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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25 09:00

아침에

조회 수 2292 추천 수 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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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늦잠에 빠져 있는 아이들. 몇 번 깨우기를 망설이다가 그냥 산으로 간다. 하늘을 보니 비가 완전히 그친 것 같지는 않다. 무거운 비구름은 하늘에서 여전히 대기중이다.

팔과 다리 맨살에 떨어지는 작은 빗방울들이 차갑다. 일렬로 죽 늘어선 가로수 길에 들어선다. 순간 바람이 몰려오자 가로수들은 큰 나뭇잎이 품고 있던 물이 너무 무거워 힘들었다는 듯 바람의 도움으로 한꺼번에 털어 내기라도 해야겠다고 우수수수 쏟아 놓는다.

산은 너무 조용하다. 간혹 뻐꾸기 소리만 들릴 뿐 그 흔한 청설모들도, 산비둘기도 작은 이름 모를 많은 새들도 하나 안 보인다. 나비들만 젖은 날개를 말리려는 듯 따라 다니면서 길을 가로 막는다. 검은 나비 하얀 나비 노랑나비. 가만히 멈추면 달라 붙기라도 할 듯 도무지 나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걸리적거릴 정도로 많은 나비들만이 팔랑거려 마치 이제 비가 그칠 거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시야가 트인 곳이 나타나자 걸음을 멈추고 자리를 정한다. 숲이 온통 비 세례를 받은 상태라 벤치에 앉을 수도 없다. 하늘과 산이 서로 맞닿아 있는 먼 곳까지 시선이 간다. 가까운 산은 초록빛이고 멀리 있는 산은 군청색 빛이다. 군청색 이불을 뒤집어 쓴 듯한 저 먼 산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하얀 구름이 소리 없이 태어나 하늘로 날개 짓하며 날아간다. 깊은 산중에는 커다란 굴뚝이라도 박혀 있는 것일까? 하늘 아래 높은 산에는 소독차와 같은 소리 안 나는 소독 비행기라도 있는 것일까?. 쉬지 않고 하얀 구름뭉치들이 쉬지 않고 일어나 하늘로 하늘로 날아간다. 이 산 저 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연기들은 모두 만나 서로 하나가 된다. 산과 하늘을 연결해주는 하나의 또 다른 세상이 만들어진다.

사람이 안 보이니 덜컥 겁이 난다. 이상한 사람이라도 나타날 것 같아 조금 무서워지는 것이다. 오늘은 끝까지 못 갈 것 같다. 조금만 더 가보기로 하고 생각없이 걷는다. 드디어 한 사람이 앞에서 부지런히 빠른 걸음으로 다가 온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라도 나누고 싶어 인사할 채비를 한다.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시선을 주지 않는다. 매일 아침 보는 아줌마인데 ,갈 때나 돌아올 때나 항상 마주치는 것을 보면 아침마다 두 번을 왕복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빠른 걸음이라 해도 한 번을 왕복하는데는 한시간 반은 족히 걸릴 만큼 등산로는 아주 길다. 두 번 왕복하면 세시간을 산에서 보내게 되는 것이다. 저분은 집에서의 일은 없는 것일까? 산에서 보내는 3시간이 그 분의 유일한 행복인가?아주 빠른 걸음으로 땅만 쳐다보고 바삐 숨가쁘게 걷는 것을 보면 산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분의 제일의 오락은 아닌 것 같은데. 나무와 숲을 보고 새소리에 이끌려 그 새를 쫓아 가본다거나, 곤충의 날개 짓을 눈여겨보는 것 같지는 않은데... 아마도 운동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일까?. 기회가 되면 인사를 나누어 확인해봐야지. 나처럼 키도 크지 않은 아주 작달막한 분인데 체격은 완전히 운동으로 다져졌는지 군살 하나 없는 은 근육만으로 똘똘 뭉쳐진 차돌 같은 몸집이다. 돌아갈 때에도 또 한 번 틀림없이 마주치게 될 것이다.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 주고 싶었다는 듯이 돌아오는 길에 그 아줌마는 단단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매일 마주치게 되는 한 아줌마의 속사정을 궁금해하고 있는 사이, 먼 곳을 향해 바삐 움직여 달아나고 있는 검은 구름떼들, 그 뒤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가벼운 하얀 구름들이 하늘 높이 모습을 드러냈다. 돌아오는 길에는 간간히 새들의 소리도 들리기 시작한다. 젖은 날개를 말리고 먹이도 찾을 겸 둥지를 나온 듯하다. 숲을 빠져 나와 도로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검은 아스팔트 도로는 벌써 다 말라서 뜨거운 열기를 내 놓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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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영 2003.07.25 09:00
    언젠가 동학사를 혼자 다녀온적이 있습니다. 좌석버스에 가득찬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비온 뒤의 산에서 느낀 상쾌함은 외로이 떠난 혼자만의 산행을 한껏 위로해 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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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영 2003.07.25 09:00
    그때 생각을 많이나게 하는 글입니다. 즐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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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중탁 2003.07.25 09:00
    석련님의 글은 언제나 담백한 한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마치 가보지 못한 곳을 간 듯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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