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탄생" (노마 히데키;김진아 외 2명 옮김;돌베개,2011)

by 고원용 posted Aug 0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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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은 유라시아 동방의 극점에 나타난 에크리튀르의 기적이다.


  말이란 무엇인가, 문자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있어 문자란 무엇이고 에크리튀르란, <지知=앎>이란 무엇인가 ― 이런한 <보편>으로 이끌어 주는 희유한 기적이다."


"  이리하여 <정음>은 음절을 초성, 중성, 종성 그리고 악센트라는 네 가지 요소로 해석하고 각각에 <형태>를 부여하는 사분법(tetrachotomy)의 경지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15세기 정음학의 이러한 인식은 15세기 중국 음운학의 이분법을 능가한 것은 물론이고 거의 20세기 언어학의 지평에 이른 것이었다."


이런 말을 한국인이 썼다면 국수주의자라는 말을 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한글의 탄생"은 일본인이 쓴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새로운 문자로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이었는지를 이해했습니다. 한글 창제를 반대한 최만리는 당연한 일을 했습니다. "세종"이 무모한 일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  <에크리튀르 ecriture> = <쓰는 것> <쓰여진 것> <쓰여진 지知>


  당시 에크리튀르의 모든 것은 한자한문이었다. <지>의 모든 것이 한자한문에서 성립되었다. 그것이 세계의 전부였다. 그러한 한자한문의 세계에, 아무도 본 적 없는 <정음>이 우뚝 서 있는 것, 이것이 15세기 조선에서 <정음 에크리튀르 혁명>이 출발했을 때의 구도이다.


  임금은 최고 권력자이니 <혁명>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걸까? 아니다. 세종 임금이 <정음 에크리튀르 혁명>으로 투쟁한 상대는 왕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막강한 상대였다. 그것은 역사가 쓰여지기 시작한 이래로 오늘날까지를 꿰뚫는 <한자한문 에크리튀르>였다. 투쟁의 상대는 바로 역사이며 세계였다. <지>의 모든 것이었다. 역사서, 즉 쓰여진 역사를 펴 보면 알 수 있듯이 거대한 에크리튀르의 역사 앞에서 임금은 시호로 불리고 쓰여지는 몇 글자의 고유명사에 지나지 않는다."


임금의 권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글'을 사용한 사람들이 없었으면 새로운 문자는 곧 잊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하던 언어를 글로 쓰는 너무나 훌륭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널리 퍼졌습니다. 국가의 공식 문서에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 퇴계가 유학을 토론할 때도 한글을 사용했습니다. 지금은 이 문자로 8000만명이 한국어를 쓰고 있고 "찌아찌아어"처럼 다른 언어를 쓰는 데에도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문자>라는 기적, 유라시아 동방의 극점에 나타난 에크리튀르의 기적을 이해하고 싶으신 분들은 이 책을 꼭 읽어 보십시오. '한글'이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이 책은, 일본 3대 신문 중 하나인 마이니치 신문사와 아시아 조사회가 주최하는 '아시아태평양상' 대상을 2010년에 수상했습니다. 외국 문자의 가치를 설명한 일본어 책에 그해의 최고 저술상을 주고, 그 책을 베스트셀러로 읽은 일본 사회의 지知의 깊이에도 경의를 표합니다.


고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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