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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악보

by 황경신 posted Aug 2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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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잠을 자다가 문득

본질을 알지 못하고 쓰는 글은

발이 없는 새와 같다는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일어나서 좀 어리둥절했습니다.

새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날개일 텐데

어째서 날개가 없는, 이 아니라 발이 없는, 이었을까, 해서요.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발이 없는 새가 있다면

날아다닐 수는 있겠지만, 그러다 지쳤을 때, 힘이 다했을 때,

땅에 내려앉아 에너지를 다시 충전할 수는 없겠지, 라는.

 

글을 쓰면서 살아온 십여 년 동안

제가 끝없이 느끼는 갈증은 줄곧 본질에 관한 것입니다.

깊이 없는 우물에서 물을 계속 퍼내다 보면 언젠가 바닥이 드러날 거라는 불안함.

나름대로 우물의 깊이를 더하려고 애를 썼지만

항상 뭔가 모자라다고 느꼈습니다.

 

어제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박사님께 추천받은 여러 권의 책을 주문하고 새벽 세 시 넘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어쩐지 마음이 두근두근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악보가 불태워져도

바흐의 악보만 있다면

음악은 다시 시작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어제 박문호 박사님을 통해,

바흐의 악보의 한 페이지를 훔쳐보았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만남에는 이유가 있는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어제의 만남에서 얻은 귀하고 소중한 무엇으로

부족한 저는 조금 더 성장하여

아름다운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저를 초대해주시고

그토록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날아다니다 지치면 이곳에 내려앉아

에너지를 나누어달라고 조르겠습니다.

 

 

황경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