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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문태준

by 박문호 posted Apr 0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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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태준 시인

 

 

           6월 10일

 

           100Books에서

 

           강연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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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이 있는 국수집 / 문태준

평상이 있는 국수집에 갔다
붐비는 국수집은 삼거리 슈퍼 같다
평상에 마주 앉은 사람들



 
세월 넘어 온 친정 오빠를 서로 만난 것 같다
국수가 찬물에 헹궈져 건져 올려지는 동안
쯧쯧쯧쯧 쯧쯧쯧쯧,


 
손이 손을 잡는 말
눈이 눈을 쓸어주는 말
병실에서 온 사람도 있다



식당일을 손놓고 온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평상에만 마주 앉아도
마주 앉은 사람보다 먼저 더 서럽다



세상에 이런 짧은 말이 있어서
세상에 이런 깊은 말이 있어서
국수가 찬물에 헹궈져 건져 올려지는 동안



쯧쯧쯧쯧 쯧쯧쯧쯧,
큰 푸조나무 아래 우리는
모처럼 평상에 마주 앉아서


 

 

 




측백나무가 없다 / 문태준

측백나무 곁에 서 있었다
참새떼가 모래알같은 자잘한 소리로 측백나무에서 운다
그러나 참새떼는 측백나무 가지에만 앉지는 않는다



나의 시간은 흘러간다
참새떼는 나의 한 장의 白紙에 깨알같은 울음을 쏟아놓고


감씨를 쏟아 놓고 허공 한 촉을 물고 그 긴 끈을


 


그 긴 탯줄을 저곳으로 저곳으로 끌고 가 버리고 끌고 가 버리고


다만 떼로 모여 울 때 허공은 여드름이 돋는 것 같고


바람에 밀밭 밀알이 찰랑 찰랑 하는 것 같고


 


들쥐떼가 구석으로 몰리는 것 같고 그물에 갇힌 버들치들이


연거푸 물기를 털어 내는 것 같다


 


측백나무 곁에 있었으나 참새떼가 측백나무를 떠나자


내 감각으로부터 측백나무도 떠났다



사방에 측백나무가 없다



 




뻘 같은 그리움 / 문 태 준

그립다는 것은 당신이 조개처럼



아주 천천히 뻘흙을 토해내고 있다는 말

그립다는 것은 당신이 언젠가 돌로 풀을 눌러놓았었다 는 얘기



그 풀들이 돌을 슬쩍슬쩍 밀어올리고 있다는 얘기



풀들이 물컹물컹하게 자라나고 있다는 얘기




중심이라고 믿었던 게 어느날 / 문 태 준


못자리 무논에 산그림자를 데리고 들어가는 물처럼
한 사람이 그리운 날 있으니



게눈처럼, 봄나무에 새순이 올라오는 것 같은 오후
자목련을 넋 놓고 바라본다



우리가 믿었던 중심은 사실 중심이 아니었을지도
저 수많은 작고 여린 순들이 봄나무에게 중심이듯


 
환약처럼 뭉친 것만이 중심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그리움이 누구 하나를 그리워하는 그리움이 아닌지 모른다



물빛처럼 평등한 옛날 얼굴들이 꽃나무를 보는 오후에
나를 눈물나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믐밤 흙길을 혼자 걸어갈 때 어둠의 중심은 모두 평등하듯
어느 하나의 물이 산그림자를 무논으로 끌고 들어갈수 없듯이





 

 





첫사랑 / 문태준


눈매가 하얀 초승달을 닮았던 사람



내 광대뼈가 붉어져 볼 수 없네



이지러지는 우물 속의 사람



불에 구운 돌처럼



보기만해도 홧홧해지던 사람



그러나 내 마음이 수초 밭에



방개처럼 갇혀 이를 수 없네



마늘종처럼 깡마른 내 가슴에



까만 제비의 노랫소리만 왕진 올 뿐



뒤란으로 돌아앉은 장독대처럼

내 사랑 쓸쓸한 빈 독에서 우네






 


 

문태준(文泰俊·36) 시인은 최근 ‘소월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상복이 많다.





2004년 동서문학상을 시작으로 노작문학상, 미당문학상, 유심문학상을 수상했다.





도서출판 작가의 문인 대상 설문조사에서





문 씨의 시 ‘맨발’이 2004년 ‘가장 좋은 시’로 꼽힌 데 이어





지난해에는 ‘가장 좋은 시’(‘가재미’), ‘가장 좋은 시집’(‘맨발’),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혀 3관왕을 차지했다.





지금껏 단 두 권의 시집을 냈지만 한국 시단의 새로운 대표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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