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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7 06:47

[41] 김광규, '처음 만나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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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규의 시를 읽는 일은 언제나 지적 성찰을 요한다. 나날의 일상과 그 일상이 벌어지는 세계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과거와 현재, 순수와 타락, 자연과 허위의 문명, 진실과 거짓이 모습을 드러낸다. 과도한 낭만주의의 자기 토로에도, 그렇다고 주지주의의 지적 난해함에도 이끌리지 않으며 그는 질문이 빚어내는 자신만의 풍경을 고집스럽게 만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 고집으로 인해서 때로는 반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풍경은 동시에 변주이며, 그럼으로써 어느새 확장과 심화의 물줄기를 이룬다. 게다가 그 고집은 형식의 차원에서도 여전히 이어진다. 쉽고 투명한 시어, 일상어에 가까운 리듬, 때때로 그 리듬마저 감추는 산문시 등은 김광규에게 와서 보다 분명한 모습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김광규적 세계는 우리 시의 한 전통이 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여덟번째가 되는 이 시집에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산문시다. 물론 산문시는 첫 시집부터 내내 이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계속해서 산문시를 만들어오고 있다는 점은 그의 시가 처음부터 갖고 있는 이야기에 대한 관심을 증명한다.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인식, 타락과 훼손 이전의 순수를 희구하는 회귀의 목소리는 존재의 본능에 가까운 단순한 욕구가 아니라, 지적 성찰의 결과다. 그것이 계몽주의자의 윤리인 동시에 생태주의자의 절박한 통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과 세계에 대한 비관주의가 김광규의 시적 지향점은 아니다. 비관주의는 처음으로 돌아가려는 낙관주의의 출발점이 되고 그러한 낙관의 근거는 자연에 있다.


   그에게 자연이란 자신의 처음을 이루는 '어머니의 몸'과 같은 것이다. 이 자연을 매개로 해서 '처음'은 윤리의 차원에서 생태주의자의 자연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자연이야말로 우리의 처음을 이룬 곳이기 때문이다. 김광규에게서 자연은 두 가지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우리 삶의 터전으로서의 자연이고, 다르 ㄴ하나는 순리를 따르는 삶의 양태로서의 자연이다. 즉 부자연스럽지 않은,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자연 말이다.


   우선 삶의 터전으로서의 자연. 그것은 어머니가 아이를 낳아 기르듯 아름답고 조용한 조화다. 새싹을 틔우는 작약을 위해 자신의 그늘을 거두어 영토를 양보하는 대나무처럼 하늘과 땅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이며, 떠들썩하지 않게 온갖 생명이 자신의 삶을 이뤄나가는 조용함이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과 조용함은 온 세상을 일깨우며 사랑을 전하는 '바람둥이'처럼 빛보다도 빠르게 온다. 그렇기에 시인은 자연 앞에서 감탄사를 그칠 줄 모른다.


   이 자연은 또한 순리에 닿아 있다. 아이가 나서 자라고 어른이 된 뒤에 늙어 죽어가듯이. 그래서일 것이다. 이전의 어느 시집보다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김광규가 생각하는 죽음 속에는 두려움이나 서글픔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죽음과 친숙해지려는 의식이 배어나온다. 죽음이란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의 순환이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죽음이란 벗어나는 것이기도 하고 살아있는 것은 어쩌면 감옥일지도 모른다.


   죽음은 다시 시집의 처음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생명을 상징으로 한 삶의 시편들 말이다. 그것을 통해 죽음과 삶, 삶과 죽음의 순환, 그것이 또한 자연임이 드러난다. 이번 시집은 형식과 내용 모두 순리대로 그 자연에 따를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김광규의 생태주의는 이런 점에서 단순한 자연 예찬을 넘어선다. 존재와 생에 대한 예지로 승화되기 때문이다. 그의 세계를 두고 지적 성찰을 요한다고 말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그런 예지도 겸손과 신중함을 갖고 있지 않으면 하나의 도그마가 되어 또 다른 폭력으로 변질될 것이다. 자연이 아름답고 조용한 승리를 거두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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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을 읽으면서 너무 좋은 느낌을 가졌건만,

그 심정을 표현하는 것이 너무도 어려웠다..


이 책의 말미에 씌여있던 박철화씨의 해설을 읽으면서 그런 어려움은 더해졌다.

시에 대한 반응을 이곳에 글로 쓴다는 것은 더군다나 부담을 더했다.

그래서 그 해설을 베끼기로 용기를 냈다..


지금 독후감을 마치면서 (비록 나의 느낌을 쓴 부분은 매우 적지만...)

오히려 그런 행동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해설을 읽으면서 나의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고

김광규 시인이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한 바를 조금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시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여유로움이 시에 대한 친밀함과 지혜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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