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샘프라스 vs. 페더러

by 이정원 posted Nov 19, 200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는 피트 샘프라스와 테니스의 황제 로저 페더러. 샘프라스와 페더러는 각각 36살, 26살로 10년 터울이다. 100 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한 두 테니스 스타는 동시대를 살았지만 이들의 맞대결은 2001년 윔블던 16강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샘프라스에게는 은퇴전, 페더러에게는 데뷔전이나 다름없었던 그 경기에서는 떠오르는 신예 페더러가 접전 끝에 세트스코어 3 : 2로 이겼었다.

 

많은 테니스 팬들은 전성기의 샘프라스와 현재의 페더러 중 누가 더 강한지를 놓고 즐거운 상상을 하곤 했었다. 샘프라스는 테니스를 기가 막히게 잘 치는 선수였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바로 그의 단점이었다. 매 경기마다 너무 쉽게 이겼기때문에 샘프라스의 경기는 대부분 시시했다. 랠리도 없이 서브 에이스 혹은 강서브에 이은 3구 째 발리로 스코어를 따내는 그의 플레이스타일은 관중들로 하여금 상대편 선수를 응원하게 만들었다. 샘프라스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아가시나 마이클창과 같은 선수들이 오히려 인기가 좋았던 것 같다. 또한 샘프라스는 말도 표정도 없는 선수여서 기자들에게도 인기가 없었다. 경기 중 샘프라스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의 유일한 표정은 서브 넣기 전 혀를 살짝 내미는 것이었다. 마이클 조던이 공중에 날아올라 덩크를 내려꽂으려는 순간에 그랬던 것처럼. 나는 어렸을 때 샘프라스를 무척 좋아했는데 특히 서브 넣는 폼을 좋아했다. 왼발을 살짝 들어 박자를 맞추고 공을 토스하는 순간 혀를 내미는 표정이 귀엽고 멋있었다.
 
1995년 호주오픈 8 강전, 샘프라스와 짐 쿠리어의 시합은 샘프라스의 다른 면모를 보여준 시합이었다. 샘프라스는 경기 직전 그의 코치가 뇌종양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샘프라스는 매우 낙심한 상태로 경기를 치르면서 쿠리어에게 두 세트를 먼저 내주고 말았는데, 그때 관중석에서 '코치를 위해 이겨라'라는 함성이 울렸다. 그러자 샘프라스는 참았던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고, 샘프라스는 정말 이기기로 결심했다. 서브를 넣을 때마다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면서도 샘프라스는 코치를 위해 내리 3 세트를 따내어 경기를 뒤집고 만다. 샘프라스는 그 대회 결승전에서 아가시에게 졌지만 관중들은 샘프라스의 눈물을 기억한다. 경기 중 두 뺨을 타고 흐르는 절대 강자의 눈물을.

 

페더러는 정말 끝내주는 선수이다. 현재 라파엘 나달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다. 페더러와 나달은 2007년 프랑스오픈 결승, 윔블던 결승에서 차례로 맞붙었는데 나는 세계랭킹 1, 2위의 대결인 이 두 경기를 모두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프랑스오픈은 클레이코트(흙바닥)에서 치뤄지는데 클레이코트에서는 현재 나달을 당할 자가 아무도 없다. 나달은 2 년 동안 클레이코트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았고 연승기록으로서는 독보적인 81연승 대기록을 가지고 있다. 나달의 클레이코트 연승기록을 저지한 선수가 페더러이긴 했지만, 클레이코트에서의 전적은 나달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 역시 프랑스오픈 결승에서도 페더러는 나달에게 맥없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지만 윔블던에서는 달랐다. 윔블던 경기는 잔디코트에서 치뤄지는데 페더러와 나달의 윔블던 결승은 근래에 보기 드문 명승부였다. 이것은 나달이 많이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달은 페더러를 끝까지 물고 늘어졌지만 페더러는 결국 나달을 떨쳐내고 윔블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페더러는 2007년 호주오픈에서 무실세트 퍼펙트 우승을 차지하고 역대 최장기간 세계랭킹 1위 기록을 가진 현존하는 최고의 선수이다. 하지만 역대 메이저대회 최다 우승 기록(14 회)은 샘프라스가 가지고 있고 페더러는 12 회로 샘프라스를 추격하고 있다. 현재 추세라면 페더러는 샘프라스가 가진 기록을 대부분 갈아치울 것이다. 하지만 샘프라스는 이미 그것을 해냈고 페더러는 앞으로 많은 날들을 지금처럼 쳐야 그것이 가능하다.

 

피트 샘프라스와 로저 페더러.

세기의 맞대결이 펼쳐진다.

그것도 서울에서. 바로 내일이다.

어느 누구도 샘프라스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시니어투어 선수이다.

하지만 두 선수의 시합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가슴뛰는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