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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자의 인문학적 이성 죽이기



S. 조나단 싱어 (임지원, 2004역)



참 잘된 번역서이고 좋은 책이다

그러나 책 제목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마치 과학자에 의한 인문학 비평서 같기 때문이다.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원제(The splendid feast of reason, 이성의 멋진 향연 또는 만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상을 보는 중요한 관점으로서 이성(합리주의)의 중요성과 가치를 역설하는 내용이다. 아마도 이러한 자극적인 책제목은 출판사의 광고 전략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적인 듯 하다. 나도 자극적인 책제목에 끌려 이 책을 집어 들었으니 말이다. 만약 책제목이 ‘이성의 멋진 향연’ 이였다면 아마도 무심코 지나쳤으리라.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명확하고 또 단호하다. 사실 나 같이 평범한 사람은 이 점도 마음에 든다. 그리고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책표지에 있는 저자 소개만 보아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S. 조나단 싱어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대학의 생물학과 명예교수이자 미국과학학회의 회원인 저자는 일생을 과학 연구와 교육에 매진한 저명한 분자생물학자이자 세포생물학자이다.

40년 간 오직 하나뿐인 열정의 대상인 과학 연구에만 몰두하다가 60세쯤에 이르러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어지면서 세상의 비합리성에 충격을 받고, 이 세상에 희망을 던져 줄 과학적 합리성과 합리성의 커다란 성취인 현대 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펜을 들었다.

스스로를 단호한 합리주의자이며 확고한 무신론자이자 유전자결정론 지지자이며, 정치적으로는 열성적 진보주의자라고 말하는 저자는 이 책을 읽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저자의 정치적, 사회적 신념을 먼저 충분히 고려하기를 충고한다.

조나단 싱어는 동시대의 학자이자 인생의 동료이며 세계적인 자연과학자로서 사회생물학을 창시한 에드워드 윌슨의 말처럼, 인문학과 과학을 아우를 수 있는 우리 시대의 몇 안되는 저자이다. 그는 인간의 근본적 이성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지를 명쾌하게 보여 준다.



1) 진리에 이르는 길과 관련하여(소제목이 너무 거창하지만 구분하기 위한 편의상)

난 이 우주의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진리가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인류가 그것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음도 믿는다.

그런데 이러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과학, 예술 등도 각각 그 길들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가 어느 길을 선택하여 걷든 각자의 길을 성실하고 진지하게 그리고 지속적 성찰을 하면서 걷는다면 인생의 소풍이 끝나는 날, 우리는 진리의 일부를 (전부는 아니겠지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진리에 이르는 길이 꼭 학문의 길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자연과학, 그 중 생물학이라는 길을 선택하였을 뿐이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명확하지는 않겠지만 이 세상, 이 우주와 생명에 대한 나름대로 확신에 찬 관점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나는 이 점을 자주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저자는 행복한 사람이다.

저자는 세상을 보는 눈으로서 과학과 그 합리성에 대해 확신에 차 있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왜 주변의 많은 과학자들이 싱어 박사처럼 과학적 사실에 바탕을 둔 뚜렷한 관점을 주장하지 못하는 것일까? 싱어 박사만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탓일까? 꼭 그것만은 아닌 듯하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는 우리 주변의 지나친 종교적 분위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를 ‘과학의 시대’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과학기술의 시대’이지 과학적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는 아니다. 세상은 여전히 일상에서, 정치에서 종교가 너무 큰 영향을 행사하고 있는 시대이다. 수천년의 영향력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겠는가?

과학자들이 소극적 자기 주장을 할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과학 자체의 본질과 관련이 있다. 과학은 생명체의 일면을 닮았다. 그것은 이전에 지니고 있던 것들 중 일부를 품고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확대되어 간다. 아직 과정 중에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누구보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지식의 경이로움과 함께 그 한계 또한 명확히 알고 있다. 이 점이 어설픈 단언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2) 문화적 상보성

저자는 1장 끝부분에서 책의 목표를 명확히 하고 있다.



“이제부터 나는 외부 세계에 대한 인간중심적인 관점과 과학적 관점을 조사하고 대조시킬 것이다. 이것이 물론 새로운 견해는 아니다. 하지만 비합리적인 세계의 소란과 잡음 위로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어야 할 이야기임에는 분명하다. 나의 궁극적 목표는, 각 개인이 내면의 자기중심적 세계와 그와는 엄청나게 다른 개인을 둘러싼 우주적 세계를 합리적으로 화해시킬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 합일점에 대해서는 10장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저자가 자기중심적이고 비합리적인 내면세계와 합리적인 외부 세계를 조화시키는 방안으로 제시하는 개념이 바로 문화적 상보성이다. 따라서 이 개념이 이 책의 핵심이다. 이런 점에서 과학적 소양을 어느 정도 갖춘 사람이라면 앞부분이 좀 지루한 면이 있기 때문에 바로 10장을 읽어보아도 저자의 핵심적 견해를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내면세계는 본질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이 우주 안에서 특별하고 의미있는 존재여야만 한다. 한마디로 인본주의이다. 그러나 과학을 통해 밝혀진 외부 세계는 인간에 대해 너무도 무심하다. 인간이란 무의미한 우주에 홀로 남겨진 중요하지 않은 존재이며 그의 시간은 순간이요. 그의 공간은 한 점일 뿐이다.

자기중심적 전망보다 훨씬 음울하고 마음을 어지럽히는 관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의 불일치로부터 오는 허무, 불안 등을 극복하고 승화시킬 수 있을까? 종교에 의존하지 않고서.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의 내면세계에 대한 자기중심적 관점과 외부 세계에 대한 과학적 관점이 인생에 대한 상보적 관점이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자기중심적 관점이란, 나의 인생은 그 모든 기쁨과 괴로움을 포함해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선물이라는 생각이다. 이것은 우리가 행복하게 음미하고 탐닉하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감사와 무언의 못마땅함을 가지고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전부는 아니다. 외부 세계에 대한 과학적 관점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홀로 남겨진 존재가 아니라 거대한 대하소설의 일부임을 보여준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은 어쩌면 수십억 년 전에 일어났을 은하계의 별의 붕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죽으면 그 유전자와 원자는 미래의 생명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불멸이다. 호모 속은 40억 년 전 지구에서 처음 시작된 연속적인 생명의 사슬의 맨 마지막에 있는 가지이다. 합리적인 사람은 자기도취에 빠져서 살 수 없다. 외부에 있는 현실이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세계이다.

다시 말해, 데카르트의 경구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나 자신에 대한 자각이 나의 존재를 확립시켜 준다.)라는 말에는 내면세계에 대한 자기중심적 관점이 구현되어 있지만 외부 세계에 대한 과학적 관점은 다음과 같은 상보적인 경구를 낳는다. “나는 연결되어 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내가 우주의 역사의 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이 나의 존재를 정당화시켜 준다.) 사람의 인생은 과거나 미래에 연결되지 않은 고립된 자아가 아니다. 한편 신비로운 신이라는 존재의 은혜를 입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 혹은 삶은, 하나의 별과 마찬가지로, 실재하는 찬란하게 복잡한 우주의 한 부분이다. 우리의 존재는 무한한 시간과 공간에 둘러싸여 있으며 그 시간과 공간에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의 자기중심적 내면세계와 현실적 외부 세계는 서로 상보적이다. 어느 한 쪽만으로는 인간의 삶을 적절하게 규정할 수 없다. 두 세계 모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저자가 ‘문화적 상보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인간의 내면세계와 과학의 관점으로 본 외부 세계를 둘 다 그대로 수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수동적 수용이 아니라 원칙이 있는 수용이다. 즉 어느 한 영역에 속하고 그 영역 안에서 해결되는 문제가 다른 영역 안에서 대립이나 충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입각한 수용이며 양립인 것이다. 이것이 가능할까? 저자는 물론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둘은 상보적 관계이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 나타난 저자의 또 다른 입장은 이타적 합리주의인 것 같다. 누가 이 주장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만 된다면 분명 세상은 지금보다 더 공평하고 풍요로우며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인류의 미래도 더욱 확고하게 보장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이것은 어느 국가에서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는 좀 더 시련과 고통을 겪은 후, 전 인류적 차원에서 동의를 이룬 후에야 비로써 ‘이타적 합리주의’는 온전하게 실행될 수 있을 것이며 의미있는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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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경화 2007.02.19 09:00
    이걸 읽다가, 과학은 인간에게 있어 수단이라기 보다는 목적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지금까지 왜 그걸 몰랐을까요. 언젠가는 나도 진리의 한 모서리라도 볼 수 있을까... 불꽃을 지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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