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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키로는 거뜬히 넘어 보이는 커다란 짐을 세 종이가방에 나누어 담고 힘들게 좌석버스에 올랐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종이가방 3개를 들고 움직이기가 쉽지 않아 입구 옆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종이가방이 너무 커 무릎 위에 놓아둘만큼 공간이 충분치 않아 옆자리에 종이가방 두개를 올려 놓았다. 10분쯤 달렸을까,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이내 버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짐에 둘러 쌓인 내가 안쓰러웠는지 짐을 놓아둔 옆자리를 탐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던 사람들에게 무언의 감사를 보내고 있을 무렵 아줌마 한명이 버스에 올랐다. 내 앞에서 나를 쏘아보며 투덜대기 시작했다.


옆으로 좀 치우면 앉겠구만..


나는 억지로 치우는 시늉만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버스에 오르던 사람들에 떠밀려 아줌마는 뒤로 밀려갔다. 버스에서 만난 첫번째 악()이었다.


그렇게 어중간하게 목적지가 다가오고, 내리기 위해 짐을 챙기고 운전기사에게 짐이 많아서 그러니 앞으로 좀 내리자고 정중하게 부탁을 했다. 하지만 버스 기사는 정색을 하며 뒷문으로 내리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기사는 신호를 위반하는 것보다 버스 앞문으로 내리는 것이 더 큰 죄악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거운 짐을 들고 뒤뚱뒤뚱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몇번을 넘어질 뻔 겨우 뒷문 앞에 서자 짜증이 밀려왔다. 버스에서 만난 두번째 악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내가 악일 것이다.

 

 

모든 선()은 자기가 선이라고 확신하며 악과 도덕적 투쟁을 통하여 선을 실천하려고 하는데, 그 순간이 바로 선의 이면에 운명적으로 깃들어 있는 악이 발효하는 순간이라고 여긴다. 선이 악으로 전환된 것이 곧 독선이다. 독선은 세상의 악을 청소한다고 주장하는 명분주의자들의 무기다. 그러므로 선의 이름으로 아전인수 격인 이기심을 발동하지 않는 경우는 참으로 드물다.(180)

 

절대적 선은 절대적 불선이라고 한다. 내가 생각한 선을 행하기 위해선 악의 무리인 아줌마와 버스 기사에게 대항해 선을 지켜야 한다. 비약이 좀 심한 것 같지만.. 하여튼 그들에게서 내가 생각하는 선을 지키기 위해 나는 악을 행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인생에서 선을 쌓아야겠다고 결심한 도덕주의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선행을 열심히 하기로 맹세한 그는 악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다. 그 투사가 선의 화신이 되어 악과 투쟁을 벌이는 그 순간에, 그의 선행은 무의식적인 악행을 짓는 것인지 모르고 악에 대한 증오의 눈길을 자랑스럽게 펼친다. 그는 선행의 이면에 악의 씨앗이 잠재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무명인(無明人)이다.(255)

 

하늘엔 흰구름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검은 구름도 있고, 붉은 구름, 회색 구름도 있다. 선과 악 또한 이런 구름들과 같은 존재의 다른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책을 읽으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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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경화 2007.09.21 04:17
    요즘들어 제가 혼란스러워하고 당황하는 것이 바로 그런 점입니다. 누구나 나름대로의 원리와 원칙, 정의와 선을 얘기하는데, 모두 맞는 이야기같은데 정반대의 내용입니다. 각자의 원리와 원칙이 만들어 내는 이해관계에 둘러 싸여있다 보면, 나도 옳든 그르든 원칙의 칼을 들고 있어야 살수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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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원 2007.09.21 04:17
    정말 좋은 글이군요...읽으면서 ..음...이런 내용인가 하는 생각도 들엇습니다..이 내용을 기독교인들이 오래전에 깨우쳣다면.. 이 세상은 이보단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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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영 2007.09.21 04:17
    가슴에 와닿네요~왠지... 공감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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