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조회 수 1657 추천 수 0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조선일보 




[오피니언] 


'붕어빵 서점'과 책의 위기


베스트셀러 위주로 진열 깊이있는 독서기쁨 없애




미국 대통령 후보 매케인, 오바마 두 사람 모두 유아독서환경운동을 주요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빈민가 아이들과 중산층 아이들은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학습능력에서 뚜렷한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유아 때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에 따라 갈린다. 가난 때문에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비극이므로, 국가가 유아독서환경을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는 대통령 후보들을 둔 미국이 부럽다. 우리는 어떤가? 유아 독서환경은 고사하고 인구 1000만의 서울에, 작은 규모나마 도서관은커녕 서점 하나 없는 동네가 부지기수다.

대학교육 대중화 시대라지만, 지적인 책은 갈수록 설 땅을 잃고 있다. 학력(學歷)은 비약적으로 높아졌지만, 학력(學力)은 절대적으로 땅에 떨어졌다. 가벼운 베스트셀러 위주로 판박이처럼 진열해놓는 서점들을 외국에서는 '붕어빵 서점'이라고 한다. 붕어빵 서점이 문제인 것은 깊이 있는 앎의 기쁨을 잃어버리게 하기 때문이다. 붕어빵 교육, 붕어빵 출판, 붕어빵 서점, 붕어빵 독서환경은 그 나라 지식산업의 위기를 초래한다.

호암 이병철(삼성 창업자), 대산 신용호(교보문고 창업자)에 이어 은석 정진숙(을유문화사 설립자)마저 세상을 떠났다. 세 분 모두 책을 사랑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일본에 갈 때마다 100년 전통의 산세이도 서점, 기노쿠니야 서점을 먼저 찾았다고 한다. 대산은 세종로 네거리에 거대한 건물을 지어 수지타산을 초월한 열린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큰 서점을 세우는 것이 꿈이었다. 문제는 서대문에서 동대문까지 늘어선 유서 깊은 서점들의 반발이었다.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대산은 당시 출판문화협회장이던 은석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대산의 "참고서는 취급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호암의 응원, 은석의 헌신 등에 힘입어 교보문고는 문을 열게 된다. 1981년 교보문고 개점 첫날 호암, 대산, 은석,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감개무량함에 젖었다. 그리고 27년, 종로의 숭문사, 종로서적, 양우당 등 30여 유서 깊은 서점들이 모두 사라졌다.

최근 작고한 은석이 병석에 눕기 전, 교보문고에 가보고 싶다 하여 필자가 모시고 간 일이 있다. 광화문 주차장에서 매장으로 올라가니, 책은 보이지 않고 소란스러움이 도떼기시장 같았다. 서점 공간의 절반이 잡화부였다. 은석이 놀라며 혀를 찼다. "아니! 이게 웬일이야! 도쿄역 앞 금싸라기 땅 야에스 북센터 자손들은 유훈을 지켜 고집스럽게 일등 서점을 유지하고 있는데."

일본의 최대 서점 준쿠도가 적자를 흑자로 전환시켜 화제가 된 데에는 비결이 있다. 모차르트 음악이 흐르는 8층 건물, 층마다 젊은이들이 쉼터 의자에 앉아 책을 살핀다. 구입한 책을 즉석에서 읽을 수 있도록 독자서비스용 10평 커피숍까지 있다. 잘 분류· 정돈된 책과 친해질 수 있는 아늑한 분위기가 바구니로 수십 권씩 구입하는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24만종 중 10만종은 1년 가도 단 한 권 팔리지 않는다는 한국의 대형서점. 이는 책을 찾는 고객들을 쾌적하게 해주지 못하는 잡화경영, 팔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베스트셀러 위주의 서점 진열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돌아간 호암, 대산, 은석의 개탄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고정일 소설가·동서문화 발행인 

입력 : 2008.09.05 21:53 / 수정 : 2008.09.08 08:41

  • ?
    김영이 2008.10.11 02:09
    글을 읽으면서 정말 마음이 너무나 무겁습니다. 백북스가 해야할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4 공지 바닥에는 풍부한 공간이 있다<리처드 파인만> 4 오중탁 2003.06.17 3943
103 공지 100권 독서클럽 회원님들에게 제 속마음을 털어 놓습니다. 6 문경수 2007.04.06 3946
102 공지 독서크럽 관련 문의와 답변 관리자 2002.07.06 3951
101 공지 [re] Re: 4/8일 독서토론회 후기!! 6 양승찬 2008.04.10 3965
100 공지 [안내] 온지당 찾아오는 방법 6 문경목 2008.03.20 3971
99 공지 하루 30분 읽어주면 900시간 뇌영양분 효과 이동선 2002.07.07 3985
98 공지 리더를 찾자 김요셉 2002.07.05 4001
97 공지 학교도서관 활성화 정책과 현장의 일용잡급직 사서 이동선 2002.07.14 4018
96 공지 이종상 화백 공부하기(3) 박문호 2007.07.04 4036
95 공지 7,8월 모임 관리자 2002.07.07 4045
94 공지 앞 글에서 일본의"안국소파"가 아니라 "암곡소파"입니다 이동선 2002.07.12 4062
93 공지 3차모임 안내 현영석 2002.07.05 4081
92 정의란 무엇인가 : 샌달 하바드 교수 동영상 강의(영문) 10 현영석 2010.10.04 4081
91 공지 아고라 어떻게 가나요??? 송윤호 2002.07.05 4102
90 공지 4번째 모임 7월 23일 오전 7시 벤처카페 아고라 관리자 2002.07.06 4109
89 공지 온라인으로 참여하세요...^^ 송윤호 2002.07.04 4113
88 공지 100권독서크럽 8월15일 야외모임 안내 관리자 2002.07.12 4115
87 공지 이영은,이지희,유수연,박선규 회원님은 제차에 동승하세요..^^ 송윤호 2002.07.05 4117
86 공지 한남대->아고라 이동 차편 현영석 2002.07.11 4128
85 공지 훌륭한 독서법 이중연 2002.08.22 413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206 207 208 209 210 211 212 213 214 215 ... 216 Next
/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