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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첫인사라할까요?

by 이정원 posted Oct 0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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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00북스클럽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이미 2년 전에 알았던 모임이다.

그런데 나는 그 모임 현장(ETRI 3동)과 너무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에,

이 주옥같은 멤버들이 모인 '모임'을 보지 못하고 '강연'만을 보아왔다.

떠올려보니 정재승 교수, 황동규 시인, 일랑 선생의 강연 등

내가 좋아하는 분들의 강연에만 참석하곤 했다.

 

화요일 저녁은 일주일에 한 번 축구하는 날이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ETRI 표현봉 박사님이 100북스클럽에서 재즈 강연을 하셨을때도

나는 몇 번이나 갈등하다가 결국 축구를 하러 갔었다.

한여름이었고 월드컵 열기가 한창이던 축구 시즌이었다.

재즈 이야기는 표현봉 박사님 댁에 가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몇 주 전 나는 처음으로 100북스클럽 회원의 발표 모임에 참석했다.

책 제목이 나를 사로잡았다. <생명 최초의 30억 년>

사실 그날은 한달 전부터 미리 약속된 또래 가족 모임이 있었다.

나는 세상이 두쪽나도 이 발표를 들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별로 갈등하지도 않았다. 결국 나의 선택은 옳았다.

그리고 그날 처음 뒤풀이에 따라갔다.

 

내가 아직 발을 담그지 못한 분야 중 하나가 천문학인데

항상 천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ETRI 에서 유명하신 박문호 박사님을 찾아가면 된다는 해결책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짬을 못내고 있었다. 내가 모티브를 스스로 찾아 얻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모임은 나에게 굵직하고 무게감있는 모티브를 던져준다.

무차별 공격에 즐겁고 행복하다.

 

나는 쉽게 빠진다.

단시간에 꽤 깊이 빠지지만 또 다른 것에도 쉽게 빠지기 때문에 금방 빠져나온다. 일부러 빠져나온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다. 어느 한 곳에만 빠져살기에는 인생이 짧다.

좋아하는 바둑도 끊고, 자동차 잡지도 끊고, 오디오 잡지도 끊고, 영화 잡지도 끊었다.

클래식 잡지를 보고 역사를 공부하고 미술사를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아내가 임신하면서부터는 연애시절부터 주말마다 다니던 답사 여행을 그만뒀다.

요즘은 다시 힙합을 듣고 생명과 우주가 궁금해서 책을 읽는다.

 

지난 몇 주간 몇 번의 모임을 통해 회원들을 많이 알게 됐다.

잘 조직되고 친화적인 모임일수록 신입회원이 끼어들기가 힘들다.

회원들의 이름과 과거를 물었다. 친구가 되려면 이름을 외워야 한다.

별자리 공부할 때 가장 먼저 할 일이 별 이름 외우기가 아니던가.

 

주말부터 100북스클럽 자유게시판에 살면서 

2002년 6월 18일에 관리자가 등록한 1번 게시물부터

지금 내가 올리는 게시물 바로 이전의 글까지 모두 훑었다.

회원들 누가 언제 무슨 연유로 이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지,

각자의 나이와 소속, 관계 등을 대충 알 수 있었다.

이 모임의 성격과 게시판에서의 글쓰기 분위기 등도 알 수 있었다.

게시물을 통해 많은 고수들을 만났고 기뻤다.

 

인생은 감동하는 자의 것이다.

감동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을 깰 때 수반하는 고통에 대한 보상이다.

인간은 새로운 사상, 새로운 관점, 새로운 음악,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발전하고. 감동한다.

내가 볼 때 우리 모임의 회원들은 쉽게 자주 감동한다.

 

그런데 나는 잘 모르겠다.

원래 쉽게 감동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친구들과 팀원들에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쉽게 감동하는 감정의 양극단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 모임에서의 경험이 세상 사람 어느 누구에게나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인지,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하고 호기심이 가득한 사람들에게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만난 어떤 사람들보다 쉽게 감동받는 사람들이 우리 회원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서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 여자를 만나서 결혼하게 된 것은 나로선 큰 행운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무더기로 모여 있는 이 모임이 좋다.

 

내 인생의 화두는 '소통'이다.

머리 속에서 좋은 시가, 좋은 악상이, 좋은 정책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그것을 남들에게 알리지 않고 자기만 알고 죽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통을 두려워한다.

내가 고마웠으면 고맙다고 표현해야 하고,

누군가의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내가 피해를 보고 있으면 나의 피해를 알려야 하고,

내가 감동을 받았으면 그 감동을 숨기지 말아야 한다.

그 감동을 남에게 전하기를 두려워 말고

그것이 온전히 전해지는지 아니면 중간에 거부되는지 계속 실험해야 한다.

박문호 박사님은 끝없는 실험을 통하여 감동을 전하는 방법을 터득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사, 정치가, 명교수와 같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이 모임에는 고수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신입회원이나 학생들이 쉽게 자기 표현을 하지 못하는 듯이 보인다.

그런 이유로 예전에 공개글쓰기를 할당하는 이벤트도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을 드러내면 부족함이 드러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부족함이 온전히 드러나더라도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실험을 계속 하지 않으면 부족함을 채울 수도, 장점을 개발할 수도 없다.

 

좋은 글에도 댓글이 생각보다 적다. 조회수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글과 연관된 자신이 아는 내용을 자랑스럽게 댓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러면 좋겠다.

겸손한 것도 좋지만 마음껏 잘난척도 해보고 아는 것을 잘 정리해서 표현해 보면 좋겠다.

고수들이 보기에 가소롭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소통을 가로막는다.

고수들끼리의 소통을 구경만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고수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감동시키자.

 

* * *



게시판에 독후감이 아닌 글을 처음 써보는데

앞으로 종종 개인적인 글과 예전에 썼던 독후감이나 여행기 등을 올려보겠습니다.

많이 소통하고 함께 발전하는 모임이 됩시다.

 

그리고 인사가 늦었습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