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공지
2003.01.31 09:00

객지에서 지내는 설은........

조회 수 275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현대적 의미의 객지(客地)란 탯자리와 인연이 없다고 표현한다면 맞을는지 모르겠다.  좁은 의미론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이란 뜻일 수 도 있겠고, 넓은 의미론 사바세계가 다 내 고향이라는 뜻일는지 모른다. 만약 후자의 의미로 해석한다면 굳이 선긋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담양 백양사 방장스님께서 평소 후학들에게 이르시는 염려 중에 이런 말도 있다. 수처작주(隨處作主)라,  "어떠한 환경에 있더라도 네가 바로 주인공이 되어라"라는 뜻으로 해석하며 늘 가슴속에 품고 살아간다.

늘 이런 마음으로  살다보니 굳이 절절히 찾아오는 명절이나, 이곳의 의미 있는 날들도 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뉴욕의 설에 대한 중국인의 환상은 정말 대단하다.  맨하탄 남쪽으로 자리잡고 있는 차이나타운은 늘 인파와 차량으로 정신없다가, 춘절(春節)만 되면 한 보름동안은 조용한 정도가 아니다.  시 정부에서 평소에 꿈도 못 꾸던 하수도 가스관 보수공사를 이 시기에 맞추어 진행한다고 할 정도이니 중국인의 춘절사랑은 정말 대단하다.  모든 중국가게와 중국사람이 하는 비즈니스는 적으면 3일 길면 15일씩 문을 닫고 논다.  
이때  중국인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의 동선(動線)은 아예 피해 다니는 것이 좋다.  평소 동양문화에 관심이 없던 서양사람도 이때가 되면 차이니스 뉴이어라며 아주 어색한 얼굴로 'HAPPY NEWYEAR"하며 손을 흔든다.   중국커뮤니티의 전통문화 이어가기의 노력 일환 때문에 우리는 설을 쇨 수밖에 없고,
중국인과 덩달아 이날을 주 공휴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단다.
  
이렇게 속절없는 설은 결국 가족을 떠나와 있는 유학생 또는 초기 이민자의 마음 살을 도려내곤 한다. 명절이 다가오면 전화 카드회사의 고향사랑 표현방법도 갈수록 애증의 도수깊이를 더해가고, 동양식품광고에 등장하는 고국 통신판매 안내문은 얄팍한 주머니만큼 마음마저 어수선하게 만든다.  정작 설날 떡국은 고사하고 아침밥도 굶고, 커피 한잔과 크림치즈 묻은 베이글에 시린 속을 달래며 고장난 유성기 같은 생각만 제자리에 맴돌고 마는 것이 이곳의 설날 아침 풍경이다.  내 살붙이가 있는 고향의 설이 그리운 것이다. 모두에서 말한 객지에서 주인공 되기란 참 쉽지 않다. 육근(六根)에 투영되는 모든 현실과 육식(六識)에 자리잡은 과거 완료형 기억의 차이를 좁히기가 참 어렵다.
마음이 우울할 때마다 읊조리는 시가 한편 있다.

月夜瞻鄕路 浮雲  歸 緘書參去便 風急不聽廻
我國天岸北 他邦地角西 日南無有雁 誰爲向林飛
달 밝은 밤 고향 길을 바라보니 뜬구름은 너울너울 고향으로 돌아가네  
나는 편지를 봉하여 구름 편에 보내려하나 바람은 빨라 내 말을 들으려고 돌아보지 않네
내나라는 하늘 끝 북쪽에 있고 다른 나라는 땅 끝 서쪽에 있네
해가 뜨거운 남쪽에는 기러기가 없으니
누가 내 고향 계림으로 나를 위해 소식 전할까

오천축국전에 나오는 혜초 스님의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884 공지 암 예방 십계명 2 황희석 2003.06.15 2768
3883 공지 [글정리] 100books 게시판에 쓴 에세이 모음 : 이정원 1 이정원 2008.03.18 2765
3882 자연과학 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지 [어느날 과학이 세상을 벗겨버렸다] 10 문경수 2009.04.16 2760
3881 공지 가입한지 조금 지났지만 인사드릴께요~! 2 강금효 2003.05.31 2760
3880 공지 행복한 부부 황희석 2003.06.22 2757
3879 공지 '화'란 책에 대해 5 구용본 2003.05.18 2753
3878 [모임공지]137억년 우주의진화 제 7강 오늘 저녁 7시30분 고재명 2003.01.09 2753
3877 공지 독서모임 기사입니다. 송윤호 2002.11.20 2751
3876 <과학뉴스 읽기> NASA과학자, 외계 생명체 발견 vs. Bullshit 변정구 2011.03.07 2750
3875 공지 온지당에서 100북스회원들을 정식 초청합니다. 1 관리자 2007.08.20 2750
» 공지 객지에서 지내는 설은........ 고재명 2003.01.31 2750
3873 공지 [동영상] 박성일 원장님 KBS 아침마당 출연 4 문경수 2007.11.13 2747
3872 공지 대전CBS " 르네상스" 책소개 방송 1.29 아침 11시 현영석 2003.01.28 2746
3871 양평 시골집 오는 길 3 박용태 2010.09.15 2744
3870 공지 우물과 마음의 깊이 1 윤석련 2003.05.19 2743
3869 회원후기 때늦은 후기 한성호 2009.04.27 2742
3868 공지 [기고문] 과학기술과 사회 정치 변화 현영석 2002.12.28 2741
3867 공지 오프라인 미팅 운영을 맡으면서... 3 강신철 2003.03.30 2740
3866 공지 조근희님의 시 ' 해 ' 를 기다리며 조근희 2003.01.09 2740
3865 공지 18회 (3월11일) 19회(3월25일) 20회(4월8일) 독서모임 안내 현영석 2003.03.03 273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 216 Next
/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