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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아름다움 - 지상현

by 양경화 posted Jul 0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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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작용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그림들은 신경과 호흡을 동시에 자극한다. 머리는 빈 듯한데, 호흡이 ‘허흡’하고 짧은 시간 멈추고, 이성에 앞서서 몸의 말초 부위에서 먼저 찌릿찌릿 반응이 온다. 가슴에서 퍼져나가는 피의 흐름도 불규칙적이다. 답답하면서도 아릿한 게 사랑하면서도 손을 대지 못하는 이를 앞에 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감각의 흐름을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 두루 뭉실 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분명 복잡 미묘한 감정인데, 그 각각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이 책에 나온 이종상 화백의 독도 그림, 이왈종 화백의 천진난만한 선화, 강요배 화백의 서천이나 호박꽃 그림 등은 한 때 내 컴퓨터의 바탕화면을 거쳐 간 그림들이지만, 그 때는 왜 내가 그 그림들을 좋아하는 지 알 수 없었다. 그저 ‘허...’ 하면서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내 개인적 취향에 이것이 맞나보지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각하지 못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 몸을 자극하는 그림들은 길고 긴 세월 동안 세포들이 기억해 온 균형과 안전, 조화의 원형에 근접하고 있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세포들은 기억하고 있다....





화가들은 본능적으로 이 기억의 원형을 ‘느끼고’, 이를 다시 시각의 형태로 되살려내는 것 같다. 세포가 제시하는 하나의 주제를 재현하여 평면 위에서 변주한다.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 오랜 과거를 아우르는 힘, 이를 손끝에서 표현해 내는 고도의 운동.


그 결과로 이루어진 그림 앞에서 내 몸 속의 세포들은 그림이 보여주는 원형의 진동에 공명한다. ‘같은 주파수다! 우리도 합창하자, 크게, 크게...!’


화가의 세포와, 그의 그림과, 내 몸 속 세포들이 공명하는 화음.


분명 이유 있는 아름다움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나는 화가들이 훨씬 존경스러워졌다. 그들이 그림을 잘 그리기 때문이 아니다. 훌륭한 화가야 말로 본질을 통찰하고 이를 표현해낼 줄 아는 사람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명성은 그냥 오지 않는다. 이종상 화백을 만나게 될 다음 토론회가 더욱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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