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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의 관심사는...

by 이종필 posted Sep 1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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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일모레 가동을 시작하는 LHC가 관심사일 수밖에 없지만요...

그것 말고 최근 2~3년 동안 고민해 온 것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를 과학적으로 다시 재구성하는 것인데요.

과학적 사고 및 과학적 방법론의 사회적 확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갖가지 문제들이 여러 층위로 나뉘어져 있을 것이고 그 원인과 처방 또한 다양한 수준에서 제기되어야 하겠지만, 저는 우리 사회가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계몽의 시대를 관통하지 못한 업보를 크게 짊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과학적 사고와 관련이 깊다고 보는데요.

 

보통 과학이라고 하면 실험실이나 책 속에 있는 것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나 한 국가나 사회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그것이 잘 짜여진 하나의 시스템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원리가 포함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이 구성원들의 언어생활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요즘 많이 해 봅니다. 과학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은 과학적인 언어생활을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왜냐하면 과학이라는 것은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방식으로서의 방법론이라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통이 빈약한 우리나라에서는 얼토당토 않은 논리와 큰 목소리가 항상 이기게 되어 있지요.

 

19세기 말 원자핵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과학자들은 더 이상 인간의 일상언어가 원자세계와 잘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는 무척 당황했습니다. 그 결정체가 양자역학으로 구축되었죠. 비엔나 학파로 불리는 철학자들이 언어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도 서양에서는 과학이 실험실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일반적인 사회 생활과 언어생활에까지 깊이 천착한 것 같습니다.

 

다시 우리나라를 돌아보면 국가 전체에 대한 전략적 사고가 거의 없습니다.

한 나라가 나라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두 요소가 국방과 외교인데요.

언뜻 이 둘은 과학과는 무관해 보입니다만, 제 생각엔 바로 여기서부터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것은 두 가지 층위로 가능하다고 보는데요.

하나는 과학적 연구결과들을 직접 갖다 쓰는 층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보다 높은 추상수준, 즉 메타적 수준에서 국방과 외교를 과학적 '방법론'으로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IT기술을 접목해서 전쟁시뮬레이션을 해 보는 것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주변 각국의 이해관계를 정량화하여 우리에게 최적의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경로를 모색하는 게임이론은 후자에 해당하겠죠.

 

외교와 국방 이외에도 이런 재구성이 필요한 구석은 많다고 봅니다.

특히 제가 관심있는 부분이 컨텐츠 문화산업인데요.

이건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저도 여기 고등과학원에서 다른 두 명과 함께 스터디를 하고 있습니다. 몇년 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토머스 셸링의 <갈등의 전략>을 거의 강독 비슷하게 하고 있는데, 진도가 참 안 나가네요. -.-

저희들은 직업이 과학자라 아무래도 과학 이외의 사회부문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은 편입니다. 곧 시작되는 문지문화원 가을 강좌도 이런 고민을 담아 보려는데 아직 실험단계라 결과가 어떨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요즘 대학에서 교양강좌나 통섭강좌를 많이 열고 있는데요. 이 방면으로 관심있는 몇몇 교수님들과도 지금의 이런 문제의식들을 나눠 보려고 합니다. 대학 교양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커리큘럼을 구축하고 아예 새로운 학과가 하나 생겨난다면 더 좋겠죠.(개인적으로는 사이언스 컨설팅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의 고민과 백북스의 활동이 서로서로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몇자 적었습니다. 두서없이 적다보니 쓸데없이 길어졌네요. 다음에 또 생각나는 대로 몇 자 더 적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