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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답사를 다녀와서 3 - 땅끝

대전에서 출발하여 광주까지는 고속도로가 있어 쉽게 왔는데 담양 소쇄원 관광 후 점심 식사를 하고 3시경에 출발하여 땅끝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기울어 주변이 어둑어둑해진 7시 경이었다.
일행들과 숙소에 짐을 풀고 찻길을 따라 어둠을 더듬으며 바다가 있음직한 쪽으로 걸어가니 멀리 한 두개 불빛이 수면에 반사되어 비치는 것으로 보아 바다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 사방은 이미 캄캄한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눈이 밝아질 때를 기다려도 바다의 어렴풋한 풍경조차도 감상할 수가 없어 내일 아침에 보기로 하고 발길을 돌려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식당을 찾아 나선 젊은 회원들을 만났다. 여행 스케줄 짜는 일부터 숙소 예약, 차를 빌려 직접 운전해 가며 길 안내까지 도맡아 살림을 하고 있는 윤호 군의 얼굴이 마주치는 순간, 한가롭게 바닷가나 거닐다 돌아오던 내가 무언가 범행을 하다 들킨 듯한 미안함에 총총 걸음으로 숙소로 돌아와 이 방 저 방 배치 상태를 점검하고 박문호 박사가 어디쯤 오는지 전화도 걸어 보면서 잊었던 나의 할 일들을 챙겼다.
바닷가에 왔으니 회 한점이라도 먹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여론에 밀린 탓이기도 하지만 이 땅끝 마을에는 식당이라고는 온통 횟집뿐이라 별 수 없이 횟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메뉴를 보니 정말 자연산인지는 알 수 없으나 회 1 킬로당 6만원씩 했다. 일인 당 한 끼 식사비를 5천원씩 계산해서 빠듯하게 예산을 세워 떠난 여행이라 저녁 한 끼에 전 식사비 예산을 써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가장 값이 싼 해물탕을 먹기로 했다. 해물탕이라고 해야 아이들 표현을 빌리자면 껍데기만 크지 알맹이가 없어 맵고 짠 국물만 먹은 기억이 날 뿐 맛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는 최악의 식사였다. 회를 안 먹길 정말 잘했다. 점심 때 소쇄원 앞 ‘절라도’ 식당에서 먹은 청국장 맛이 그립고 맛깔스런 주인 아주머니의 전라도 사투리와 생강차 맛이 그리웠다. 다음에 또 올 기회가 있다면 땅끝 마을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식사를 하고 들어오든지 먹거리를 준비해서 손수 해먹든지 해야지 이 동네는 너무 바가지가 심해서 혹 식사로 인해 여행 기분을 잡치지 않을까 우려가 될 정도이다.
이튿날 6시 40분경 눈을 뜨니 늦게 도착해서 내 옆에서 자던 박문호 박사가 이미 나가고 안 보이고 현교수님과 최병관 기자가 아직 자고 있었다. 대충 눈을 비비고 옆방에서 자던 석주를 데리고 오니 현교수님이 일출을 보시겠다며 따라 나서신다.
밖에 나오니 언제 일어났는지 주차장에서 서성이던 박문호 박사님이 나를 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오라고 손짓을 한다. 이미 밝아지기 시작한 동쪽 하늘을 가리키면서 별 두개가 보이느냐고 물으신다. 금성은 금방 찾을 수 있었지만 나머지 작은 별은 석주가 먼저 “아! 별 두개가 보인다!”라고 소리친 다음에야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해가 뜨는 곳과 금성, 그리고 달을 이으면 하나의 거대한 호가 형성되는데 그 위치는 계절 따라 변하지만 모양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설명하는 박문호 박사의 설명에 또 한번 우주의 신비를 경험한다. 미국이며 호주며 별을 관찰하기 위해 해외여행도 서슴치 않고 별보기 모임에 참여하여 적극 활동하고 계신 박문호 박사님이 별에 관한 지식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길을 물어 전망대가 우뚝 서 있는 사자봉을 오르니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을 전경으로 붉은 배경색을 동녘하늘에 짙게 드리우며 아침 해가 금방이라도 산등성을 넘어 튀어오를 듯 꿈틀대고 있었다. 경공술을 쓰는지 벌써 저만치 산길을 오른 박문호 박사를 부지런히 쫒아가고 있는데 석주가 “해다!”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화들짝 뒤를 바라보니 해가 빠끔히 섬산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아직 전망대에 다 오르지는 않았지만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장엄한 일출 광경은 일행의 발길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히 강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일출 광경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건만 가슴 가득히 저며 오는 흥분과 오케스트라가 어느 순간에 꽝하고 모든 악기를 한꺼번에 치는 듯한 전율을 느끼게 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현교수님도 가던 길을 멈추고 해송 사이로 벌어지고 있는 자연의 교향곡에 귀를 기울이고 계셨다. 어린 석주에게도 이 위대한 자연의 에너지는 아낌없이 흡입되고 있었다. 석주도 “야! 정말 멋있다!” 라는 한마디 감탄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었던지 넋을 놓고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10살 밖에 안 된 석주가 이런 반응을 보이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해뜨는 현상에 대해 열 마디 물리학적 천문학적 원리에 대한 설명이 이 한 순간의 진한 감동에 비하랴.
전망대로 오르는 길에는 땅끝이 지닌 의미와 이곳을 다녀간 감상을 적은 시비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그중 김지하의 시 [애린]을 여기 적는다.


땅끝에 서서

더는 갈 곳 없는 땅끝에 서서

돌아갈 수 없는 막바지

새 되어서 날거나

고기 되어서 숨거나...

혼자 서서 부르는

불러

내 속에서 차츰 크게 열리어

저 바다만큼 저 하늘만큼 열리다

이내 작은 한덩이 검은 돌에 빛나는

한오리 햇빛 애린 나


뭍에서 내려왔으니 땅 끝이지 되돌아서서 다시 뭍으로 들어가려면 시작점이 되니 시작과 끝은 본래 하나였음을 깨달은 선인들의 지혜가 새삼 떠오른다. 우리나라 한 반도 끝점에 내가 서있다고 생각하니 백두산 정상에서 시작해 태백산맥을 타고 내려온 국토의 정기가 지리산, 무등산, 월출산을 타고 넘어 이 사자봉 정상에 잔뜩 고여 발끝부터 내 몸을 타고 오르는 氣가 느껴지는 듯하다. 땅끝이 국토의 시작이자 끝이듯 일출을 본 이 자리에서 저녁때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고 하니, 대저 사물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같은 것을 가리켜 극과 극으로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고 하는 진리를 깨우치기에 적합한 장소라 하겠다.
땅끝 전망대의 신비로움에 젖어 석주와 함께 봉수대를 감상하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벌써 7시 반이 넘었다. 8시 20분에 보길도로 가는 배가 뜬다고 하니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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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윤호 2004.11.14 09:00
    정말 땅끝의 아쉬운 점은.... 우리가 묵었던 바다가 보이는 민박집(싸고 좋구 친절하고 ^^) 케이프 타운까진 좋았는데, 정말 식당들은 윽!소리 나더군요. 우리 나라 관광지 상인들이 각성할때라고 봅니다. 한 철 장사라해서 꼭 그렇게 해야되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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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윤호 2004.11.14 09:00
    그래도 민박집에서 본 일출(게을러서 전망대 올라갈 시간을 놓쳤다는..ㅠ.ㅠ)과 우리 회원들과 바다를 건너던 그 느낌이란.... ^^ 정말 잊지 못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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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영석 2004.11.14 09:00
    우리 독서모임의 진목면이 나타나기 시작하나 봅니다. 땅끝은 끝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이다. 악은 선의 결여이다. 종교적 2분법적 사고가 구조악과 불행을 자초한다. 다산 그리고 고산에게서 남도의 선인들의 유적과 자연에서 더 많은 것들을 담고 배워야하겠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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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수 2004.11.14 09:00
    그날 이후로 하루 하루 일상이 너무나 소중히 느껴 집니다. 화려한듯 하지만 그대로의 모습인 자연을 닮아 가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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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근호 2004.11.14 09:00
    저의 게으름의 천성을 다시 한번 각성하게 하는 사진입니다. 육신의 편함을 추구하다가 평생 보기 힘든 그날의 일출을 민박집에서만 보았습니다.. 이를 빌어 각성할수 있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추억이라는 영상에 담아서 간직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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