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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틱> - 그렇게 달라붙어서 어쩌려고

by 황경신 posted Sep 1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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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에 집에 다녀오면서 <스틱(칩 히스, 댄 히스)>을 읽었습니다.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두서없는 생각이 흩날리도록 내버려두며 창 밖을 보았습니다.

오래 전에 어둠이 내려앉은 풍경은 보이질 않고

유리창은 빛에 반사된 제 모습만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에게 물었습니다.

(풍경이 보였다면 풍경에게 물었겠지만요)

 

이 책에 유용한 것이 많다는 건 알겠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 글을 쓸 때,

여기 나오는 방법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사로 잡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겠어.

그런데 나는, 나의 메시지가 그들에게 착! 달라붙는 것을, 원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그 메시지는 무엇이지?

 

<심슨네 가족들>이라는, Fox사에서 최장수를 누리고 있는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그 시리즈 중, 광고를 위해 세워둔 거대한 광고판들이 살아나서

마을사람들을 습격하는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이를테면 켄터키 프라이드 앞에 있는 할아버지라거나

지붕에 매달려 있는 거대한 햄버거 같은 거 말이죠.

이들은 마을을 때려부수고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메시지를 착! 달라붙게 만들고' 싶다고 가장 절실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사게 하려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것은 돈과 직결된 문제니까요!

공익광고 등에서 전하려는 메시지는 모래알 같은 상업광고의 메시지 속에 묻혀

우리 눈에는 거의 보이지도 않잖아요.

그렇다면 문제는 오히려, 그런 메시지를 어떻게 만들까가 아니라

달라붙어 있는 메시지들을 어떻게 떼어버릴까, 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심슨네 마을 사람들은 마을 광장에 모여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마을이 파괴될 위기를 극복합니다.

광고판에 눈을 돌리지 말자고 그들은 노래합니다.

노래에 열중한 그들이 광고판을 외면하자

거대한 광고판들은 제풀에 지쳐서 하나둘 쓰러집니다.

사람들이 봐주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는 것들이니까요.

이 애니메이션의 작가들이 대단한 것은, 이것으로 끝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광고판이 쓰러질 무렵, 내레이션이 나옵니다.

<잠시 광고 나갑니다. 자리를 뜨지 마세요. 우리는 광고 후에 다시 돌아옵니다.>

그들 역시, 광고라는 자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우리 모두 그러하다는 경고를 잊지 않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보던 사람들은 윽, 하고 한방 먹고 맙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달라붙는 메시지를 쓰고 싶지 않습니다.

아는 것도 없을 뿐더러 제가 아는 게 진실도 아니고

제가 하는 이야기들이 오래 기억해야 할 만큼의 가치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무엇인가 저의 뇌리에 달라붙어 있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자유롭고 열린, 편견이 없는 사고를 하고 싶으니까요.

이 세상 모든 샌드위치를 먹어보지도 않고

서브웨이가 최고라고 생각하긴 싫어요.

 

무섭습니다. 스토리의 힘이라는 게 무서운 거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어

겁이 납니다. 스토리텔러의 한 사람으로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자각을 계속 하게 됩니다.

이상, 독후감도 아니고 비평도 아닌, <스틱>을 읽고 난 후의

제 멋대로의 느낌이었습니다.

 

 

자, 그런데요, 이제 이 책을 이미 읽으신 여러분께서 한 번 판단해보세요.

제가 쓴 이 글은

<스틱>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SUCCES, 다섯 가지 '스틱의 법칙'에

부합하고 있나요?

단순성, 의외성, 구체성, 신뢰성, 감성, 스토리,

이 다섯 가지 부문의 점수를 매긴다면 말입니다!^^

(정말로 끈끈하게 달라붙어 있군요.

어제 본 영화의 스토리도 기억 못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까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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