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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1 21:00

도덕교육의 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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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내용을 조금 각색하여 옮깁니다.


 



도덕 교과서가 보다 나은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말하면서, 언제나 앵무새처럼 자기를 희생하고 타인과 공동체를 위해서 사는 것만이 보람 있는 삶이라고 가르치고 자기 자신에 대한 건강한 배려와 관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양심을 예로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중학교 1학년 도덕 교과서에는 양심을 주고 가책과 죄의식을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도둑질이나 무단횡단, 부정한 재산형성 그리고 시험에서의 부정행위 등등이 양심의 가책 대상들입니다. 그러니까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양심이란 적극적인 욕구와 형성의 의지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내면적 금지와 통제의 의식으로서 이해되어 있고, 이것이 도덕의 기본을 이루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입니다.



 


양심이라는 어원은 앎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왔고, 플라톤의 서양식 양심이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양식 양심을 기준으로 도덕 교과서를 만들면서 그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플라톤에 의하면 양심은 단순히 자기가 타인에게 불의한 일을 행하는 것만을 문제삼지 않고, 타인이 자기에 대해 가하는 불의에 대해 저항하지 않는 것도 같이 문제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의 도덕 교과서에는 후자의 내용이 사라졌을까요?


 


여러분이 짐작하신 그대로입니다. 박정희 시대에서부터 전두환 시대를 거치는 동안, 그들의 정권에서는 불의에 저항하는 것이 사회 금기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도덕 교과서는 자기가 타인이나 사회에 대해 행할 수 있는 악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이 말하면서도, 타인이나 사회 또는 국가가 개인에게 가할 수 있는 악에 저항해야 할 의무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획일주의적 사고는 파시즘입니다.


 

파시즘은 한편에서는 전체주의와 인종주의로 나타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획일주의로 나타납니다. 질서에 대한 우상숭배야 말로 파시즘의 전형적 특징인 것입니다. 교과서에 따르면 모든 갈등은 부정적인 것입니다. 생각하면 역사는 갈등을 통해 발전합니다. 갈등 없이는 발전도 없습니다. 그러나 도덕 교과서는 전편에 걸쳐 질서와 조화의 이데올로기를 숭상하고 갈등을 무조건 위험시합니다. 이처럼 온갖 갈등을 불온시하는 태도는 법과 규칙에 대한 맹목적 순종의 강유로 나타납니다.


 

도덕 교과서는 나라의 법은 말할 것 없고 학교의 교칙까지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그러나 도대체 이 나라의 학교에서 교칙이란 것이 과연 어떤 것들인가요? 근래에 언론에도 보도 되어 잘 알고 있듯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머리길이까지 교칙이랍니다. 이런 교칙은 하나같이 인간의 기본권의 침해입니다. 스스로 동의한 법에 복종하는 것은 자율성의 표현이지만 남이 제정한 자의적 법칙에 따르는 것은 노예적인 굴종일 뿐입니다. 법은 오직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일반의지의 표현일 때에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은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악법이요, 악법에 저항하는 것은 자유인의 긍지에 속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 교과서는 크고 작은 법칙에 대해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할 뿐, 주어진 법칙이나 규칙에 대한 비판적인 검사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도덕 교과서는 법칙에 대한 맹목적 복종을 가르치는데, 이것이야말로 전체주의 전형적 특징인 것입니다.


 

철학자들은 수천년 동안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를 학문적으로 물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인간이 삶에서 부딪히는 온갖 문제들에 대해 나름의 고민의 흔적을 남겨놓았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덕에 대해서는 소크라테스에게, 정의에 대해서는 플라톤에게, 행복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용기와 절제에 대해서는 스토아 철학자들에게, 쾌락에 대해서는 에피쿠로스에게, 우정에 대해서는 키케로에게, 삶의 덧없음에 대해서는 세네카에게, 건전한 신앙에 대해서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케에르케고르에게, 정념을 다시리는 법에 대해서는 스피노자에게, 시민적 덕에 대해서는 로크와 루소에게, 타인에 대한 연민과 동정심에 대해서는 흄과 쇼펜하우어에게, 세계 평화의 이념과 세계시민적 의무에 대해서는 칸트에게, 한 국가의 국민된 도리에 대해서는 피히테와 헤겔에게, 자본주의 사회의 불의와 부도덕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에게, 허무주의라는 질병에 대해서는 니체에게, 과학 지상주의의 위험에 관해서는 후설에게, 죽음의 의미와 기술문명의 위험에 대해서는 하이데거에게, 파시즘의 해악에 대해서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에게, 자유의 소중함에 대해서는 사르트르에게, 몸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는 메를로-퐁티에게, 욕망의 의미에 대해서는 푸코와 들뢰즈에게, 타인의 의미에 대해서는 레비나스에게, 분배적 정의에 대해서는 롤스에게, 시민 사회의 의사소통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하버마스와 아펠에게, 생명과 환경에 대해서는 부처와 요나스에게, 말의 힘에 대해서는 비트겐슈타인과 데리다에게 겸손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는 공자에게, 인의에 대해서는 맹자에게, 예의범절에 대해서는 주자에게 배움을 청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지나간 우리 역사의 도덕적 의미에 대해서는 함석헌에게, 앞으로 실현되어야 할 통일을 위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누구보다 송두율에게 배움을 청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참, 이 책에는 레굴루스의 일화가 나옵니다.


 

레굴루스는 포에니 전쟁기에 로마의 집정관이었는데 군대를 이끌고 바다 건너 카르타고를 침공하였다가 도리어 부대원들과 함께 포로로 잡히게 된다. 당시 카르타고는 전쟁을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었으므로 레굴루스를 이용하여 로마와 휴전을 맺으려 하였따. 카르타고인들은 레굴루스에게 로마로 돌아가 원로원을 움직여 카르타고와 강화를 맺게 하겠다고 맹세한다면 그를 석방하겠노라고 제안했다. 레굴루스는 카르타고인들이 원하는 대로 로마 원로원을 설득하겠다고 맹세한 후 자유의 몸이 되어 로마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원로원에서 지금은 휴전이나 강화를 할 때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카르타고인들이 로마와 강화를 맺기 원하는 까닭은 그들의 약점 때문에 전쟁을 계속하기 어려워서 그런 것이므로 이런 때일수록 더욱 강하게 카르타고를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렇게 맹세를 어긴 뒤에 그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시 카르타고로 돌아갔다. 그리고 카르타고인들과의 약속을 어긴 대가로 사방으로 못이 박힌 나무 상자 속에 갇혀 죽었다. 그는 로마의 집정관으로서 의무를 다한 다음 개인으로서 약속을 어긴 대가를 죽음으로 갚았던 것이다.


 

이 일화는 그 자체로서도 우리에게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주지만 복잡한 도덕적 물음을 유발하기 때문에 더 생산적입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이 일화를 통해 전쟁터에서 적과의 약속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개인적 의무와 시민적 의무가 충돌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런 물음은 학생들을 자연스럽게 도덕적 반성의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도덕 교과서에 이런 이야기가 실리면 어떨까요.


 

정종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교과서가 아닌 내용을 선생님으로부터 듣고 나서 아나키스트에 대한 책을 찾으신 것처럼, 지금처럼 답이 정해져 있는 교과서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가 실린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많은 학생들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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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경화 2007.10.11 21:00
    이 글을 읽으니 <일본인과 천황>이라는 만화책이 생각나는군요. 일본 얘기지만, 당연한 것으로 교육받고 생각해왔던 것들의 비도덕성을 느끼게 해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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