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부제: 종말론적 신비주의자)
이 책은 주경철교수의 전작 “문명과 바다”의 후속편이다.
‘문명과 바다’에서는 역사를 보는 관점을 (육지 중심에서) 바다 중심으로 바꾸어 15C 이후 펼쳐진 근대세계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중심내용은 콜럼버스로 시작되는 15C 대항해 시대, 즉, 학교에서 배웠던 ‘지리상의 발견’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저자는 ‘왜 유럽이 대항해 시대를 주도하게 되었을까?’ 라는 질문과 함께 간단한 답을 제시한다. 중세 유럽에는 아시아의 동쪽 끝에 실존하는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찾아야 한다는 종교적 심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전작에서 언급한 ‘종교적 심성’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문헌에 근거하여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비교적 후진 상태에 있던 유럽이 제일 먼저 대양항해를 개척했고, 곧 전 세계의 바다로 항해해 나간 것이었다. 유럽이 근대 세계의 패자가 된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분명 세계의 바다를 선점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유독 유럽인들은 먼 바다로 나가려 했을까?” (p28)
“중세인 들이 보기에 에덴동산 혹은 낙원은 추상적인 어떤 ‘상태’가 아니라 지구상에 실존하는 ‘장소’이며 ......아시아의 동쪽 끝에 위치해 있다…….말세가 가깝다면…….따라서 시대의 과업은 신앙의 적을 무찌르고 온 세상사람 모두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일이 된다. 신의 이름으로 전투를 벌이고 다른 대륙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것은 그렇게 해서 일어난 일이다.” (p9~11)
“지구는 작은 곳이다. 또한 육지가 바다보다 6배 더 크고, 따라서 바다는 아주 작다. 아시아는 대단히 광대하여 아시아의 동쪽 끝이 스페인을 향해 길게 뻗어 나와 있고, 본토에서 아주 멀리 시팡구라는 큰 섬이 존재하며, 그 외에도 8천개 가까운 섬들이 산재해 있다. 결국 스페인에서 서쪽으로 항해해 가면 쉽게 아시아에 도착할 수 있고, 중간에 섬을 만나 안전하게 휴식을 취하며 보급을 확보할 수 있다. 콜럼버스의 ‘인도사업’의 기반이 된 것은 이러한 지구관이었다.” (p139)
또한 콜럼버스가 1차 항해 당시, 스페인 왕실에 보낸 서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내 결론은 이렇습니다......오늘부터 7년 안에 예루살렘 정복전쟁을 위해 5천명의 기병과 5만명의 보병을 동원할 자금을 전하께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이 사업의 목적이었습니다.” (p187)
더 나아가 콜럼버스는 국왕에게 자신의 종교적 환상을 설명하기 위한 자료모음집, “예언서”를 작성했다. 여기서 그의 종말론은 절정을 보여준다.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종말까지 시간을 계산한 것이다.
“가장 정확한 것으로 알려진 알폰수 왕의 계산에 따르면, 세계의 창조부터 혹은 아담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까지 5343년 318일이 지났다…….여기에 1501년을 더하면 종말이 완수되기 까지 모두 6845년의 세월을 기다린 셈이다…….이 계산에 따르면 앞에서 인용했던 박학한 견해대로 이 세상이 완수되는데 7천년이 걸린다고 하므로 이제 150년이 남았다.” (p294)
“이렇게 세계의 비밀을 알게 된 이상 이제 그에 대비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조만간 말세의 엄청난 사건들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인류의 구원을 위한 준비기간은 한 세기 반 정도 남았다. 우선 전 세계로 복음을 확산하고, 예루살렘을 탈환한 후 시온 산에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 급선무인데, 이를 주도할 인물은 스페인 국왕이다. 이것이 그가 심중에 품고 있던 종말론의 요체였다.” (p308)
여기까지 읽고 나니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콜럼버스가 아무리 돈과 명예를 좋아하고, 모험성향이 강한 인물이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미지의 대양을 향해 엉성한 지도를 갖고 떠날 수 있었던 용감성의 배경이 이해된다. 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일이므로 어떤 난관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이 도와줄 것으로 믿었고, 혹여 일이 잘못되어 죽게 된다면 순교자가 되어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돈키호테 같은 인물이 망상에 젖어 모험을 시작했고, 이것이 정말로 신의 섭리인지 신대륙 발견으로 이어져 서구 유럽이 세계를 주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니 아이러니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결론을 요약하면, “총,균,쇠” 와 비교하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으나 주경철교수의 저작이 ‘훨씬’ 재미있다. 역사와 세계를 보는 저자의 깊은 통찰력도 공유할 수 있고, 세밀한 정보도 풍부하다. 무엇보다 내용이 소설처럼 흥미진진하여 ‘읽는 재미’가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