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조회 수 1338 추천 수 0 댓글 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무()에서 유()가 나오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능력, 창의력은 도대체 또 무엇일까? 그것은 하늘 아래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들을 새롭게 연결짓고 다른 각도에서 궁리하며 새로운 쓰임새를 고안하는 능력일 것이다. 넘나들기, 가로지르기, 통섭, 학제적 사고 등의 말이 이러한 뜻의 창의력을 일컫는 다른 말들이라 하겠다.


 

이러한 창의력에 대한 중대한 오해가 있다. 창의력이라고 하면 기발한 생각과 같은 말이라 여기면서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 창의력 향상에 방해가 된다고 보는 오해다. 정치사회사상 분야에서 고도의 창의력을 발휘한 존 스튜어트 밀은 어려서부터 엄격한 조기 교육을 받았다. 불과 3세 때부터 그리스어를 배우고 10대가 되기 전에 라틴어를 익힌 것은 물론, 10대 초반에 경제학을 공부했을 정도다.


 

어른이 된 밀은 이러한 엄격한 교육 탓에 자신이 정서적으로 지나치게 조숙해버렸다는 점을 아쉬워하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탁월한 창의력을 발휘한 정치사회사상가를 얻었다. 20세기의 대표적 지성으로 손꼽히는 버트런드 러셀의 사례도 있다. 러셀은 초등학생 나이 때 할머니에게 영국헌정사를 배웠다. 헌정 사료를 읽고 할머니 앞에서 문답식으로 시험을 치르는 방식이었으니, 우리로 치자면 초등학생이 조선왕조실록을 철저히 공부한 셈이다.


 

여성 과학자의 상징으로 거론되는 마리 퀴리는 또 어떤가. 마리 퀴리는 남편과 함께 연구에 몰두했던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는 비가 새는 헛간에서 밤낮 없이 연구했다. 일 때문에 기진맥진했지만 우리는 꿈꿔 오던 대로 완전히 몰두했다.’ 과학적 창의력이라는 것도 길고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창의적 발견의 순간은 벼락처럼 내리는 축복이 아니라 인내의 시간 끝에 오는 당연한 결과에 가깝다. 게으른 창의력이란 잔꾀나 꼼수, 임시변통에 불과하다.


 

어디 과학만 그러하겠는가. 문학이나 미술 같은 예술 창작 활동에서도 빛나는 작품 뒤에는 무수히 쓰고 그렸다가 버린 습작 더미가 쌓여 있기 마련이다. 미국 최고의 인기 작가 스티븐 킹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이렇게 충고하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두 가지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슬쩍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름길도 없다. 많이 읽고 많이 쓰라는 말은 우리의 지상 명령이다.’


 

그렇다면 국가 차원에서 창의력에 관한 정책 비전 같은 게 있을까? 문화관광부가 2004년에 내놓은 소문난 잔치로 ‘창의 한국’ 로드맵이 있다. 그 이듬해 문화관광부는 같은 제목의 두툼한 책도 펴냈다. ‘창의 한국’을 위한 문화비전 27대 추진과제를 훑어보니 뷔페 상차림 같다. 멀리서 보면 맛있는 먹을거리가 가득한 것 같지만, 막상 앞에 다가서 음식을 살펴보면 그냥 지나치고 싶은 구색이다. 모든 것을 다 담으려다가 하나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꼴이라 할까, 창의 한국의 정책 비전이 창의적이지 못한 일종의 자가당착이라 할까.


 

개인 창의력의 기본이 부단한 노력과 인내와 암기와 온축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국가의 전체적인 창의 역량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문만 그럴듯한 잔치판은 걷어치우고 기본에 충실할 때다. 그렇다면 무엇이 기본인가? 답은 현장에 있다.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문화적 창의력을 꽃피우기 위해 묵묵히 갈고 닦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기사원문 http://www.donga.com/fbin/output?sfrm=1&n=200802100069

  • ?
    문경수 2008.02.11 05:23
    오늘(일요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칼럼입니다. 창의력 향상에 방해요인으로 불리던 주입식 교육(암기)이 창의력 향상의 가장 큰 버팀목이라고 필자는 주장합니다. 박문호 박사님이 몇 년 전부터 언급한 창의력을 향상 시키려면 암기가 필수적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주장입니다.

    "암기를 하면 뇌 속으로 암기된 내용의 형상화가 가능해져 이를 언제 어디서나 형상화 시켜 학습이 가능해 진다"고 하셨던 말이 떠오릅니다. 칼럼의 마지막 단락을 읽으며 천문우주모임에서 여러번 반복하고 암기해서 발표하는 회원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 ?
    조동환 2008.02.11 05:23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저도 집에있는 화이트 보드에 ' N 번 생각, N번 반복'을 써두었습니다.
  • ?
    임석희 2008.02.11 05:23
    저는 개인적으로 외우는 거... 완전 싫어하는데요...
    희안한 것은, 이해 하면, 아주 기본적인 이름정도만 외운다면... 안 외우고 싶어도 자연적으로 외어진다는 것이죠!!!
    물론, 언어을 배우다보면, 그 이름조차도 외울 필요가 없어지게 되지만....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외우라는 말보다는 "이해하라"는 말...이 듣고 싶네요. 훗훗~~~
  • ?
    복정식 2008.02.11 05:23
    공감이 백배됩니다. 고등학교 시절 화학을 처음 공부할 때에 주기율표와 화학반응식을 외워가면서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원리 이해와 응용 방법이 따라오더군요~
    개인적으로 응용은 창조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입한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자주들르겠습니다~~.
  • ?
    문경목 2008.02.11 05:23
    지난 12월 고전아카데미에 박문호 박사님과 함께 한 버스안에서 암기했던 별의 일생에 대한 그림이 불쑥불쑥 생각납니다. 그 때 30분동안 암기하라고 알려주셨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던 암기에 대한 성취감 뿌듯함 등의 느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보니 다시 또 한번 생각나네요.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44 공지 가입인사드립니다. ^^ 3 서상원 2008.08.18 1340
443 가입인사드립니다. 3 남민정 2008.10.30 1338
442 공지 알림]홈페이지개선사업 모금현황 3차 보고 3 김영이 2008.09.01 1338
441 공지 오랜만입니다. 5 남기원 2008.07.09 1338
440 공지 도서 할인 안내 엄준호 2008.04.04 1338
» 공지 [문화칼럼/표정훈] 창의력에도 필요한 주입식 교육 5 문경수 2008.02.11 1338
438 인지자본주의 읽기 세미나에 초대합니다. 김석민 2014.06.26 1337
437 가입인사드려요~ 조지아 2011.05.07 1337
436 공지 [공지] 4월 5일 모임 전체 안내 4 문경목 2008.04.02 1337
435 공지 <가입인사>소곤소곤~ 9 이나영 2007.11.08 1336
434 공지 가입인사 드립니다. ^^ 1 한승건 2007.08.08 1336
433 공지 서점에서 발견한 반가운 소식 11 file 문경수 2008.02.28 1335
432 공지 100books 발표 예정자 박문호 2008.03.12 1334
431 공지 오늘 1월 15일(화) 저녁 7시 교차로 독서 스터디 공지 2 김주현 2008.01.15 1334
430 (잡담) 3 육형빈 2012.05.19 1333
429 울룰루와 달 5 문경수 2012.03.08 1333
428 공지 몽골 탐사여행기2_1(6월27일) 1 박상준 2008.07.15 1333
427 공지 12월 독서 발표자 1 박문호 2007.11.13 1333
426 공지 한남대에서 출발하시는분 계신가요?? 조준희 2008.08.26 1332
425 공지 안녕하세요~ 정현진입니다. 1 정현진 2008.07.12 133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89 190 191 192 193 194 195 196 197 198 ... 216 Next
/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