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공지
2007.07.06 02:23

이유 있는 아름다움 - 지상현

조회 수 2894 추천 수 0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무슨 작용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그림들은 신경과 호흡을 동시에 자극한다. 머리는 빈 듯한데, 호흡이 ‘허흡’하고 짧은 시간 멈추고, 이성에 앞서서 몸의 말초 부위에서 먼저 찌릿찌릿 반응이 온다. 가슴에서 퍼져나가는 피의 흐름도 불규칙적이다. 답답하면서도 아릿한 게 사랑하면서도 손을 대지 못하는 이를 앞에 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감각의 흐름을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 두루 뭉실 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분명 복잡 미묘한 감정인데, 그 각각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이 책에 나온 이종상 화백의 독도 그림, 이왈종 화백의 천진난만한 선화, 강요배 화백의 서천이나 호박꽃 그림 등은 한 때 내 컴퓨터의 바탕화면을 거쳐 간 그림들이지만, 그 때는 왜 내가 그 그림들을 좋아하는 지 알 수 없었다. 그저 ‘허...’ 하면서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내 개인적 취향에 이것이 맞나보지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각하지 못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 몸을 자극하는 그림들은 길고 긴 세월 동안 세포들이 기억해 온 균형과 안전, 조화의 원형에 근접하고 있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세포들은 기억하고 있다....





화가들은 본능적으로 이 기억의 원형을 ‘느끼고’, 이를 다시 시각의 형태로 되살려내는 것 같다. 세포가 제시하는 하나의 주제를 재현하여 평면 위에서 변주한다.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 오랜 과거를 아우르는 힘, 이를 손끝에서 표현해 내는 고도의 운동.


그 결과로 이루어진 그림 앞에서 내 몸 속의 세포들은 그림이 보여주는 원형의 진동에 공명한다. ‘같은 주파수다! 우리도 합창하자, 크게, 크게...!’


화가의 세포와, 그의 그림과, 내 몸 속 세포들이 공명하는 화음.


분명 이유 있는 아름다움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나는 화가들이 훨씬 존경스러워졌다. 그들이 그림을 잘 그리기 때문이 아니다. 훌륭한 화가야 말로 본질을 통찰하고 이를 표현해낼 줄 아는 사람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명성은 그냥 오지 않는다. 이종상 화백을 만나게 될 다음 토론회가 더욱 기다려진다. 




  • ?
    이상수 2007.07.06 02:23
    그림, 시, 춤 등은 모두 무엇인가를 표현한다는 것!
    그 표현을 위해서 사물에 대한 것이던 그 본질에 대한 것이던 또는 표현 기교 방법에 대한 것이던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화가들이 한가지 사물(주제)에 대해서 그리고 또 그리다가 보면 화백에게 이제 되었다 싶은 그림은 의도적이었던 아니었던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림에 자연에 숨겨진 아름다운 수치적 비율이 표현되어 또는 화가가 보여주고 싶은 어떤 느낌이 다시 일반 감상자에게 그 느낌이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만법이 일법이다'라는 말이 떠 오르는데 철학자가 고민하는 것과 예술가가 고민하는 것은 결국 같은 의미를 지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결국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 그림이 단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그림을 보는 안목을 키워야 그림의 진짜 아름다움에 눈 뜰 수 있을텐데... '막연히 좋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을 표현하시는 분들께 실례가 될 것 같습니다.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목숨도 바친다고 했는데..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56 "한치의 의심도 없는 진화이야기(Making of the Fittest)" 김병호 2009.04.07 2406
1055 공지 누구를 위한 종교인가-종교와 심리학의 만남 이병록 2007.01.06 2404
1054 공지 전쟁천재들의 전술 1 이병록 2006.12.09 2404
1053 공지 청바지 돌려입기.... 심지영 2003.06.25 2403
1052 "현대물리학, 시간과 우주의 비밀에 답하다"(숀 캐럴;김영태;다른세상 2012) 5 고원용 2012.07.08 2400
1051 공지 뇌와 창조성 2 file 문경수 2007.03.01 2400
1050 공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최윤배 2007.03.06 2395
1049 공지 파이란 이효원 2003.06.25 2394
1048 공지 [21] 짐 콜린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이동훤 2007.04.17 2393
1047 공지 최창조님의 '도시풍수'를 읽고 노승엽 2007.04.13 2391
1046 공지 최고는 무엇이 다른가? 정치 군사 리더와 성공 이병록 2006.12.10 2391
1045 공지 "The Present" 1 인윤숙 2006.08.23 2388
1044 공지 안나 카레니나 김미순 2006.12.15 2383
1043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 (Built to Last) 024 (2-2편) 4 한창희 2005.07.13 2382
1042 공지 배려라는 책을 읽고 41th 2 file 송근호 2006.05.30 2380
1041 공지 [21]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무라카미 하루키) 서윤경 2005.06.29 2378
1040 공지 학문의 즐거움 윤창원 2003.06.25 2372
1039 제국의 미래, 에이미 추아지음/ 이순희 역/ 비아북 4 최유미 2010.12.16 2370
1038 공지 붓다의 가름침과 팔정도를 읽고 4 박혜영 2007.04.10 2369
1037 공지 뛰어난 직원은 분명 따로 있다(051213) 최병관 2005.12.13 236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 72 Next
/ 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