어디에 숨어 있었겠죠? 문학을 배운 적은 없어요, 자연에서 배웠죠, 자연은 시시때때로 주는 말이 많아요.

Q ‘자연이 주는 말은 어떤 말’인지요?

음…. 뭐랄까. 젊을 때는 자연이 너무 많은 말을 주니까 헤맸어요. 이 시기가 자연과의 갈등 시기지. 소쩍새가 울어도 왜 우나 싶고, 물소리가 들려도 가슴을 흔들어 버리는 그런 시기야. 그러다가 자연이 자연으로 돌아가고 편안해지는 시기가 오는 거야. 그냥 소쩍새는 소쩍새로, 강은 강으로 보이고 들리는 거지. 이 순간이 아마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을 얻은 순간이었을 거야.

(시인이 인터뷰어에게 마음을 열었다. 이제 굳이 경칭을 쓰지도 않았고 질문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사사로운 세계를 편안하게 들려주었다. 아무리 봐도 시인은 그의 시처럼 그냥 태생적인 섬진강 사람이었다.)

Q ‘섬진강 1’에 나오는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이런 구절들은 자연을 착취하는 자들에 대한 일종의 분노가 아닐까요? 선생님 시에서 분노의 대상은 무엇입니까.

나는 시대적 분노는 있어도, 사사로운 분노는 없어요. 농민의 착취에 분노하고, 그 착취하는 사회 구조에 분노한 것이지. 나는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의 그 아버지·어머니도 가르쳤어. 그런데 그들은 가난한 농민이었지. 희망이 없어요. 그래서 다들 서울로 갔지. 그러나 서울 가면 거기서 뿌리내릴 사회 기반이 없어 거기서도 밀려나요. 그러다가 가정이 파탄 나고, 아이들은 다시 고향에 있는 할아버지·할머니에게로 맡겨지지. 아이들을 떠맡은 그 할아버지·할머니가 내 친구 또래였지. 가난이 이렇게 대물림되는 거야. 가난이 약속된 땅이 이런 농촌이지. 그런 걸 보며 얼마나 고통스럽고 비통하겠어요. 하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또 시인이야.

Q 선생님의 시는 비판을 하되 ‘익명 비판’을 한다는 폄훼도 있어요. 예를 들면 ‘몹쓸 정치인들’이라고 하지 ‘몹쓸 ○○○’와 같은 비판을 피해 서정성의 그림자 뒤에서 그저 박수만 받으려 한다는 거죠.

사사로운 비판은 시인의 몫이 아니야. 정치인들이 할 일이지. 나는 사적으로 좌·우, 진보·보수의 대립도 정권을 잡기 위해 자기 주장을 하는 정치인들의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해요. 시대착오적이지. 21세기적 사고는 문화·환경에 대한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요구하는데, 시인의 역할은 고치고 대안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드러내는 것이지. 거기까지가 시인의 역할이야.

Q.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통제 불능이야.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에서 통제를 못하는 것은 위험한데, 파탄으로 가는 거지. 이미 위험한 길로 들어섰어. 새로운 시대정신이 도래했는데 우리만 외면하고 무시하고 짓밟고 있는 거지.

Q 새로운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생명정신이지. 예를 들면 기후 변화, 생태 순환, 환경 지향과 같은 거예요. 세계가 그렇게 변하는데 우리는 기껏 토목공사나 하려고 들지요. 나는 우리가 뒤처지고 있다는 것을 실체적 위협으로 느껴요.











징검다리에 걸터앉아 강물에 발을 담그자 김용택 시인의 표정이 어린아이처럼 맑아진다. 영락없는 ‘어른아이’다.

2.친구의 아들을, 그리고 다시 그 아들과 딸을 가르치며

Q 일생을 한 지역에서 일선 교사로 근무하다가 퇴임하셨는데, 우리의 교육은 어떻습니까.

심각한 문제지.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 학생·부모·교사 간의 갈등은 조절하지 못할 만큼 커지고 파탄 상태지. 특히 교사 집단은 자기 개혁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어. 세상에 무심한 거지. 사회와 세계에 일어난 일에 가장 반응하지 않는 집단이 교사들이지. 교장 중심의 교육이 교사 집단을 가장 민주화가 안 된 후진 집단으로 만든 것이고. 시키는 대로 잘하는 교사들이 교육을 맡고 있으면 교육에 처방이 없어.

Q 교사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교육’, 그건 주입식 교육 같은 것인가요?

성과 중심이지, 성적 지상이고. 창의성 교육과는 거리가 멀어. 요즘 학생들이 시험은 잘 봐. 혼자는 무지 똑똑해. 그러니 나중에 회사에서 일은 잘할 거야, 그런데 문제는 살 줄을 몰라. 인간이 없어. 더불어 살지를 못해. 그러면 인생이 없어지지. 지금 봐, 아이들이 모두 사라졌어. 전부 공부하러 가고 없어. 놀이터에도 없고 운동장에도 없고 전부 학원에만 있어.

Q 그렇다고 섬진강 아이들처럼 그런 아이들과 달리 자라면, 그 아이들의 미래는 행복해 질까요? 경쟁에서 도태될 게 뻔한데, 그래도 ‘행복하다, 행복하다’하면서 살아야 하는 건가요?

그 아이들은 자기 선택과는 무관하게 여기 있는 아이들이야. 사회에서 힘들겠지. 하지만 사람은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 받는 영향이 있어. 어떤 선생으로부터 받았건 나름의 영향이 잠재돼 있을 테지. 경쟁하며 힘들더라도 혹은 경쟁에서 지더라도, 감성적인 부분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 믿어.

(시인의 눈이 자꾸 하늘에 머물렀다. 친구의 손자·손녀까지 보듬고 가르쳤지만, 정작 그 아이들이 맞닥뜨릴 세상에 대해서는 그저 삶에 긍정적인 영향이 미치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것이, 교사로서 시인의 한계였고 고통이었다.)

Q 그동안 문단 활동은 별로 안 했는데 이젠 하셔야죠?

문단은 이념적 편 가르기를 많이 해, 나는 관심이 없어. 나무·풀을 자세히 보면 죽으려는 놈, 살려는 놈이 보이잖아. 이런 눈으로 문단을 보면 진짜 조잔해. 내가 좋아하는 문인들이 한국작가회의에 많기는 하지만 그동안은 나는 모임에 가려도 갈 수가 없었지. 선생이 애들 가르쳐야지 어딜 다녀? 그러니 자연히 문단에서 한 발 떨어질 수 있었고, 그게 편하더라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야, 좋은 사람 만나면 되지 뭘 만날 모여.

Q 퇴임 뒤 갑작스레 온 변화가 두렵지 않으세요?

원하든 아니든 이젠 환경이 바뀌었지. 월요일 하루는 서울 가서 기후 변화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해. 회당 세 시간씩 10주 과정인데, 우선 그걸 하고 내려와 그 다음에는 강연도 하고, 아니면 이렇게 놀지. 처음에는 갑자기 그만두면 어쩌나 싶었는데, 노니까 아주 좋아. 노는 일이야말로 일생에서 가장 해볼 만한 일 같아. 만날 놀고 하루 공부하고.

Q 그럼 앞으로는 기후 문제, 넓게는 환경 문제에 매진하실 작정인가요?

그건 아니야, 그냥 좋아서 하는 거야. 누가 ‘저 친구도 운동하러 나서려나’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야. 공부해 보니 아주 재미있어.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이렇게 공부만 하는 거지.

Q 그럼 공부와 강연 말고는 만날 노세요? 뭐하고 노시는데요?

뭐 요새도 8시에 자고 4시에 일어나는데 운동하고 신문 보고 뒷산에 갔다 오면 오전이 후딱 가. 나는 신문을 아주 열심히 읽거든. 나는 신문 안 읽는 사람은 상종하기 싫어. 신문을 안 보고 공무원이나 교사 하면 일을 잘 못해요. 이슈를 모르니 말이에요. 신문을 안 보니 시골 작은 동네 공무원들도, ‘어떡하면 땅이나 뒤집어 팔까, 어디 콘크리트 깔아서 관광지나 만들어 볼까’ 그런 궁리를 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하루에 몇 시간씩 신문 읽고 책 읽고 놀아.

Q 당연하겠지만 섬진강, 넓게는 자연을 개발하는 일에는 부정적이시죠?

아유, 지겨워! 정말 말도 못하지, 행정광역화 그거 빨리 해야 해요. 도는 없애고 큰 시로 묶어야 해. 좋은 생각 있고 능력 있는 공무원들 좀 들어오게. 개발을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큰 그림을 그려야지. 작은 행정 단위로 가니까 서로 자기 구역 뒤집으려고만 하잖아요. 큰 틀에서 보존할 것과 개발할 걸 나눠야지 면 단위에서 다 파면 어떻게 해?

(마을 입구에 거의 오백 년은 묵었을 만한 엄청 큰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한데 그 나무는 시인이 스무 살 때 심은 것이라고 했다. 시인은 자연에는 각각의 역사가 있다고 했다. 그것을 그냥 지우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어느 새 우리 땅은 거대한 시멘트 더미들이 역사를 지우는 지우개가 되어 세상을 뒤덮고 있다.)

3.오리농사에서 섬진강 시인으로

Q 원래는 농고 졸업 후에 농사를 지으려 하셨다면서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에는 오리농사를 지었지. 1968년에 당시 돈 10만원을 융자받아 집 세 칸을 짓고 오리 100마리 사서 농사를 지었어. 아, 그런데 그놈들이 너무 잘 크더라고. 사료에, 싱싱한 풀에, 사방이 다슬기, 개구리인데, 뭐 쑥쑥 크는 거지. 다른 사람이 키우던 오리를 200마리 인수까지 했어. 그런데 오리가 말이야. 허허, 나 참, 지들이 먹을 게 없으면 아주 멀리까지 가요. 한 십 리씩은 예사로 가. 그런데 이놈들이 갈 때 돌아올 시간 계산을 안 하고 가니까. 밤이 돼버리면 영 안 돌아와. 그래서 쫄딱 망했지 뭐.

Q 파산한 셈이네요?

어머니 보고 남은 오리 좀 팔아 달라고 하고 서울로 도망갔지 뭐. 친척집 돌아가며 밥 얻어먹는데, 한 달 지나니 갈 데가 있어야지. 나중에는 택시 운전을 배우려고 아버지 보고 3만원만 보내 달라고 했더니 안 된다고 딱 잘라. 그러다가 영 거지꼴이 되었지 뭐. 그때 그걸 본 친척이 아버지한테 전화했어. 용택이가 서울에서 거지가 돼서 돌아다닌다고. 아버지가 연락이 왔어. 고향에 취직 자리가 생겼다고. 그런데 가 보니 거짓말이야. 어쨌건 그렇게 다시 내려와 농사나 할까 하는데 친구들이 교사 임용시험 치러 가자고 하더라고. 교사가 모자라 고등학교 나와도 시험만 합격하면 된다고. 시험에 합격해서 선생이 되었지.

Q 시상이 그냥 ‘딱’ 하고 떠오를 때만 시를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쓰겠다고 생각하고 쓰면 말장난이지. 시란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를 형식으로 가져온 것이거든. 안 살아보면 쓸 수가 없어. 안 살아보고도 아주 시를 척척 쓰는 시인을 보면 신기해. 시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인데, 그 현상을 종합한 내용을 시의 형식으로 형상화해낼 따름이거든.

Q 그럼 시인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이면을 보고, 그것을 시를 통해 밖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건가요?

시는 세상을 종합하는 일이고, 시인이 시를 배우는 일이 세상을 배우는 일이에요. 시인은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해석하지. 세상이 썩어도 시만 정신을 차리면 세상은 안 썩어. 그래서 시인이 현상을 제시하는 예언자적 역할을 하는 게 가능하지. 그러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시인의 역할이 아니야. 철학자나 정치가가 할 일이지. 그런데 시인까지 안 본 것을 가지고 시를 쓰고, 시인이 대안을 내세우기 시작하고…. 그러고 다니면 큰일 나.

Q 선생님이 섬진강 사람들과 섬진강을 미화해서 상품으로 포장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는 초기에는 민중의 고통을 노래했지. 하지만 지금까지도 계속 그럴 수만은 없잖아. 고통 속에 아름다운 서정이 있고, 그것을 또 드러내야 할 시인의 의무가 있는데. 섬진강 민중은 고난의 민중이라는 시만 쓸 수는 없지. 섬진강은 오히려 우리가 잃어버린 원형을 닮고 있거든.

Q 요사이는 고향집을 떠나 전주에서 사신다는데?

여기는 사람들이 느닷없이 찾아와서 내 생활이 없어. 일 년에 2000~3000명씩 문학기행을 오는데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이야기하고 맞이해야지. 다들 내 손님인데. 아내가 밥하느라 아주 곤욕을 치러. 그래도 다 좋은데 글 쓰고 책을 읽을 수가 없어. 동네 사람들에게도 너무 폐가 되고. 내가 봉착한 가장 큰 문제였지. 그래서 집을 옮겼는데, 이제 퇴임했으니 다시 돌아올까 생각 중이야. 지금 어머니께서 사시는 이 집 뒤에 새로 작은 집을 하나 달아내든지 하려고 해.

(집 앞 강가 징검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멀리서 온 듯한 한 쌍의 젊은이가 시인에게 인사를 하며 카메라를 꺼내 들었고, 시인은 그들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아이처럼 손을 흔들며 그들을 반갑게 맞았다.)

Q 산문을 쓰실 계획은 없습니까.

아, 그건 이미 좀 써 둔 게 있어요. 한 세 권 준비했지. 올 12월과 내년 봄께에 낼까 싶어요. 하나는 ‘아이들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다’라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마침내 그렇게 된 나의 인생’이라는 책이에요.

Q 선생님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였어요?

아무래도 어머니죠. 어머니가 얘기를 잘하셨지. 이를테면 ‘아이들은 싸워야 큰다’ 이런 말. 아주 아름다운 말이거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마찰하고, 그 마찰이 해결되는 과정을 배우는 거잖아. 그걸 통해 이해하고 배우는 거지. 또 ‘우리집 개를 내가 예뻐해야지 남이 예뻐한다’ 이런 말도 철학적이잖아, 그렇죠?

(보통 사람들이 안경을 쓰면 시인의 눈에는 돋보기와 현미경이 걸린다고 한다. 같은 말도 이렇게 해석하는 시인에게는 세상 모두가 스승일 터이다.)

Q 어떤 작가를 좋아하세요?

다 좋아하지. 하지만 김수영 시인을 좋아해. 인간적으로 볼 때 그의 시는 치열한 일상과 삶을 담고 있어요. 자신을 용서하지 않고 시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는 자세를 유지했어. 아직도 우리에게 살아 있는 시인인데. 정말 생명력이 있지. 근본적으로 시인이 노래하는 것은 혁명이거든. 그래서 시인은 인간의 거짓투성이, 고루한 삶을 못 견디고 돌아버리는 거지. 김수영 시인이 그랬어.

Q 선생님에게 독서는 어떤 의미입니까.

요즘은 독서하는 사람이 드물어. 특히 대학생들이 책을 놔 버렸어. 하지만 나중에는 책을 읽는 사람만 살아남을 거야. 책은 정신작용에 영향을 미쳐서 새로운 것을 찾도록 충동질하거든. 그러면 사람이 변하지. 독서로 정신이 풍요로우면 당당하고 자신만만해져. 비루해지거나 저자세일 필요가 없지.

마치며

‘오! 내게 와서 꽃처럼 피어나는 아이들. 아이들은 나무처럼 자랐다. 세상에 태어나 아이들의 곁에 있게 된 것은 내 인생의 큰 행운이었다. 감출 수 없는 내 생의 축복이었고, 여한이 없는 날들이었다. 많은 분들의 분에 넘치는 관심과 인정이 나와 아이들에게 햇살처럼 쏟아졌다. 그 사랑이, 그 믿음이, 그 인정이 나를 나무의 새잎처럼 세상으로 밀어 올린다…’.- 김용택 시집 『나무』 중에서

그는 스스로 쓴 이 ‘시인의 말’처럼 행복한 사람이다. ‘사랑하고 감동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며 사는 것’이라는 로댕의 말처럼 ‘그는 마음 머물고 눈길 가는 지금, 저곳이, 실감 나는 나의 현실이라’고 믿으며 그것을 노래했고 딱 그 노래만큼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내일도 그곳에 그렇게 있을 터이고 우리 중에 또 누군가는 다시 그곳으로 시인을 찾아 나설 것이다.

박경철 (donodonsu@naver.com),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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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호 2008.10.11 02:25
    무엇을 대충 보지 않고 자세히 보니 자꾸 생각이 커져요. 그러다 보니 그걸 정리하고 싶어졌고, 그래서 일기·편지·쪽지 형식으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시가 되었어요.

    무엇을 대충 보지 않고 자세히 보니 자꾸 생각이 커져요.
    그러다 보니 그걸 정리하고 싶어졌고,
    그래서 일기·편지·쪽지 형식으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시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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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이 2008.10.11 02:25
    사진이 정겹습니다. 김용택 시인 제가 참 좋아하는 분입니다. 언제 백북스에서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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