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공지
2008.01.31 09:26

사람의 마을에 눈이 오다

조회 수 1352 추천 수 0 댓글 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하산 중에 펄펄, 흰 눈을 만났다. 남녘 매화가지 꽃눈을 다독이는 1월의 눈이다.


거대한 특고압 송전탑들이 <접근금지>라는 붉은 팻말을 걸고 선 청주 서쪽의 부모산.


휘날리는 눈발 속에서 한 달의 휴가를 정리하는 고요함 - 찻길 너머 교회의 첨탑이 환영처럼 신비하다.


산의 관자놀이를 안타깝게도 관통한 송전선 아래를 걸어 내려오면서


1월 5일에 처음 찾았던 독서클럽의 신년 산행을 떠올린다.


 


새 인연에 섞여 함께 올랐던 계룡산. 독서클럽의 길잡이 되신 선생님들과 친절하고 풋풋한 회원들을 처음 만났던 곳. 마침 방학 중이라 이후로 몇번을 더 대전을 드나들며 클럽이 베푸는 토론과 강의에 참가했다. 항공우주공학을 공부 중인 아들과, 낡아가는 교사인 나에게 무척 신선한 방식의 모임이었다. 앞서 많은 시간을 공유해온 회원들의 순수한 열정이 주는 탄력감 때문일 것이다.

 

생명의 유한성을 인정하면서도 초조함 없이 대우주,소우주의 비밀과 감동 찾기에 몰입하는 사람들. 고압 송전탑 아래에도 십자가를 세우고 절을 짓는 사람의 마을처럼 이 독서모임은 따뜻하다.

시공간에 떠도는 온갖 학설들의 귀와, 눈과 입들을 불러 모아

그 진위와 혼란을 수습하고 온당한 정신의 집을 짓기 위해

방위를 보고 터를 닦아 길을 트는 선생님과 서까래를 다듬는 학우들 .

이들의 본 보이기는 성결한 종교적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장 소중한 것들을 (청춘을 지난 자에게 시간은 분명 돈 이상으로 귀한 사유재산이므로 더욱 그렇다)  공동의 것으로 돌리는 생각과 말과 실천이야말로 제대로 학문하는 자의 진면목이 아닐까.

 

오십 중반에 서도록 이렇다 할 이타적 삶을 실천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부러움이 앞선다. 당연히 존경하고 따를 수밖에 없겠다.

내일이면 겨울방학 끝. 나는 다시 아이들의 마을이 있는 괴산으로 돌아간다.

이미 발원이 있었으니 접근금지, 고압송전탑이 가로막더라도 언제든 우린 다시 만나리라.

책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은하수처럼 환한 이 마을에서...

 

-청주를 떠나면서, 옥순원

 

 

Who's 옥순원

?
구슬네
Prev 더 나이든 후에도 어느 분처럼 더 나이든 후에도 어느 분처럼 2008.03.16by 엄준호 참여연대 아카데미┃2014 여름 학기 강좌 신청하세요 Next 참여연대 아카데미┃2014 여름 학기 강좌 신청하세요 2014.05.21by 느티나무지기
  • ?
    강신철 2008.01.31 09:26
    2월3일 천문우주모임에서 뵙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꼭 오세요.
  • ?
    송나리 2008.01.31 09:26
    가장 소중한 것들은 공동의 것으로 돌리는 생각과 말과 실천!
    좋은 말씀 가슴에 새기며

    언제든 다시 만날것이기에 그날을 기다립니다.
  • ?
    임석희 2008.01.31 09:26
    글을 읽는 동안 옥순원 선생님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리네요.. 환청???
    사람마다 글 냄새가 다른데, 선생님의 글은 참으로 뭐랄까... 따뜻합니다. ^^
  • ?
    윤보미 2008.01.31 09:26
    선생님.. ^-^ 저도 오십의 중반에 들어서는 날이 오겠죠. 과연 그 때에 선생님과 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지... ^-^ 저도 닮고 싶어요.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84 공지 100books서버, 3P Networks에 가다 8 김홍섭 2008.03.21 1362
483 공지 충북민언련 언론학교 합니다!!! 1 충북민언련 2008.05.07 1361
482 공지 [프로젝트 써] 5/6 : 5차 모임 공지 이정원 2008.05.06 1358
481 공지 3/22 온지당 에피소드 - 미소짓던 순간들 4 임석희 2008.04.07 1358
480 공지 안녕하세요^ ^ 처음인사드립니다 8 박별 2008.08.04 1357
479 공지 안녕하세요 1 김소연 2008.07.11 1357
478 공지 인사드립니다. 4 해연 2008.09.28 1356
477 공지 가입인사드립니다. 3 박노민 2008.04.29 1356
476 공지 참 재미난 박사님 강의 ^-^ 4 윤보미 2008.02.17 1356
475 공지 148모임 벼락치기 김경희 2008.08.26 1355
474 공지 블랙홀 특이점을 일견 하신건가? 2 박문호 2008.02.10 1355
473 공지 [공지]우천예보로 산행연기합니다. 1 송나리 2007.07.01 1355
472 공지 두번째 독서토론-현대음악과의 만남 3 이나라 2008.04.11 1354
471 2011년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봄강좌 개강 느티나무지기 2011.02.25 1353
470 공지 생명이란 무엇인가 제본 신청 회원님들 보셔요^^ 9 양승옥 2008.09.05 1353
469 공지 모르는 게 약, 아는 게 힘 1 이나영 2007.12.27 1353
468 공지 더 나이든 후에도 어느 분처럼 4 엄준호 2008.03.16 1352
» 공지 사람의 마을에 눈이 오다 4 옥순원 2008.01.31 1352
466 참여연대 아카데미┃2014 여름 학기 강좌 신청하세요 느티나무지기 2014.05.21 1350
465 공지 off-line 독서모임에 참여하려 .... 2 이정아 2007.09.10 135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87 188 189 190 191 192 193 194 195 196 ... 216 Next
/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