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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0 06:31

독서산방 일기

조회 수 1988 추천 수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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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간의 야간근무를 마친 일요일 아침. 나는 양쪽 허벅지의 근육통과 쑤심을 느끼며

 

오늘 있을 마라톤대회를 포기하고 번호표를 반납하고 회사 정문을 나섰다.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우산도 없고 집에가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잠시 정문에 있는데

 

회사선배가 마라톤하러 가자며 꼬셔서 어쩔수 없이 응원차 가게 되었다.

 

비가 더욱 많이 내리고 어차피 응원하는 거라면 열심히 해주자 하는 마음에

 

옷을 갈아입고 첫풀코스 도전자들을 응원하였다. 그런데 어차피 젖은 몸.

 

그냥 뛰기로 하고 10km를 뛰고 집으로 돌아왔다.

 

야간근무를 마친터라 잠을 자야하겠기에 강교수님께 독서산방에 대해 물어보고

 

오늘은 비가 와서 힘들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을 청하였다.

 

얼마후 교수님께 연락이 와서 지숙씨에게 연락을 하고 허겁지겁 옷가지랑 라면 몇개만

 

들고 집을 나왔다.

 

비가 오고 몸도 아프고 거기에 잠도 못자고 달리기 까지 하고 온 나.

 

하지만 최근들어 독서를 이핑계 저핑계 대며 많이 못해서 독서산방에 가서 책에 푹

 

빠져 지내다 오겠다고 생각해서 그런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강교수님의 지인들과 합류하여 독서산방의 입구에 도착했다.

 

산속에 있는 곳이라 비가 오면 물이 흘러 길이 많이 질고 일반차량은 오르기 힘든

 

곳이라더니 과연 그랬다. 난 슬리퍼형 샌들을 신고 왔는데, 다음엔 등산화면

 

충분할것 같았다.

 

식량을 변변치않게 준비하지 못해 난 이참에 단식하며 책을 읽어보리라 마음먹고

 

왔는데,  강교수님과 지인분들이 맛있는 삼겹살과 와인, 막걸리, 감자등을 준비해

 

주셔서 배불리 먹었다.

 

또한 사모님께서 구수한 된장찌게를 해주셔서 너무 맛있게 먹었다.

 

강교수님 지인분들께선 음악을 하시는 분들이시라 새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고

 

평소 술을 좋아하지만 막걸리만은 다음날을 생각하여 먹지 않았던 내가 강교수님이

 

추천하신 막걸리는 너무  맛이 좋아 먹었다.

 

강교수님의 친절한 독서산방사용법을 듣는것을 끝으로 즐거운 저녁을 마무리 짓고

 

본격적인 독서산방에서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음식도 맛있게 배불리 먹고 와인도 한잔, 막걸리도 한잔 먹고 나니 졸음은 오고

 

비도 하늘에 구멍이 난듯 쏟아붇고  난 책을 조금 보다가 이내 잠을 청했다.

 

이틀째.

 

오랜만에 푹 자고 아주 편안한 아침을 맞이했다.

 

햇살에 스스르 눈이 떠지는 그 상쾌한 느낌.

 

이것이 얼마만인가? 산속이라 공기도 좋고 책의 향기와 와인 덕분인가?

 

기분좋은 아침 난 바로 햇살에 책을 펼쳐들고 빵과 커피한잔으로 가볍게 아침을

 

먹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독서에 빠졌다.

 

이내 울리는 전화기 소리.

 

아뿔사. 내가 전화기를 꺼둔다는것을 깜빡했구나.

 

옆에서  즐겁게 서로 경쟁하며 책을 읽고 있던 지숙씨는 내가 통화하는 사이에

 

진도가 많이 나가고 있었다.

 

회사업무, 다른팀과의 회식, 마라톤지인들, 각종 스팸성 메세지들.

 

2시간동안 허우적대면 업무를 마치고 이내 난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전화기를 꺼둘수없는 입장인지라....

 

자동응답이 되는 전화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어쨌거나 전화기를 배게속에 파묻은후 난 밖으로 나가 탁자앞에 앉아 강교수님께서

 

말씀하신 텃밭과 산을 보며 책을 읽었다.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책을 다읽고 미래구상까지 하고 가겠다는 나의 욕심은 책을 조금 더 읽으면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해가 안가는 내용을 되씹으며 읽어나가니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

 

오랜만에 느끼는 풀벌레소리, 바람소리, 맑은 공기가 나의 귀와 눈과 코를 간지럽히니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책만 읽기에는 아까운 시간. 난 책을 읽다가 생각에 잠기고 다시 읽다가 생각에 잠기고

 

지숙씨와 대화를 나누다가 한가지 알게된 사실.

 

분명 소립씨와 강교수님은 이곳에서의 시간이 더디 흐른다고 했는데 전혀 그렇게

 

느낄수가 없었다.

 

너무나 시간은 빨리 흘러갔다.

 

아니면 우리가 짧게 느꼈던것인지도 모른다.

 

어제는 비가 와서 별을 못봤지만 오늘은 별을 볼 수 있겠지 하는 기대를 하며 저녁에

 

창밖으로 벌어지는 풍경을 보았는데, 아쉽게도 별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강교수님께서 독서산방을 설계를 그러한 의도로 하셨는지 몰라도

 

밤중에는 완전한 어둠이 우릴 반겼다.

 

능선과 하늘이 맞다아 선명하게 구분이 되고 달빛과 어둠이 조화를 이루었다.

 

마을쪽과 반대로 거실문을 만든 배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달빛과 산속의 풍경을 만족하고 둘째밤을 맞았다.

 

처음 독서산방에 들어왔을땐 책을 빨리읽고 한권더 읽어 보겠다는 마음으로

 

왔는데, 그 마음은 금새 바뀌고 말았다.

 

빨리 읽고 싶지 않은 마음. 그런 마음이 더 강했다.

 

직업특성상 주말보다는 평일에 오게 되었는데, 조용하고 한가롭고 자연과 가까이

 

할 수 있어 좋았다.

 

이런 좋은 곳을 개방하여 주신 강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앞으로 시간이 허락하면 자주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 ?
    김주현 2007.09.20 06:31
    같은 공간에서 함께한 그리고 두분의 독서산방 일기를 들으니 책, 냉정과 열정사이가 생각납니다. 역시 우리에겐 니체가 휴식으로 다가오는 철학자 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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