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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답사를 다녀와서

소쇄원

중종 때 사람인 양산보가 설계하고 지었다는 소쇄원은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다. 양산보는 조광조 밑에서 학문을 닦았는데 기묘사화가 일어나 유배된 스승을 따라 능주에 갔다가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죽자 고향으로 돌아와 이 소쇄원을 짓고 평생을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고 한다.
소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두터운 대나무밭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따뜻한 오후였음에도 대나무 밭 가운데로 들어서니 날카로운 바람소리에 한기를 느꼈다. 입구부터가 심상치 않아 그 안에 전개될 정원의 모습에 기대를 갖게 한다. 계곡을 따라 여기저기 조성해 놓은 작은 연못들이 눈길을 멈추게 한다. 형형색색의 단풍든 나뭇잎들이 물위에 한가로이 떠다니는 모습이 옛 선비들의 느긋함을 간직하고 있는 듯 하다.
들어서자 바로 대봉대가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사백여년의 세월을 지켜왔을 초가지붕의 작은 누각을 보노라니 어렸을 적 원두막에서 수박, 참외를 맨주먹으로 부숴먹던 시원한 맛이 입안에 감친다. 양산보는 문객들과 이 정자에서 무얼 했을까? 막걸리로 잔을 채우며 농을 주고 받았을까?
대봉대를 끼고 돌아 담길을 따라가면 오곡문이 보인다. 담끝은 헐어져 있고 담밑으로는 돌을 고여 아이들이 드나들만한 큰 구멍이 나있어 여기에 왜 담을 쌓았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어른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을 남겨놓고 담을 쌓은 이유가 무엇인가? 하긴 지금이야 가물어 수량이 적어 구멍이 크겠지만 비가 많이 와서 수량이 늘어나면 구멍 가득히 물이 들어올테니 둑을 쌓을 요량이 아닌 담에야 물길을 막을 수는 없었겠지. 그리고 보니 저 담은 누가 들어오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쌓은 담이 아니라 안과 밖을 구분하여 공간을 형성하고 골짜기에서 불어올 삭풍을 막기 위한 병풍의 구실을 했을 거라는 내 나름의 해석을 해본다.
오곡문으로 끌려 들어온 냇물은 일부가 나무 홈통을 통과하여 대봉대 옆에 작은 못으로 흘러든다. 이 작은 못에서 넘친 물은 원래 흘러내리던 계곡물과 합류하여 큰 못으로 흘러들도록 설계해 놓았다. 관수의 지혜가 이 작은 정원에도 적용되었던 모양이다. 자연에 최소한의 인공을 가미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리려 했던 양산보의 섬세함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대봉대에서 마주 보이는 계곡 건너편에는 광풍각이 서있고 그 뒤쪽으로 서너계단 위에 제월당이 정원을 내려다 보고 있다. 외나무 다리를 건너 제월당에 이르니 현교수님이 마루끝에 걸쳐 앉아 풍경을 음미하고 계신다. 현교수님과 마주 앉아 옛 선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한담을 주고받으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사백 이삼십년을 거슬러 올라 양산보의 문객이 된 듯하다. 일순 이 아름다운 정취를 담은 시 한수라도 읊어놓아야 문객 노릇을 할 수 있겠다는 의무감이 생겼지만, 문장이 짧음을 한탄하고 어색함에 문지방이나 쓰다듬는 것으로 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월당은 정면 세 칸, 측면 한 칸짜리 목조건물로 왼쪽에 방 한 칸이 있고 오른쪽에 마루를 놓아 사방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게 꾸며 놓았다. 이 제월당의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썼다고 한다. 이 제월당은 주인의 생활공간으로 쓰였고 턱 앞에 서있는 광풍각은 사랑방 격으로 손님들이 묵던 곳이었다 한다. 광풍각은 좌우 3칸 건물로 아궁이에 불을 때서 난방을 하였고 남향으로 계곡물에 인접하여 지은 팔작지붕의 목조 건물이다. 물소리를 베개삼아 죽림의 바람을 덮고 술취한 선비들이 대자로 누워 이 광풍각에서 광란의 밤을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나도 한번 그 자리에 대자로 누워 물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이 소쇄원에는 송순, 고경명, 정철, 기대승, 송시열과 같은 당대의 문인들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그리며 양산보가 손수 설계하고 가꾼 정원이 지금까지 크게 훼손되지 않고 보관되어 우리에게 전해진데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대숲에서 들려옴직한 선비들의 시 읊는 소리를 뒤로 한 채 소쇄원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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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수 2004.11.12 09:00
    교수님에 느낌이 소쇄원을 닮은 듯 합니다. 세세한거 같으면서도 거스르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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