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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렇게~~♪ 좋을~수가~!!♬♪♫

by 임석희 posted Apr 2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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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지당에서의 희망을 쏘다





행사명은 "이화에 월백하고".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올해는 온갖 종류의 꽃이 며칠 사이에 모두다 피어버렸다.


온지당 가는 길에 보이는 꽃들도 모두다 흐드러짐을 넘어선 상태.


조금이라도 배꽃을 더 즐기고픈 마음이 운전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다.





일찌감치 도착해서 둘러보는 여유로운 꽃 감상.


절정을 약간 지나친 배꽃이 사방팔방에 널린 온지당의 위치가 새삼 위대하게 느껴진다. 앞을 봐도 배꽃이요, 옆을 봐도 배꽃이요, 뒤를 봐도 배꽃이다.


이숙희 원장님께 인사를 하고,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들을 소개시켜주고, 온지당 곳곳에 숨겨진 미학을 찾아 여유를 부려본다.


미리 마련된 악기들을 보며, 먼저 와 장단 연습을 하는 예술가들을 보며, 오늘 밤 펼쳐질 향연을 머릿속에 먼저 그려본다.





저녁이 어스름해질무렵, 서서히 시작된 “이화에 월백하고!“


가례현의 힘찬 울림으로 시작된 행사.


국악이 이런 맛이 있었던가!!


맑디 맑은 여인네의 창소리는 계룡산 수통골을 한바퀴 돌아 다시 내 귀로 들어온다.


마이크 하나없이 어쩜 저렇게 여기 모인 200명은 됨직한 사람들을, 그리고 온 산을 휘감아 잡을 수 있을까? 그 소리의 카리스마가 이리 대단할 수가!!!





이윽고 이어지는 관객들의 장단이 한껏 흥을 돋운다.


"어쩌면 이렇게 좋을 수가~"


어쩌면 이렇~게 좋을 수가~~"





어쩌면 이렇게 좋을수가~ 라는 멜로디가 왠지 낯익다 했더니, 갑자기 돌아가신 할머니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할머니는 기분이 좋으면 이렇게 노래를 하곤 하셨다. 지금은 들을 수 없는 할머니의 노랫가락과 어깨춤이 몹시 그리운 순간이다. 저절로 손이 올라가고, 나도 모르게 저절로 어깨가 들썩인다. 둥둥둥 울리는 북소리는 이내 낮게 앉은 어둠과 한껏 어울려 계룡산 수통골과 같은 그림처럼 느껴진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심청가, 심봉사가 눈 뜨는 장면..


내가 처음 국악을 들었던 것은 중학교 3학년때였는데, 그땐 왜 이 재미있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이었을까?


하긴, 내 생에 처음 공연장을 찾았던 인천시민회관. 네모 반듯한 시민회관이 주는 위압감 때문에 공연소리를 즐긴다는 것은 어린 소녀에게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온지당 야외 마당에서의 우리 소리는, 소리를 듣고 즐기는 관객과 그 흥에 못이겨 춤을 추고, 장단을 맞춰주고, 또 소리를 제공하며 즐기는 소릿꾼들 뿐만이 아니라, 계룡산 산자락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절실히 느껴진다. 자연속에서의 소리는 어떤 공연장 안에서의 소리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부드럽다.





감았던 눈을 뜨니 어느새 달이 걸려있다. 와~ 보름달.


산자락 밑에 깔린 식당의 간판이 쏟아내는 네온사인 불빛이 보이자마자 눈에 피로가 몰려온다. 이럴땐 아무런 불 빛 없이 달만 있으면 좋겠다~~~





불현듯 여름이면 기를 쓰고 따라다녔던 아브라함체보, 꾸스코바, 짜리찌노, 아스탄끼노, 쉐리메체보가 생각났다. 과거 재정 러시아 시절, 문화를 사랑하고 즐겼던 귀족들이 바로 그들이다. 귀족들이 매일 술과 춤 일색인 흥청망청한 파티만 열었던 것은 아니였다. 그들은 자신의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하고, 예술인들을 초대해서 연주를 하고, 시를 낭송하고, 로망스를 부르고, 연글을 하고,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그대로의 문화를 즐겼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몽골의 침입으로 초토화가 되었던 러시아가 단 200-300년만에 유럽최고의 문화를 가지게 된 원동력이었다고 나는 주장한다. 과거의 전통을 이어 현재 이곳에서는 해가 긴 여름이면 과거 영주들의 영지였던 곳에서 작은 문화제가 열린다. 공연장의 거대한 규모의 오케스트라가 아닌 간이 음악회. 오히려 관객과의 호흡은 이것이 더 좋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신선한 공기와 음악, 감상후에 이어지는 여유로운 영지내의 산책. 이보다 더 좋은 휴식은 없었다.





잠시모스크바를 다녀오는 동안 국악 재발견이 끝나고, 양악으로 넘어갔다.


1부의 국악이 흥겨움이었다면, 2부의 양악은 고요속의 평안함이었다.


온지당에서의 두 번째 문화행사, 우리 소리와 이웃 나라의 소리가 사람들의 흥과 더불어 온 자연과 함께 만들어낸 향연은 휘영청 떠오르는 달과 함께 서서히 마무리 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온지당이 있다는 것,


이런 문화 향연을 즐길 공간이 있다는 것,


이런 모임을 마련해주시는 분들과 즐기는 분들이 있다는 것.


이것이 잠시 우울한 우리 사회에 작은 불빛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문화 르네상스를 꿈꾸며, 아쉬운 맘을 접고 달빛에 취해 집으로 온다.


나는 오늘도 희망을 보았다.





꼬랑지 : 이렇게 좋은 시공에 백북스와 함께여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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