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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은 어떻게 출현하는가



조용현, 1996



계획은 계획일 뿐

에델만이 쓴 “뇌는 하늘보다 넓다”를 읽을 예정이었으나 계획과는 달리 존경하는 철학자 한 분이 쓰신 정신의 출현과 관련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의 주논제는 “우리의 정신은 과연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즉 정신의 발생학을 다루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정신은 무엇인가”라는 논제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특히 첫 번째 의문은 저자를 오랜 시간(약 20년간) 사로잡았던 것이기도 하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진화학적 관점에서의 정신 발생 과정은 상당한 논리와 합리성이 있다.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 보자

저자에 따르면 정신 곧 의식은 타자와 자아를 구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그 무엇이다. 그리고 타자 곧 대상 세계의 인식과 자아 의식의 출현에는 도구 제작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의식은 두 단계로 구분된다. 소극적 의식은 타자를 통해 반정립된 자아이다. 여기서의 자아는 타자 의존적이다. 타자가 자아에로의 침투가 저지당한 곳, 그것이 다만 자아일 뿐이다. 이 자아는 타자의 반사면일 뿐 그 자체 자립적인 존재는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무규정적이다. 따라서 그것은 독립적 내부를 가지지 못하므로 독립적 외부도 없다. 여기서 객관적 외부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적극적 의식에서 자아는 타자에 독립해 있으며, 타자는 자아에 독립해 있다. 그가 밀고 나가기를 멈춘 곳, 그것이 바로 타자이고 외부 세계이다. 여기서 즉 자아와 자아 아닌 것의 대립 속에서 일정한 규정성을 가진 자기 동일성이 생겨나는데 이것이 본래적 의미에서의 자아이다. 이 자아는 자신에 대항하는 것을 외부 세계로 지각하며 여기서 자아와 독립된 대상 세계가 주어진다.

이러한 적극적 의식은 도구 제작 과정을 통해 획득된 것이며 여기서 객관적 대상 체계가 출현한다. 역으로 말해서 객관적 대상 체계의 존재는 의식의 뚜렷한 징표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은 타자를 항상 객관적 실재로 인식한다.”



진화학적으로 보면 도구 제작은 호모 하빌리스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시기는 약 250만년 전이다. 이 시기에는 호모 하빌리스 뿐 아니라 오스트랄로피테쿠스군도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즉 같은 호미니드 계열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군은 왜 도구 제작의 단계에 이르지 못했을까? 하는 것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군도 이전 선조가 수상 생활(수상 생활에서의 이동을 위해서는 정확한 보기와 잡기가 중요하며 이 때문에 발달한 시각과 확장된 뇌를 갖게 되었다)을 한 덕분에 물려받은 커다란 뇌와 도구 사용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계열은 도구 제작자에 이르지는 못했다.

차이는 서식 환경에 있었다. 즉 오스트랄로피테쿠스군은 여전히 삼림에서 주로 채식을 위주로 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던 반면 호모 계열(호모 하빌리스)은 보다 척박한 환경인 사바나에서 생활하였고 보다 자주 사냥을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도구 사용을 넘어 도구 제작에로의 이행에 대한 선택압이 훨씬 강하게 작용했던 것이다.



다음으로 호모 계열에서 도구 제작이 가능하게 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자유로운 손의 사용, 엄지의 대칭성 등에 기초한 손의 조작성에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손에 의한 무엇의 조작이 가능하게 된 것은 호모 계열의 조상이 이동 기능을 오로지 두 발에만 집중시키는 직립 보행을 하게 된 덕분이다. 인간은 현재 유일하게 완전한 두발 보행을 하는 동물종이다. 그리고 화석 기록에 의하면 호미니드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일명 ‘루시’)는 이미 약 350만년 전에 완전한 직립 보행 능력을 획득했다. 그러나 이것은 갑자기 얻게 된 능력은 물론 아니다. 수상 생활에 적응한 영장류 일반은 이미 직립 보행의 예비 단계로서 직립 자세라고 하는 신체적 특징을 보유하고 있었다. 여기에 도구 사용이라고 하는 행위가 강력한 선택압으로 작용하여 마침내 350만년 전 완전한 직립 보행을 이루어낸 것이다.



그런데 직립 보행 > 손의 해방과 조작 기능 > 도구 제작 > 의식(자아와 타자의 구별, 자기 의식) 출현으로 이어지는 이와 같은 일련의 진화 과정의 근본 배경을 저자는 매우 흥미로운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는데 이것은 영장류의 환경 적응 전략과 관련이 있다.

저자에 의하면 영장류는 환경 적응과 관련하여 다른 동물종과는 전혀 다른 전략을 추구한 무리들이다.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다른 동물종들은 그들이 서식하고 있는 자연 환경에 자신의 신체 구조를 최적화시켰다. 최적화 적응 전략은 거칠게 표현하자면 신체 기관을 마치 열쇠와 자물쇠가 딱 들어맞듯이 종의 생활 조건과 생활 요구에 적합하도록 구조화시켰음을 의미한다. 즉 특수화된 것이다.

그런데 이 전략은 한 가지 아주 대담한 가설에 기초하고 있다. 적응 전략을 구축케 했던 그 환경이 불변이라는 전제이다. 따라서 환경 조건의 변화가 일어나면 정상적인 상황 아래에서는 그들에게 그렇게 유익했던 그들의 특수화가 이제는 저주스러운 숙명으로 변한다.

이에 비해 영장류가 선택한 적응 전략은 특수한 환경에의 적응보다 일반적 환경에의 적응 가능성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이 전략하에서는 특정한 환경에 자신의 신체 구조를 짜맞추는 종래의 적응 방식은 폐기되고 신체 구조는 원시적 형질을 그대로 유지한다. 환경에 반응하는 것은 이제 신체라고 하는 하드웨어가 아니고 뇌에 기초를 둔 ‘정신’이라는 소프트웨어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하드웨어를 바꾸는 힘들고 때론 불가능한 과업에 매달릴 필요없이 소프트웨어의 운용 체계를 확장하거나 변경함으로써 환경 변화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영장류가 이와 같은 비특수화 적응 전략을 선택했다고 하지만 인간 외의 영장류에서도 정신이 출현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정신’은 영장류가 채택한 새로운 적응 전략의 논리적 귀결임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정신’ 또는 ‘의식’의 출현은 영장류의 적응 이념이 가장 완벽하게 실현된 결과인 셈이다.



정신의 발생 과정을 논하는 과정에서 ‘정신(의식)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하고 답하는 것은 필연적인 과정이다. 저자도 이러한 물음과 다름의 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저자의 날까로운 논리와 합리성은 무뎌지고 이해할 수 없는 관념론에 빠지는 듯 하다. 저자는 정신의 ‘실체성’을 부인한다. 그 이유는 정신은 그 자체가 자신을 포함한 세계(우주) 전체를 포함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 실재인데 실체적 관점에서는 ‘부분이 그 부분을 포섭하는 전체와 같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정신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실재에 대해 ‘실체’ 개념에서 ‘관계’ 개념으로 이행할 것을 주장한다.



“우주는 ‘실체’들의 집합이 아니라 관계의 집합이며, 실체는 관계를 임의적으로 고립시킴으로써 만들어진 가상에 지나지 않는다. 물질은 의사 실체적 특징을 가지기 때문에 실체적 관점에서의 근사적 이해가 가능하다. 그러나 생물은 전통적인 실체의 개념을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한정된 영역에서의 부분적 이해는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정신을 설명하고자 하면 전면적인 무한 퇴행에 빠지고 만다. 정신은 자기와 대상의 관계를 다시 자기 속에 관계시키는 진정한 관계자, 다시 말하자면 ‘자기 관계자’이기 때문이다.”



실체가 가상이라면 눈 앞의 현실은 무엇이며 관계로부터 가상 현실이 어떻게 실현된다는 것인가? 물질의 의사 실체적 특징은 실체적 특징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자신이 자신은 물론 자신을 포함하는 우주를 인식하는 정신작용을 물질적 토대위에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 앞선 속단은 아닌가?(우리가 정신작용을 분자수준에서 다루기 시작한 것은 100년은 고사하고 50년도 안된 일이거늘...)

저자는 정신 현상을 이해할 수 없기에 이를 설명하기 위해 무척 노력한다. 카오스 이론이 동원되고 환원주의를 비판한다. 전체는 부분들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DNA 분자를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화학적 요소들의 성질을 이해한다고 해서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에 유전학은 화학 법칙들로부터 인과적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말한다.

전혀 동의할 수 없는 해석이다. 현재 생물학자들은 DNA의 화학적 구성과 구조는 물론 그것이 유전 정보를 담는 방식, 유전 정보를 발현하고 다음 세대로 전하는 방식을 거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환원주의적 접근의 소산이며 다른 어떠한 접근 방식도 이것에 기여한 바가 없다. 또한 DNA 분자의 구조와 활동은 알려진 화학 및 물리 법칙을 정확히 따르고 있다.

물론 현재 환원주의를 따르는 과학자들도 자연계에 존재하는 ‘창발성’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 상호작용과 network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실재의 실체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좀 더 난해한 정신 작용의 이해도 마찬가지이다. 환원주의적 접근 방법을 통해 얻어진 뉴런의 활동 기작, 발생 과정, 상호작용 그리고 network 활동 등에 대한 정보는 우리의 정신 작용을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그러나 걸어온 짧은 길에 비해 그 성과가 눈부심은 인정해야 한다. 현재의 부족함에 조급하여 관념론에 빠지기 보다는 좀 더 기다려 봄이 옳을 것이다.





*** 다음은 에델만의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를 원서(원서 제목은 ‘Bright Air, Brillant Fire : On the Matter of the Mind)로 읽어 볼 계획이다. 원서는 박문호 박사님이 친절하게도 복사해 주셨다. 열심히 읽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박 박사님께 조언을 구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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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경화 2007.02.05 09:00
    요즘은 책이나 독후감을 읽다 보면 과학책인지 철학책인지 구분이 안가요. ㅎㅎ.. 저도 겨울이 가기 전 에델만책을 읽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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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우 2007.02.05 09:00
    신체는 하드웨어고, 뇌에 기초를 둔 '정신'은 소프트웨어다.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영장류가 택한 건 하드웨어의 교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확장이나 변경이다...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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