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금요일이면 대전에서 서울로 향한다.
137억년 우주 진화 강연을 듣기 위해서다.
저녁 7시 반에 시작하는 강연을 들으러 가는 길에는 ktx를 이용한다. 빠르니까.
4월의 어느 금요일.
유독 날씨가 좋은 봄날이었다.
이 날은 기차를 타기 싫었다. ktx는 빠르지만 풍경을 감상하기가 어렵다.
버스를 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버스에서 보는 봄 풍경... 이 날은 그런 여유를 느끼고 싶었다.
오후 3시에 조퇴를 하고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결론은
강연장에 늦게 도착했다.
강연장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시계를 보며 얼마나 많이 후회했는지 모른다.
"버스를 타는게 아니었어..."
"택시아저씨가 길을 잘못가지 않았었다면... "
"터미널에 조금만 일찍 도착했다면..."
멀미 날 정도로 넘실거리는 후회의 물결 속에서 한참을 울렁증 느끼다가
"에잇. 내가 고민한다고 빨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음부터는 꼭 ktx를 타고 오자. " 하고 종지부를 찍었다.
IF.
오늘 아침에도 If를 생각했다.
"어제 저녁에 많이 먹는게 아니었는데..."
'이랬어야 했는데, 저랬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를 하다보면 나 자신이 싫어지기도 한다.
<If 의 심리학>을 읽으며 날 멀미나게 만드는 이 감정과 생각의 실체를 알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이 책을 통해 마음에 위안을 받았다.
내가 만족스럽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 '생각'과 '감정'이 따라온다.
"~ 했어야 하는데" 라는 사후 가정사고
그리고 후회하는 감정.
사후가정사고는 내가 한 행동을 다시 돌아보면서
다음에도 이러한 상황이 생길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상상하게 하여
더 나은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감정은 이 행동이 어떤 것인지 즉각적으로 알게 해준다.
어떤 행동에 대한 판단을 머리로 하기 전에 이미 감정으로 팍~~ 느껴지도록.
이 두가지는 우리 뇌에서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어떤 바보같은 일을 했을 때, 내가 굳이 그것을 돌이켜보려고 하거나 잘못된 것을 파악하려 하지 않아도
뇌에서 자동적으로 후회를 느끼고 사후가정사고를 한다니... 참 기특하다.
비록 후회할 만한 행동을 했어도
우리의 뇌는 '내가 한 행동'을 합리화 시키는 능력이 뛰어나서,
어떤 수를 써서라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게끔 만들어준다고 한다.
버스를 탄 그 금요일,
비록 강연장에 늦긴 했지만 나는
'괜찮아. 그래도 화창한 풍경은 봤잖아.
강연에 늦긴 했지만 동영상으로 받아서 보면 돼.' 라면서 나를 위안했었다. ^-^
그러나
'내가 하지 않은 행동'을 합리화 시키는 능력은 탁월하지 않아서 후회를 더 오래한다고 하니~
이 책은 나에게 일을 우선 '저질러 보라'고 충고한다. ^-^
저지른 행동이 바보같으면 나중에 합리화를 잘 해서 후회를 덜하게 될테고
바보같은 일이 생길까봐 행동을 저지르지 않으면 ' 그 일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오래 후회할테니까...
다행이다.
나의 뇌가 ,
나의 행동에 대해
A/S 를 자동적으로 잘 해주어서.
(궁금한건....
똑같은 '사후 가정사고'를 매번 하면서도 , 똑같은 '바보같은 행동' 을 반복하는 경우...;;;;
박문호 박사님께서 뇌과학 공부를 할 때 ' 왜 사람들은 운동이 좋은걸 알면서도 운동을 안할까?' 가 궁금하셨다던데,
나도 '운동이 좋은 줄 알면서도 운동을 잘 안하는' 걸 '후회' 하면서도
'안하는' 나의 행동은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다. )
기네스 펠트로의 '슬라이딩도어즈'가 연상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