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조회 수 221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선진국에서 확인한 도서관의 힘

조 규 익 (숭실대 국문과 교수)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책을 소중히 여겨왔다. 그러나 책이 넘쳐나는 오늘날에 사정이 달라졌다. 그 책들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사를 밥먹듯 하는 요즘 생활에서 처분 대상 영순위가 바로 책이다. 가끔 아파트의 쓰레기장에 수북이 쌓이는 화려한 장정의 책들을 보라.

우리 나라 사람들은 책을 별로 읽지 않는다. 공공도서관에서도 책을 사지 않는다. 공공도서관이 책을 사지 않아도 탓하는 국민이 없다. 도서관이 무엇 하는 곳이며 왜 중요한지 아는 정치인도 별반 없다. 이른바 출판대국인 이 나라에서 만드는 책들은 학습참고서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니 두고두고 읽으며 의미를 반추한다던가 그럴 목적으로 책을 보존한다는 것은 애당초 엄두를 내지도 못하는 일이고, 지금의 우리들에게는 그럴 만한 문화의식이고 나발이고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초강대국 미국의 힘이 책과 도서관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그곳에 잠시 머무는 동안 확인할 수 있었다. 너무나 부러운 그들 대학의 도서관 이야기는 이 자리에서 꺼내지도 말자. 틈날 때마다 동네의 도서관에 나가서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진지한 모습을 신기한 눈초리로 구경하곤 했다. 도서관의 주 이용객은 주부와 노인,초중등학생이 대부분이었다. 학생들이라 해도 우리 나라처럼 시험공부나 하러 오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좋은 책들을 마음껏 읽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부대행사로 여는 각종 과외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주부들과 노인들이었다. 구부정한 노인들이 책을 한아름 들고와 반납하고 서가를 돌며 새로운 책을 찾는 모습. 주부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와서 책을 읽거나 대출하는 모습은 선진국의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실감할 수 있게 하는 광경이었다.

점심때만 되면 널찍한 식당을 점령해 수다로 시간을 죽이는 우리네 주부들을 생각하며, 할 일 없이 공원에 나와 먼 하늘만 우두커니 바라보는 우리네 노인들을 생각하며 나는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의 주부와 노인들이 꼬마들 손을 잡고 동네도서관에 나와 독서삼매에 빠질 수만 있다면 그 순간 아마도 우리의 모습은 180도 달라질 것이다. 룸살롱, 갈빗집, 다방, 노래방 등이 촘촘히 박힌 수렁 같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건져내려면 단 한 순간이라도 내면을 가꿀 여유가 있어야 한다. 도시마다 구색으로 하나씩 세워놓은 듯한 도서관이란 으레 학생들이 찾아가 노닥거리거나 시험 공부하는 독서실쯤으로 이해되고 있는 이 후진적 현실을 바꿔야 한다.

과격하고 이기적이며 진지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확바꾸려면" 전 국민이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류의 축적된 경험을 겸허하게 배워야 한다. 그러려면 도서관을 확충하고 도서관 이용을 생활화해야 한다. 도서관 이용의 생활화나 독서 열풍은 단기간의 캠페인으로 이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노인들이 손자녀들을 이끌고 도서관을 찾아 자신들의 진지한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주부들이 장바구니를 든 채 도서관을 찾는 일이 생활화돼야 한다.

그렇게 되면 경(經)을 읽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진지해지고 독서에 빠져들게 될 것이며 아파트 쓰레기장에 멀쩡한 책들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야 학습참고서 아닌, 제대로 된 책들을 내는 출판사들이 살아날 것이고, 우리 나라도 비로소 선진국의 문턱을 넘게 될것이다. 책을 가까이 하는 날이 바로 우리가 한 차원 높아지는 날이다.

( 출처 : 출판저널 286호, 2000, 9, 5 )


이상은 계룡문고/bookmom@nate.com/042-222-4600
이동선 사장님께서 보내온 내용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844 세상을 헤메다. 이후형 2011.01.14 1692
2843 공지 세상 참 좋아졌어! 4 김민경 2007.12.04 1443
2842 공지 세계역사를 공부하려고 합니다. 책 소개 부탁드립니다. 최순이 2005.02.01 1776
2841 공지 세계역사를 공부하려고 합니다. 책 소개 부탁드립니다. 최순이 2005.02.01 1888
2840 세계 책의 날 선물을 드릴께요~ ^^ 22 김영이 2009.04.24 2517
2839 공지 성탄제 4 김학성 2008.12.21 1621
2838 공지 성철스님 4 박문호 2007.08.14 3507
2837 성철 스님의 독서 이중훈 2010.12.04 1776
2836 공지 성실, 감사, 정직의 삶을 산 나의 아버지 6 강신철 2008.03.08 1315
2835 성북동 비둘기 김학성 2009.05.05 1699
2834 공지 4 박문호 2007.08.02 1984
2833 공지 설날 인사 & 27일 모임 참석 당부의 글 ~~ *^^* 송윤호 2004.01.22 2693
2832 공지 설거지를 하면서 5 양경화 2008.05.16 1630
2831 공지 설 명절 잘 보내십시요. 3 임성혁 2009.01.25 1672
» 공지 선진국에서 확인한 도서관의 힘 현영석 2003.07.12 2212
2829 공지 선정도서의 구입 불가에 대한 질문 4 한재진 2007.08.09 1764
2828 선정도서를 미리 볼 수 있는 방법....있나요? 1 김희정 2009.11.05 1648
2827 공지 선정도서 이외의 고병권 박사의 책 소개 관리자 2007.08.26 1922
2826 공지 선정도서 기준이 궁금합니다(내용없음) 2 김수아 2007.08.08 1797
2825 공지 선정도서 구매 서비스도 있나요? 1 송병국 2009.03.01 158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69 70 71 72 73 74 75 76 77 78 ... 216 Next
/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