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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30 05:36

문태준-가재미, 낮잠

조회 수 1513 추천 수 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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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미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짧은 낮잠 /문태준


 


낮잠에서 깨어나면


나는 꽃을 보내고 남은 나무가 된다


 


혼(魂)이 이렇게 하루에도 몇번


낯선 곳에 혼자 남겨질 때가 있으니


 


오늘도 뒷걸음 뒷걸음치는 겁 많은 노루꿈을 꾸었다


 


꿈은, 멀어져가는 낮꿈은


친정 왔다 돌아가는 눈물 많은 누이 같다


 


잠에서 깨어나 나는 찬물로 입을 한번 헹구고


주먹을 꼭 쥐어보며 아득히 먼 넝쿨에 산다는 산꿩 우는 소리 듣는다


 


오후는 속이 빈 나무처럼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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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보미 2008.03.30 05:36
    '그 자리, 그런 집' 처럼 있는 '그 자리, 그런 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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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수 2008.03.30 05:36
    가재미라는 시는 세번째 만나네요. 첫번째는 박문호 박사님께서 알려주시어 만났었고 그 후 까맣게 잊고 있다가 <프로젝트 써!> 첫번째 모임에서 노트북을 뒤지다가 저장해 놓은 문태준시인을 조사한 파일에서 다시 한번 만나고 세번째는 100북스 홈에서 만나네요.



    가재미라는 시를 보면 슬프지만 시어들이 느릿 느릿하고 편안하게 다가온다는 느낌 때문인지 현재의 슬픈 상황이 슬프지만은 않다. 삶은 그냥 그러하다는 생각이 든다. 삶은 싫든 좋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또한 일상의 편안한 시어들이 겸손하면서도 시(詩)의 상황을 묘사함에 있어서의 시어와 시어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 않은데 자연스레 이어진다. 본질은 일상과 떨어져 있지않은 듯 하다. 일상 속에서의 깊은 사유가 있기 때문에 일상의 언어들이 더욱 빛나는 듯 하다.

    오늘 세번 째 만난 가재미를 읽으면서 박성일 원장님의 시 A bird died today. The bird flies in my brain 이 생각 났다. 왠지 화자의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http://100booksclub.com/100bc/?doc=bbs/gnuboard.php&bo_table=member_board&wr_id=4049&soperator=1&srch_rows=10&srch_comment=1&srch_day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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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윤호 2008.03.30 05:36
    시상을 전달하는 문태준 시인의 능력이 대단합니다.
    어떻게 이리도 순간적으로 !!! 작가의 시상에 동화되게 하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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