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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0 20:46

Half Price Books

조회 수 1355 추천 수 1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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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유학 첫 해 자전거로 생필품 구하러 다니던 때, 허허로운 마음이 마을 한 구석 보일듯 말듯한  조그마한 시골 책방하나 발견했다. "Half Price Books"에 처음 방문한 날, 간판대로 이 서점의 모든 책은 무조건 반값이었다. 물론 대부분이 오래된 책이었지만 심심찮게 새 책도 서너권씩 찾아냈다. 두 번째 찾아갔을 때, 새학기에 교재로 선택된 “물질과 전자기파의 상호작용”에 관한 물리학 책이 그곳에 있었다. 책 표지에 연필로 3 개의 숫자가 보였다. 80달러->40달러->20달러! 비싼 두 값은 빗금쳐져 있었다.
















 


몇일 전 학교 서점에서 분명 80달러였던 책이 이 책방에선 20달러였다. 횡재한 기분으로 두 권을 사서 한권은 물리학과 한국유학생에게 선물했다. 나중에 가격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이 서점은 어떤 뜻있는 사람이 매년 폐기처분되는 무수한 책들과 새로 책을 만들 때 사라질 나무들을 생각해서 출판사의 협조로  폐기할 책들을 반 값으로 유통하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아프리카 어려운 나라에도 책을 보내고, 자선기관에도 책을 기부한다고 했다. 책이 정해진 기한 내에 찾는 사람이 없으면 일단 가격을 다시 반 값으로 내린다. 100->50->25 그래도 찾는이 없으면->12달러로 팔겠다. 그래도 없어, 그럼 6달러.


 


무엇이든 세 번째가 중요하다. 하나, 둘, 그리고 도약. 세 번째 약간의 설레임으로 그 책방을 방문했다. 이번에는 책이 아니었다. 발견한 것은 슬라이드가 300 장 빼꼭이 삽입된 빨간 커버의 슬리이드 모음집이었다.

 

무슨 슬라이드?

행성, 성운, 그리고 은하의 선명한 스펙타클을 담은 슬라이드!.

그래, 문제는 가격이다. 음, 500 달러라도 사겠다!

 


표지에 희미한 연필로 5 달러! 믿거나 말거나 이다. 이런 때 일단 돈부터 먼저 지불한다. (세상 모임 총무의 수칙 하나, 돈부터 먼저 받아 둔다)


 


별 세계와 긴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슬라이드는 1970년대 보이저호 바이킹호가 태양계를 탐사할 때 행성과 수 십 개의 위성들을 접근하면서 촬영한 사진이 많았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구글에서도 현재 이 사진들을 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인터넷 시대 이전의 자료여서 그리고 고해상도 사진이어서 디지털 작업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슬라이드를 제대로 보기위해 그 해 년 말 슬라이드 프로젝트를 구입했다.


 

모든 유학생들 한 숨 돌리는 금요일 밤에는 홀로이 그  은하세계로 넉 놓고 다녔다. 혼자보기가 아까웠다. 서너명 외로운 유학생들의 요청으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슬라이드 감상회가 열렸다. 300장에서 80장 정도 선별하여 한 시간 진행된 감상회가 귀국 할 때 까지 6회나 계속되었다. 국내에서는 지난 10년간 20 회 정도 별 세미나를 하게 된 출발점은 바로 그 빨간 커버의 슬라이드 세트 발견으로 시작되었다.


 


세 번째 이후는 무한으로 열려있다.


“Half Price Books" 서점은 알링턴 1곳, 오스틴에 3곳, 휴스턴에 5곳, 본사가 있는 달라스에 6곳 있었다. 달라스 본점을 4번 방문했는데, 국내 대형서점 수준이었다.  미국에 다른 주에는 모두 합해서 20곳 정도였다. 텍사스는 한 곳도 빠지지 않고 5년동안  그 곳을 여러차례 순례했다. 학위 디펜스전에 미국여행은 전적으로 책 찾아다닌 기억이 전부인 것 같다. 대략 천 권정도의 자연과학 서적을 구입했다. 정가 대로였다면, 평균 30달러 x 1000=3만 달러 이지만 반값 서점이었기에 구입 가능했다.


 


그 책방 순례과정에 서서히 형성된 몇 가지 생각이 있다.


 


1. 좋은 책은 우연히 만나다.


  (발품을 팔아야 한다.)


 


2. 좋은 책일수록 찾는 사람이 드물다.


  (반 값 책방의 책들은 독자들이 찾지않아 폐기처분을 기다리는 책이었는데, 대부분  어려운 전공 책과 중요한 책들이었다.)

 


 


한반도 교역 역사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 우리나라가 중국에 보낸 물건은  삼삼, 호피같은 특산물이 많았고, 중국으로부터 사신이 갖고 온 것은 주로 책이었다.  그래 책이다! 책의 길은 문명의 길이었다.

 


추사의 세한도 유래를 살펴보시길, 세한도도 중국에서 책 구해준 제자에게

답례로 만든 그림이다.


 


보조스님은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중국에서 대혜종고선사 어록이 출판되자

곧 사신을 통해 직수입해 열람하셨다.

 

삼장법사는 인도까지 책 구하러 갔다.


 



 

 

 



오늘 아침


러시아 천재 물리학자 “란다우”의 일반상대성이론에 관한 책을 읽었다.


1937년에 초반이 나온 이 책은 다른 책에서 전설처럼 언급하고 있는 책인데,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 책을 나는 하프 프라이스 북 서점에서 발견했다.


 


 


 


책 찾아 다닌


 


봄 아지랑이처럼


 


아련히


 


그리운 시절이여.


 


 


  • ?
    임석희 2008.02.10 20:46
    휴가내고 서울 교보문고를 찾으시는 것이 다.... 오랜 반복적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군요!!
    박사님 덕택에 좋은 책을 만나게 되어 늘 고맙습니다~
  • ?
    조동환 2008.02.10 20:46
    저도 박사님때문에 좋은 책들과 인연을 맺게 되어 항상 고마운 마음입니다.
    연휴기간에 박사님께서 추천해주신 책들을 엑셀파일로 정리했는데, 검색이 안되거나
    절판된 책들이 많아서 아쉬웠습니다. 지난 강좌를 들으러 갔을때 소장하고 계신 약4000권의
    책에서 뽑은 엑기스 약200여권의 책이라는 말씀이 패러다임의 전환을 경험하게 하였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박사님을 좀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
    문경수 2008.02.10 20:46
    천문학을 만나신 계기가 막연히 별이 좋아서인줄 알았는데, 이 글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학부시절(2002년) 1년을 공부해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어 오래된 책만 쌓아놓은 도서관을 몇일동안 서성인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발견한 1994년도 출간 도서에 그 해답이 있더군요. 구하지 못해 제본을 떠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설 명절 대전집에 내려갔다가 먼지 투성이에 얼룩진 책을 펼쳐봤습니다. 시의적절하게 이 글을 보니 그시절 기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특히 유학생들과 함께 하셨다는 슬라이드 감상회는 정말 상상만 해도 흥분되는 광경입니다.
  • ?
    서윤경 2008.02.10 20:46
    슬라이드가 자신의 진가를 알아줄 주인을 기다린 것 같습니다.^^
  • ?
    이상수 2008.02.10 20:46
    교훈과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낍니다. 아~! 이제 곧 봄이군요.
  • ?
    문경목 2008.02.10 20:46
    매주 서점에 들르시는 박문호 박사님의 모습이 다시 또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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