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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산골로 가는가?

by 박용태 posted Mar 1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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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읽고 농사도 지으며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려고 산골 외딴곳에 작은 텃밭과 산방을  마련한 후 매주 이곳, 산골을 찾는다. 추운 겨울에는 산방을 폐쇄하지만 얼음이 녹고 날이 풀리는 3월부터 봄맞이 대청소에 가지치기며 샘터청소, 밭갈이 준비에 봄을 느낄 정신적 여유가 없다.

 



 

어김없이 계절의 변화는 산골에도 찾아와 그 모진 추위를 이겨낸 산수유는 제일 먼저 꽃몽오리가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고 나무마다 물이 오른 자두, 매화, 복숭아 ,수국 ,장미, 대추나무도 물이 오르기 시작해 때늦었지만 가지치기를 하기로 했다.




 

혼자 하기엔 너무 벅차  '소리없이 부지런한 남자'의 도움을 받아가며 열심히 가지치기를 하는데 집에 들른 할머니가 대추나무에 가지치기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한마디 거든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날씨는 화창하고 오가는 사람 아무도 없고 열심히 밭정리를 하다 개울가에서 세수를 한다.  숲속 개울가에서 세수를 하다 하늘을 쳐다보니 나뭇잎소리 바람소리 새 소리 뿐이다. 한바탕 땀을 흘렸더니 차(茶) 생각이 절로난다. '소리없이 부지런한 남자 부부'와 같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차를 마신다. 

 





 

차를 마시며 '소리없이 부지런한 부부'에게 아궁이에 불 때며 읽었던 도종환 시인의 '산경' 이란 시를 읽어주었다.




 

산경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 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 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 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
하늘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도종환 시인의  '해인으로 가는 길') 중에서



정말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다. 그냥 편안하고 좋다. 도종환 시인의 뛰어난 시적언어에 감탄하면서 나는 왜 저런 시적 상상력이 없을까 한탄해본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시골에서 살려고 그래요? "


"무섭지 않으세요?"


"외롭지 않으세요?"




 

나는 대답한다. 내 마음의 고향이라서 그런지 편안하고 좋아요. 거창하게 소유론적 욕망과 존재론적 욕망, 본래적 자기와 비본래적 자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산골에 있을 때는 가능한 한 거짓말 할 필요도 없고, 남을 속일 필요도 없고 자신에게 솔직해 질수 있기 때문에... 본래의 자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산방이름을 관아재로 했다고 ...

 





 

자연은 정말 나를 거짓으로 대하지 않으며 '그것' 으로 대하지 않으며 정말 아낌없이 많은 것을 주고 있지 않은가?




 

나에겐 아직 숲이 시아노박테리아로 보이지는 않지만 작년에 공부하면서 나무가 죽으면 흙이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분명한 것은 사람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인데 나무는 살아서 뿐 아니라 죽어서까지 흙이 되어 자신의 모든 것을 숲으로 되돌리며 다른 생물들의 삶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있지 않는가?




 

자연이 주는 가르침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자연주의 철학자 소로우의 말을 가슴깊이 다시 새겨본다.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삶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고 오직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만 직면하며...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소로우나 스코트니어링처럼 살 수는 없지만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정말 봄이 기다려진다. 비록 지금은 주말뿐이지만 낮에는 밭일하고 밤에는 별공부도 해야 하니 참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