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조회 수 335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그는 달려가 벼락을 맞고 쓰러진 아버지를 번쩍 일으켜 세우고 싶었으나 땅속에 너무 깊게 뿌리를 박고 있어 꼼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쓰러져 나뒹구는 아버지를 그대로 묵묵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하늘은 언제 그렇게 비를 퍼부었나 싶게 맑고 푸르렀다.
그는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형에게 소리쳤다.
  "형, 아버지가 왜 돌아가셨어? 아버지가 무슨 죄가 있다고 벼락을 맞은 거야? 아버지같이
좋은 분을 왜 벼락이 내려친 거야?"
  그는 있는 힘을 다해 형에게 소리쳤다. 그런 그를 형이 한참 동안 지켜보다가 조용히 말
했다.
  "동생아 울지 마라. 아버지는 인간을 위해 돌아가셨다. 인간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어. 이
세상의 모든 나무들은 누구나 일생에 한번은 죄 많은 인간들을 대신해서 벼락을 맞게 되어
있다. 그것이 우리들의 운명이다. 언젠가 이 형도 아버지처럼 저렇게 죽을 거다. 또 언젠가
는 너도 그렇게 죽게 될 거다."
  어린 왕벚나무는 형의 말에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오랜 침묵이 흘렀다.
  "인간들이 그것을 아나요?"
  그는 조금 떨리지만 그러나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형에게 물었다.
  "그건 모른단다."
  "인간들은 나무를 위해 벼락을 맞나요?"
  "그건 아니란다."
  어린 왕벚나무는 슬펐다. 눈에 가득 담긴 눈물이 그제서야 주르르 밖으로 흘렀다.
  "동생아. 인간들이 우리를 위해 벼락을 맞는가 아닌가는 그리 중요항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인간을 위해 벼락을 맞는다는 거야. 우리가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런 희생이
꼭 필요하단다."
  어린 왕벚나무는 형의 말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게 우리 나무들이 참되게 사는 길이다. 넌 참된 삶을 살기 위해 잠 못 이루며 고민하
던 밤이 있었잖니."
  어느덧 밤하늘에 다시 어두움은 찾아오고 별들은 푸르렀다.
  어린 왕벚나무는 형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세상을 좀 더 살고 좀 더 크고 나
면 어쩌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끝-----

출처 : 정호승 작품 『항아리』(열림원)속에 있는 단편 "어린 왕벚나무"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304 공지 梨花에 月白하고... 배꽃에 취했는가, 달빛에 취했는가 온지당 행사 후기 9 류우정 2008.04.20 2338
4303 공지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3 강신철 2009.01.25 3840
4302 공지 힘내세요 조근희 2002.12.20 3722
4301 공지 히딩크 리더십 이야기 관리자 2002.07.04 5073
4300 공지 희망의 인문강좌에 초대합니다 아카데미 2008.04.22 2015
4299 공지 흥미로운 랑데뷰 2 엄준호 2007.12.31 2108
4298 흔들리며 피는 꽃---도종환 김학성 2009.08.20 2134
4297 공지 휴보 5 문경수 2007.12.11 2689
4296 공지 휴가사진 1 문경수 2005.08.12 2851
4295 공지 훌륭한 독서법 이중연 2002.08.22 4136
4294 훈련병 부모님이 쓴 편지를 게시판에 올립니다. 3 이병록 2010.02.13 2580
4293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국내 방사선 영향..긴급토론회 자료 2 file 서지미 2011.04.07 2128
4292 공지 후기사진을보면 캠코더로 찍던데... 2 이동욱 2008.11.11 2079
4291 회원탈퇴 어떻게 하나요?? 1 박정화 2009.04.27 2236
4290 공지 회원탈퇴 어떻게 하나요?? - 2005.10.25 3055
4289 회원탈퇴 1 김가은 2010.04.28 2381
4288 공지 회원이 되고 싶습니다.. 4 신현숙 2008.03.02 1729
4287 공지 회원여러분의 소중한 '항우와 유방1.2.3' 독서리뷰를 기다립니다. 6 김주현 2007.05.01 3510
4286 공지 회원님의 소중한 10줄의 '부의 미래' 독서리뷰를 기다립니다. 1 김주현 2007.04.24 2649
4285 공지 회원님들 새해 복 많이 빋으세요 강신철 2003.01.04 358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16 Next
/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