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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나이

by 양경화 posted Nov 1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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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신문에서 무슨 책의 저자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외국에서 늦은 공부를 시작했고 이후 뚜렷한 직업이 없이 평생을 읽기와 쓰기에만 몰두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공부 사이코’였다. 공부 말고는 사교 활동도, 명예도, 권력도, 재물도 필요치 않은 것 같았다. 그가 허름한 집에서 입에 거미줄 쳐지고 엉덩이가 물러터지도록 책만 읽는 모습이 절로 떠올랐다.





그 기사가 아직까지도 선명히 기억되는 이유는 인터뷰 후에 일어난 일 때문이다. 인터뷰가 끝나자 저자는 뜬금없이 기자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다. 기자에게도 그건 좀 의외의 질문이었는지 주저주저하며 대답하자 저자가 한 마디를 날렸다. 이게 그 기사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마흔? 공부를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나이지.”





허! 그의 말에 난 야구 방망이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팔팔할 나이인 나도 정신이 번쩍 들었으니 마흔의 기자는 더 그랬을 것이다.





시간이 오래 지나도 그 ‘공부 사이코’가 한 말이 잊혀지지 않았다. 가끔씩 난 그의 말을 되뇌곤 했다. 마흔... 공부를 시작할 나이...


그런데 며칠 전 독서클럽의 게시판을 읽고 있다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왜 기자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젠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학습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이미 분명히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학교에서 배운 공부는 살기 위한 공부다. 기본 지식과 전문 지식을 얻어 직장과 일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부. 마흔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인생 괘도에 제대로 진입한 때를 말한다. 생활이 안정되고, 아이들은 웬만큼 자라서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다. 주변의 들뜨고 복잡한 관계들도 어느 정도 가라앉는다. 주변이 정리되고 비로소 내가 보이는 나이. 그 나이가 되었을 때 해야 할 일. 그에게 그것은 골프도, 재테크도, 승진도 아닌, 바로 독서를 통한 '진짜' 공부였다.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바로 그 학습독서인 것이다.





나이 먹는 걸 싫어하는 이들이 많지만 솔직히 나는 마흔을 기다려왔다. 아이들이 크면 좀 여유가 생길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마흔 이후로 미루었다.


'뭐여? 하고 싶음 그 때부터 시작하면 되지 마흔 땡! 종 치면 하려고?'





아뿔싸! 그런데 마흔을 겨우 몇 년 앞둔 지금, 독서 클럽에서 학습독서의 종을 쳐버렸다. 종이 울렸으니 출발하지 않고 배길 수가 있나, 속도가 늦더라도 열심히 달려야지!


요즘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은 내게 채찍과도 같다. 아직도 멀었다고 질책하기도 하고, 달리라고 격려하기도 한다.





책을 읽고 싶었다. 그럼 읽으면 된다. 알고 싶었다. 그럼 배우면 된다. 서른일곱? 내겐 공부를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나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