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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마콘 그리고 해체(解體)의 관점에서 본 데리다 철학과 불교의 공사상


 


해체는 마음과 몸을 풀어 헤치는 것이다. 여기서 몸이란 어떤 조직, 기관, 기구, 세력, 분위기, 문화, 관념 등등을 말한다. 중요한 점은 해체라는 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심사상들 중의 하나라는 점. 따라서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해체에 대한 올바른 개념정립과 이해가 필요하다. 물론 개념정립과 이해마져도 해체의 선상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립되지만 정립되지 않은, 즉 무정형적인 정립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무정형적이라는 것은 또한 어떠한 형태를 지니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이는 불가의 교주이신 석가모니 붓다께서 이야기한 바대로 “생각하는 자 없이 생각하는” 그러한 경지를 일컫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서양 프랑스 철학의 거장, 데리다는 “해체는 중립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입하는 것이다.”라고 갈파하였다. 이는 붓다의 가르침인 중도(中道)사상과는 대조되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런가? 그것은 개입이라는 것과 중도는 그 의미가 다르다. 하지만 진실된 중도를 위해서는 개입할 때 개입해야 한다. 무조건 개입하라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중도(中道)가 시중(時中)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도사상에는 때에 따라 중립을 지켜야함을 말하는 것이지 무조건 아무때나 중립을 지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데리다의 해체는 중립이 아니라 개입이라는 말은 붓다의 중도사상을 적극적으로 표방한 것이라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해체를 생각하면 어떤 건축물의 와해, 문명의 붕괴, 시스템의 분해를 떠오르게 한다. 사실, 물질적으로 보이는 것이나 정신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나 모든 만유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의 단계를 겪는다. 인류역사를 이 불가에서 말하는 성주괴공의 4단계 과정으로 본다면, 우리는 태초에 문화와 문명을 이루어왔고 선조들을 통해서 유지시켜왔으며 이제는 해체되고 붕괴되고 있다. 앞으로는 우리 모든 인류후손들은 공(空)의 마음을 증득할 날이 멀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하는지도 모른다.


 


해체는 또한 기생충과 같은 내면 속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 이물질은 바로 우리의 중생심이다. 탐, 진, 치에 더렵혀진 불순한 마음을 중생심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철저히 해체시켜 완전히 산산히 풀어해친후 깨끗한 마음의 자성(自性)만을 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이 깨달음은 영원한 것이다. 해체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은 죽게 된다. 그 이물질인 기생충과 같은 중생심 때문에 말이다. 중생심이나 마음의 이물질, 즉 기생충은 덧없는 것이고 본질적이지 못하며 그냥 방치하면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그리고 그 이물질로서의 중생심은 우리에게 잘못된 책임감을 떠맡기며 마음을 짐스럽게 하고 죄를 짓게 한다.


 


데리다의 글을 읽어보면 마음이 오염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 마음의 오염을 제거하기 위해서 이물질인 중생심을 떨어내야한다고 시사한다. 내부의 순수성을 찾아야 한다고 데리다는 갈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대리보충에 대한 욕망과 욕구 그리고 그러한 것을 갈구하려는 잘못된 의도에서 비롯된다. 대리만족이니 하는 것은 모두 본질적이지도 순수하지도 못한 것이다. 우리는 대리보충이라는 supplement에 대한 용어에 대해서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데리다는 내면의 순수성은 대리보충으로서 부과된 잉여가 가져다주는 책임들이 외부로 되돌려질 때 오로지 그때만이 순수성이 복원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이물질, 중생심, 기생충을 플라톤은 파르마콘(Pharmakon)이라고 불렀다. 파르마콘은 독(Poison)과 치료(Cure) 사이를 뜻하는데 이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어설픈 마음, 즉 비결정(Indeterminacy)을 뜻한다. 그리고 비결정(Indeterminacy)이란 어휘는 또한 결정을 내릴 수 없음으로 일컬어지며 종종 해체(Deconstruction)와 관련된 용어이다. 왜 그런가 하면 해체되지 않고서는 이러한 비결정적 마음을 치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결정은 이항 대립들 속에서의 결점을 지적하고 더나아가 해체의 개념을 드러내고 있다.


 


실례로 이런 경우이다. 즉 어머니 심부름으로 푸름이가 빵가게에 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빵을 하나 사와야 하는 경우이다. 푸름이는 빵가게에 가서 빵을 사려고 하는데 두 가지가 눈에 뛰었다. 밤빵을 살까 아니면 목화빵을 살까를 망설일 수 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목화빵을 사가라고 해서 갈팡질팡, 이리저리 마음이 왔다갔다 결정하지 못하던차에 목화빵을 사게 되었다고 하자.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 밤빵이 더 먹고 싶었다. 이때 비결정적 마음은 푸름이를 괴롭히고 결국 목화빵을 선택하게 해주었던 아주머니에 대해서 원망이 일 수 있다. 머리좋은 푸름이는 이것이 파르마콘이라는 것을 알고 즉시 밤빵으로 바꾼다. 그러면 마음의 파르마콘(비결정성, 치유되지않은 독)은 해체되어 사라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파르마콘을 누가 만들어 냈느냐이다. 그것은 불가에서는 인연(因緣)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푸름이와 빵집 아주머니 간의 빵을 매개로한 만남을 통해서 밤빵에 대해서 푸름이는 빵집 아주머니와 내면적으로 파르마콘 문제를 해결해 낸 것이다. 문제는 빵집 아주머니가 문제를 제기한 것이고 푸름이가 그 문제를 푼 것인데, 더 잘 살펴보면 마음을 바꾼 푸름이에 대해서도 아무 사심없이 목화빵에서 밤빵을 사도록 해준 것은 파르마콘(독)을 푸름이와 아주머니가 동시에 해결하려고 공동노력이 발휘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더 생긴다. 밤빵을 사려고 했으나 빵집아주머니는 두개의 비슷하게 생긴 밤빵을 내놓고 하나를 아주머니가 스스로 선택해서 비닐에 싸서 푸름이에게 주시려고 한다. 푸름이가 보기에 비닐에 싼 밤빵보다 남아있는 밤빵이 더 커보인다. 푸름이의 마음에 다시 파르마콘이 생겨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중생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독으로서의 파르마콘인 것이다. 파르마콘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솔직하고 진실해야한다. 지혜로운 푸름이. 다시 아주머니에게 "아주머니 이 밤빵이 더 커보이네요. 이걸로 주실 수 있어요?“ 아주머니 웃으시면서 밤빵을 바꾸어 주신다. 이렇게 파르마콘을 치유해 나가는 것이 바로 철학자요 지혜로운 사람의 길이다. 현자의 길이란 말이다. 푸름이는 이러한 관찰과 파르마콘 타파를 위해서 부단히 치열한 삶의 현장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도 이 점에 대해서 해체와 파르마콘의 개념이 실제 삶의 현장 속에서 작용한다는 사실을 주의깊게 꿰뚫어 봐야할 것이다.


 


이 중생심, 이물질, 기생충은 바로 데리다가 말하는 해체주의를 통해서 그리고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보다 강력한 공(空)을 통해서 치유될 수 있다. 플라톤이 말한 바로 파르마콘은 마음을 오염시키는 독으로서 비결정성,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마음을 뜻하는데 이는 그 순수하지 못한 지저분한 마음을 해체하고 말끔이 비웠을 때 가능하다.


 


또하나의 예를 들자. 이번에 우리 푸름이의 친형인 청준이가 어느 회사에 아르바이트로 한 달을 일했는데 일한 댓가로 받는 급료를 2/3만 받게 되었다고 하자. 그래서 청준이는 하루가 멀다하고 한 번씩 그 회사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아르바이트 잔금을 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사장은 주려고 하지 않고 시일을 피일차일 미룬다. 다행히 청준이는 마음을 공부하고 수련한 사람. 한마디로 수행자요 철학자이다. 그래서 청준이는 이 문제가 바로 자신과 사장간의 파르마콘(독)임을 확신하게 된다. 집착하지 않을때 저절로 파르마콘이 해체된다는 것이 답이다. 중요한 것은 돈을 받느냐 못받느냐가 아니라 바로 마음에서 돈을 집착하지 않는 마음을 얻느냐이다. 그렇게 될때 돈 보다 더 중요한 보다 강인한 금강신(金剛身)을 얻는다. 이것이 바로 불가에서 말하는 금강삼매를 한층 더 강화시키는 비결이다.


 


만약, 성에너지에 노출이 되거나 성욕을 통해서 계율을 깨면 이물질이자 기생충인 파르마콘이 마음에 침입하여 책임을 떠넘기고 죄악을 일으키게 만든다.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오늘날의 위대한 고승께서 하신 말씀처럼 수행자나 철학자 그리고 현자의 길을 걷는 사람은 반드시 계율을 지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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