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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네 대화편(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향연)을 읽고






“유럽의 철학적 전통을 가장 확실하게 일반적으로 특징짓는다면 그것은, 그 전통이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화이트헤드) 

"플라톤주의를 전복하라." (니체)




플라톤의 네 대화편을 읽으며 당시 그리스 사람들의 생각을 엿본다. 2,500년 전 사람들의 생각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대인의 생각과 비슷한 점이 많다. 서양이 아닌, 동아시아의 한 쪽에 사는 우리도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영향을 그만큼 많이 받았다는 반증이리라. 수많은 철학자들과 후대 사람들이 플라톤의 어떤 점에 그렇게 이끌렸는가, 현대의 철학자들을 여전히 플라톤의 영향력 안에 붙잡아 놓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이 이번 백북스 철학 모임에서 내가 탐구하고 싶었던 내용이다.




철학자 박홍규는 플라톤의 글이 갖고 있는 특징을 아리스토텔레스와 비교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사람이지, 늙은 사람, 누구누구의 아들, 어디서 온 사람 등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 그러나 플라톤의 데이터는 (…) 고유명사의 입장에서 주어집니다. (…) 플라톤은 그 데이터의 총체에 접근할 때에 우선 직접적인 어떤 역사적 사건으로서, 다시 말하면 우리의 추상적인 사고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상태에서의 데이터를 이해합니다.”




네 대화편을 읽으며 그동안 나는 너무나 잘 요약된 플라톤만을 알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지나치게 깔끔하게 정리된, 가공된 플라톤이라는 관점으로 대화편을 읽으려는 했던, 나의 안일함을 반성한다.  마찬가지 이유로 대화들의 나열로만 이루어진 글들에서 후대의 철학자들은, 어쩌면 그렇게 체계적인 플라톤을 뽑아낼 수 있었는지도 놀랍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경쟁(agon)을 통해서 생각하는 것이라 알려져 있다. 경쟁을 하려면, 특히 말로써 경쟁하려면 대화의 당사자들은 서로 동등한 관계이어야 한다. 이것이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이라는 꽃이 활짝 피었던 이유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고대 중국의 경우는 이와 상반된다. 고대 중국의 사상가들은 생각의 경쟁자가 아니라, 가르침을 펴는 스승으로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지혜의 친구가 아니라, 대체로 진리를 전파하는 현자로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유학이라는 사상이 유교라는 종교의 모습을 보인 이유 중 하나를 여기에서 추측해 본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문답법을 권한 것도, 고대 그리스의 이런 전통에서 비롯되었으리라. 현자의 말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경쟁자가 되라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기존에 알려진 진리는 의견(doxa)으로 추락한다. 진리 뿐 아니다. 나 또는 변화를 겪는다. 생각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대화를 하며, 서로의 변화를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네 대화편을 읽기 전에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대화편 속 문답자들은 서로 이질적인 생각의 소유자가 아니라, 이미 코드가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문답법을 활용해 서로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보여주기 보다는, 한 사람(소크라테스)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물론 소크라테스라는 등장인물이 전개하는 논증은 매우 치밀하다. 그리고 나는 겨우 네 편의 대화편 만을 읽었을 뿐이다.)




아주 먼 과거, 매우 이질적인 환경 속에 살던 사람의 책을 읽는 것은 어렵고 불편하다. 그 시대와 우리 시대의 생각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나(우리시대 사람들)의 생각하는 방식이 매우 편향적으로 굳어져 있기 때문이리라. 플라톤의 책 읽기는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도록 한다. 책을 읽는 동안 느끼는 이 어려움과 불편함은 없애야 할 것이 아니다. ‘이 어려움과 불편함이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에 대해 스스로 질문할 기회를 얻는다는 점에서 간직되어야 할 소중한 체험이다. 언제나 그러듯이, 이질적인 것과의 만남은 나를 흔들리게 하고, 내 안에서 스스로 차이가 만들어지도록 한다.


* 지난 4월20일에 열린 '당장만나 프로젝트' 소모임을 준비하며, 정리한 메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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