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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야 네가 옳다

by 양경화 posted May 1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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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복이는 언제나 이딴 얘기만 했다 -  김훈


 


함민복의 글은 삶의 갈피갈피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그는 삶의 고통이나 슬픔과 더불어 아름답고 강인한 친화력을 보인다.


이 친화력이 언어적 장식의 유혹을 뿌리치고 삶의 구체성을 향해 곧게 나아갈 때, 그는 <제비야 네가 옳다>또는 <눈물은 왜 짠가>처럼 짧고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함민복은 강화도 서쪽 바닷가에서 버려진 농가를 빌려 살고 있다. 나는 라면과 소세지를 장만해서 민복이네 집에 몇 번 놀러 갔었다. 부탄가스도 사다 주었다.


우리는 바닷가 갯펄에 앉아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라면을 끓여서 소주를 마셨다.


나는 민복이가 우리나라의 중요한 시인이라는 것을 아는데, 민복이는 이걸 전혀 모른다.


만복이는 취중에도 문학 얘기는 일절 하지 않는다. 민복이는 제비가 딴 집에만 집을 짓고 자기 집에 와서는 구경만 하고 갔다고 투덜거렸으며, 올 가을에는 망둥이가 살이 덜 올랐다고 걱정했다. 민복이는 언제나 이딴 얘기만 했다.


가난과 불우가 그의 생애를 마구 짓밟고 지나가도 그는 몸을 다 내주면서 뒤통수를 긁고있다. 그는 세상을 버리지 못하는 은자隱者이고, 숨어서 내다보는 견자見者이다.


                                                         


*******


제비야 네가 옳다



 




강화도 우리 동네에는 이십여 호의 집이 있다.


그 중 제비가 집을 짓지 않는 집은 빈집 두 집과


남자 노인이 혼자 사 는 집. 그리고 역시 남자 혼자 사는 우리 집 뿐이다.


재작년 봄, 제비가 날아와 집을 지으려고 거실까지 들어와


내 삶을 염탐할 때, 나는 몹시 마음이 들떴다.


그러나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에 집을 짓지 않는 제비는


딴 곳으로 날아갔다.


나 아닌 다른 생명체와 한 지붕 밑에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은 낙담이 컸다.


작년엔 제비를 속여보려고 노력도 했었다. 티브이를 크게 틀어


여자와 아이들 목소리도 내고 빨래를 널어보기도 했다.


그런 데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비는 한 가정을 이루지 않고 살아가는 나의 삶을,


언제 떠날지 모르는 뿌리가 없는 삶이라고 결론을 내렸던것 같다.


 


 -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 중에서


 


머리가 아파서 함민복 시인의 글을 찾아 읽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세상을 정화하는 박테리아처럼, 시인은 사람들의 때를 대신 닦아주는 일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위의 시가 마음을 잔잔하게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