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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일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서

by 양경화 posted Nov 2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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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희망의 인문학>을 읽고 있을 무렵 참으로 생생한 꿈을 꿨다. 이 공익영화같은 꿈에 나 스스로 너무나 감격하여 며칠간이나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꿈의 내용은 이렇다.





나는 가난한 지역의 시장통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다. 질척질척한 시장 골목은 일에 바쁜 엄마나 할머니의 관심 밖에서 소란스럽게 노는 아이들이 항상 많았다. 어느 날, 그 골목에서 아주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할머니랑 사는 아이였는데, 무릎 아래에 상처가 번져 크게 곪아 있었다. 아이가 아프다고 징징거리며 울자, 할머니는 운다고 야단을 치면서 좌판 옆에 있는 축축하고 시꺼먼 걸레로 상처를 한번 쓱 문질러주고 마는 것이었다! 그 광경이 너무나 끔찍하여 나는 벌벌 떨었다. 그리고는 그 아이를 할머니한테서 끌어내어 약국으로 데리고 왔다.





나는 약국 뒷방을 개조했다. 가재도구는 모두 치워버린 후 노란 장판을 깔고 아주 밝은 형광등을 달았다. 문을 제외한 세 벽에는 키 큰 책장을 세우고 어린이 책으로 가득 채웠다. 그 날부터 시장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는 이렇게만 말했다.


“놀고 싶으면 이 방에서 놀고, 자고 싶으면 이 방에서 자라”


책 외엔 아무 것도 없지만 아주 환한 방. 시장 아이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방에서 책을 베고 자기도 하고 책으로 집쌓기 놀이도 했다. 종종 책을 들쳐보는 아이들이 생겼고 벽에 기대거나 엎드려서 책을 보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난 약을 팔다가 가끔 뒷방으로 가서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무척이나 행복해했다.





이건 현실의 내가 ‘꿈도 꾸지 못한’ 일이다. <희망의 인문학> 때문이었을까... 그 후 오랫동안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리라 생각했다.





어제 도정일 교수의 강의를 아침에 출근하면서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갑자기 그 때의 꿈이 생각났다. 흥분이 다시 휘몰아쳤다. 그래... 바로 그거야...!





도교수님은 32권의 책을 계획하고 계시지만 아직 하나도 못쓰고 있다고 하셨다. 나는 교수님이 1권만, 진주알 같은 책 딱 1권만 쓰셨으면 좋겠다. 그럼 나머지는?


교수님이 하고 계신 도서관 건립 사업은 32권이 아닌 320권, 3200권의 책을 쓰는 일이다!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생각을 키우다가, 커서는 이를 응축한 책을 쓰게 될 것이다. 10명의 아이들이, 100명의 아이들이, 앞으로 10년 후, 100년 후에도 교수님을 대신하여 그 도서관에서 책을 쓸 텐데!!!





도교수님의 도서관 건립 사업에 나도 조금이나마 돕기로 했다. 개꿈일지라도 그게 내게 길을 비춰줬고, 어제의 강연에서 확실히 깨달았다. 어제 도교수님의 강의는 내게 최고의 강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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