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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by 정현경 posted Mar 0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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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전사>라는 책을 읽고 열하일기와 연암 박지원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찾아본 책이다.

같은 작가의 책이라 <나비와 전사>를 읽으며 접했던 생소한 개념들이 이제는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이 기분 좋았고, 지식인 네트워크 (혹은 우정)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 그런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묵직한 책의 두께를 보고, 아마도 열하일기의 전 내용과 그에 대한 주석이 촘촘히 달려있는 것인가보다..라고 생각하며 독서를 시작했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 열하일기는 이 두꺼운 책에서도 그 내용을 모두 다루기는 벅찬, 방대한 텍스트인가보다.



어쨌거나 조금쯤 더 친숙하게 다가온만큼 (나비와 전사보다) 조금쯤 더 많이 이해하고 공감했던 책. 이 책을 먼저 읽고 나비와 전사를 읽었다면 더 좋았을것 같다.







내가 여행에 대해 냉소적인 이유는 일시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파노라마식 관계'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파노라마란 무엇인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의 퍼레이드이다. 거기에는 그 공간을 가로지르는 인간의 얼굴과 액션이 지워져 있다. 그때 풍경은 자연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것은 생명의 거친 호흡과 약동이 생략된 '침묵의 소묘'일 따름이다. <서문에서>







>>여행에 대한 나의 생각과 겹쳐지는 '파노라마식 관계'에 대한 불만에 매우매우 공감하면서,

작가가, 혹은 요즘 '노마디즘'이란 단어와 개념이 왜 그렇게 각광을 받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 부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여행이 '노마드'가 아닌 '파노라마식 관계'에 머무르는 이유중 가장 큰 것이 '시간적 제약'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에 이 부분을 읽고 아마도 열하일기가 1년 혹은 최소한 반년 이상의 머무름 속에서 쓰여진 글이려니..생각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연암이 열하에서 머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여정의 전 기간을 포함한다 하더라도 (이동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과거 여행의 특성상) 중국에 머무른 기간은 상당히 짧은 편이었다.

그 짧은 기간의 머무름 속에서 연암은 어떻게 찐한 접속이 가능했던 것일까? 그 답은 바로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 있었다. 이를테면,'비포 선라이즈'에서 두 주인공이 같이 보낸 시간은 하루저녁이었지만 그들은 정말로 '만남'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연암은 열하의 사람들과 '비포선라이즈식' 만남을 가졌고, 따라서 짧은 머무름 속에서도 그곳의 문화와 사람들을 담아 올수 있었던 반면에, '관광'에는 의미가 없다며 한 국가를 1년씩이나 여행했던 나는 그 지역의 자연, 도시 자체와는 그나마 교감이 있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곳의 사람들과는 표면적인 만남, 스침만을 이어갔던 것 같다. 아!!!! 깨달음.







1장 "나는 너고, 너는 나다"

젊은 날의 초상 / 탈주, 우정, 도주 / 우발적인 마주침. '열하' / 그에게는 묘비명이 없다?





홍대용은 세 선비 가운데 특히 엄성과 깊은 영향을 주고 받았는데, 엄성은 복건에서 병이 위독해지자, 홍대용이 준 조선산 먹과 향기로운 향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먹을 관 속에 넣어 장례를 치렀다... 부고를 들은 홍대용은 이에 제문과 향을 부쳤는데, 도착한 날이 마침 엄성이 죽은지 3년째 되는 대상날이었다. 사람들이 경탄하면서 '명감이 닿은 결과'라고 하였다.



>>"나는 너고, 너는 나다"란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자신이 없지만 나는 그 말에서 나와 너 사이의 공명 (우정)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그것이 너무 부러웠다.

고작 며칠 사이 함께 글을 나누고 이야기를 주고 받은 우정으로 평생을 그리워하며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가 아니다) 지기라 여길 수 있다는 것이..정말 가능한 걸까?

얼마나 자신의 속을 보여줄 수 있는 대화를, 글을, 자리를 나누면 그게 가능한 걸까?

홍대용과 엄성의 이야기는 너무나 아름답다...







사절단에 꼽사리^^;; 끼어 따라간 중국여행에서 잠잘 시간을 쪼개 함께 글을 나누고 술을 마시며 찐한 접속의 장을 만들어간 연암의 일화들을 읽으며, 나는 우리 독서클럽을 떠올렸다.

이곳을 통해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며, 독후감을 나누는 우리들도, 연암처럼 지식과 우정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니까.

나는 아직 읽은 책의 목차를 정리해보는 수준밖에 안되지만, 이러한 나눔의 장을 발견해서 끼어들어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걸음을 시작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