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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하늘이 보고 싶다

by 윤석련 posted Jul 1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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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떴을 때 열려진 창밖으로 빗소리가 들려왔다.오늘도 비는 계속 될 참인가 보다. 베란다 창의 커튼을 걷어올리자 주룩주룩 내리는 빗줄기를 맞고 있는 힘든 나뭇잎들이 보인다. 며칠을 계속 쉬지 않고 떨어지는 비 때문에 무겁게 계속 움직여야 하니 그만 움직이고 이제 쉬고 싶을 것 같다.

혹시 오후에는 비가 갤까 하는 기대감에 TV 뉴스를 들어보니 내일에나 비가 갤 것 이라고 한다.어제 오후까지만 해도 갑천변의 물이 불어나서 잔디밭 위에까지 물이 올라왔고 잠시 소강상태의 순간에 물이 조금 빠져나간 잔디 위에는 온갗 쓰레기들이 널려 있었다.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에서는 새끼 물고기 한 마리가 팔딱팔딱 뛰고 있었다. 물에 휩쓸려 잔디밭 웅덩이에 갇혀 버리게 된 것이다.

아파트 뒤뜰에는 나와 아이들의 대화에 끼어 들고 싶어 우리들대화를 엿듣고 있는 아주 큰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작은 바람이 불면 바람을 타고 부채만큼이나 큰 잎들이 일제히 박자 맞추어 흔들거린다. 그러던 나무가 화를 당했다. 언뜻 창 밖을 내다보게 되었는데 나뭇잎들이 모두 미세한 솜털을 한 허연 등을 보인채 아래로 매달려 축 쳐져 있는 것이었다. 나무의 위 부분이 부러져 꺾여버린 것이다. 아마도 번개를 세게 한번 맞은 모양이다.허리가 툭 꺾여버려 간신히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자주 창 밖을 내다보곤 하는데 그 때마다 나무의 상처를 쳐다보게 될 것 같다. 어제 오전에 검은 먹구름이 온 동네를 빈틈없이 덮어 버렸는지 으시시 할 정도로 집안이 깜깜했었다. 시커먼 구름과 동반한 천둥 번개로 우루룽 쾅쾅 우루룽쾅쾅 연이어서 계속 울어대었다. 그러자 바로 옆 학교에서 아이들의 갑작스런 함성소리가 들렸다. 그렇게까지 캄캄하고 거기에다 천둥번개까지 쳐대니 갑작스레 컴컴해진 교실 안 아이들에게는 두려움 반 호기심 반 이었을 것이다.

산에 오르는 오솔길에는 흙이 쓸려 가버리는 바람에 묻혀 있던 큰돌은 반쯤 몸이 드러났고 작은 돌들은 물에 휩쓸려 제각기 뒹굴려져 있다. 지난가을에 떨어진 낙엽 더미들은 좋은 거름이 될 만큼 충분히 썩어 쿰쿰한 흙 냄새를 발산했었는데, 지표면에 한 켜의 두께를 이루었던 짙은 갈색의 흙은 아래로 아래로 흘려 내려가, 허옇고 굵은 모래만으로 다져진 딱딱한 길을 걷게 만들었다. 이 나무 저 나무에서 시끄럽게 노래를 불러우리의 마음에 시심을 느끼게 했던 예쁜 새들의 맑고 투명한 노래 소리도 더이상 들리지 않는다. 흠뻑 젖은 날개를 한 까치 한 마리가 배고픔을 참을 수 없었던지 쏟아지는 비에도 불구하고 길 옆에 쓸쓸한모습으로 앉아 있었고, 온통 비를 머금은 연분홍 싸리나무 꽃 위에서 배고픈 두 마리의 나비가 힘들게 먹이를 찾고 있었다.

맑은 하늘이 보고 싶다. 눈부신 햇살이 어서 나와 흠뻑 젖은 우리들을 보송보송하게 말려 주었으면 . 내일을 기다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