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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뒤 문경수 회원님, 선완규 휴머니스트 편집자님과 그날의 뒤풀이 장소였던 박문호박사님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형! 대담 읽어 봤어? 이분이 그 책 만든 분이야”

대답할 틈을 안 주길래 잠시 머뭇거리다 나는 겸연쩍은 듯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부정의 대답을 하고 말았다.

“아니..”



이날 머릿속 독서리스트에 넣어 두었다가 조금 전에 다 읽었다.





도정일 : 예술이 수행하는 가장 위대한 인문학적 경험은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자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32)



최재천 : 잘 알지 못하면 보호한다는 것이 오히려 파괴하는 것이 되죠. 알아야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겁니다.(57)





두분의 시선은 한곳에 고정되어 있는 듯 했다. 그것은 아마도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가 아닐까. 공생인간.

남의 고통을 이해하고, 파괴하지 않고 함께 잘 사는 것.



‘이 높디높은 산들은 어디서 왔는가. 그것은 더없이 깊은 심연에서 그 높이까지 이른 것이 아닌가.’ 본디 산정과 심연은 하나이다.(26)

도정일과 최재천이란 인간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이라는 학문은 니체가 이야기한 산처럼 원래 하나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이 생각을 했다. 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한글을 사용하는 사람들보다 몸짓에 능숙할까. 입을 열고 소리만 뱉으면 되는데 왜 어렵게 몸을 움직여 부연설명을 하는 것일까. 어쩌면 이것이 한글보다 표현력이 떨어지는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풍부한 표현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정확한 의미전달을 하기 위해 그러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 또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적진화가 언어에 맞추어 국지적으로 진행된 하나의 예가 아닐까.





신화의 시작이 많은 경우 기막힌 재담가나 이야기꾼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까? 하느님이 최초의 인간을 만드시기 전에 벌어진 일을 어느 인간이 기록 또는 관찰이라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나중에 누가 지어낸 이야기, 즉 픽션이잖아요. 말하자면 어떤 기막힌 ‘구라쟁이’가 신화 같은 것을 만들어내지 않았겠느냐는 거죠. 저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결정적인 차이는 ‘구라’의 유무가 아닌가 싶어요,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이야기꾼들, 픽션메이커들, 구라쟁이들의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최재천- (282)



한때 진리로 여겨졌다가 진리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어 나자빠진 이야기들, 곧 ‘구라’들이 즐비한 동네, 그게 과학사 아닌가요? 이건 진리다, 그랬다가 가설이 엎어지면 한판의 ‘구라’가 되는 거죠. 과학은 반드시 입증의 책임 앞에 서야 하고 검증에 실패하면 무너집니다. 그러나 과학적 방법이란 게 확립된 이후에도 과학은 여전히 ‘구라’가 될 수 있는 운명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까요. 아인슈타인 이전에 빛은 휘지 않고 시간은 직선이라는 게 과학의 정설이었어요. 과학의 불안은 정설이 언제나 ‘잠정적으로만’ 정설이라는 데 있습니다. –도정일- (283)





이들은 이렇게 싸우기도 하고





우리의 머리카락 색을 결정하는 유전자도 아직 못 찾았습니다. 과연 몇 개의 유전자가 관여하고 있는지도 아직 찾지 못했죠. 그처럼 간단한 형질을 결정하는 유전자의 존재도 모르는 상황에서 ‘평화 유전자’, ‘폭력 유전자’를 운운하는 것은 너무 앞서가는 이야기 입니다.(123)





위와 같이 현재를 점검하고, 아래와 같이 미래를 대비하기도 한다.





도정일

사회문화적 다양성이나 생태계에서의 다양성이라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우선, 생명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종 다양성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해야겠죠. 생명은 수단적 가치가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입니다……………

지금 인간은 자기가 아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는 명민하지만, 모르는 문제들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굉장히 둔감합니다. 그러다가 몰랐던 문제가 터지면 그때부터 당황하는 거죠. 그제야 해답을 구하자면 이미 때가 늦습니다. 인간 스스로가 파괴해서 없애버렸기 때문이죠.



최재천

예, 소스(source) 자체가 사라지는 거죠.



도정일

인간이 아직 그 효용을 발견하지 못한 풀이 잡초인데, 사실 잡초의 가치는 효용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잡초를 만나면 우린 이렇게 말해야 해요. “잡초님, 아직은 우리가 당신을 발견하지 못해 잡초로 대접하지만, 섭섭다 마시고 의연히 지내십시오. 언젠가 인간이 찾아올 겁니다” 그런데 지금 쓸모 없으니까 앞으로도 쓸모 없을 것이다 싶어 잡초들을 몽땅 뽑아 죽여 없애고 있으니 문제죠. 인간 사회에도 이런 잡초 같은 존재들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쓸모없다 해서 ‘바보’로 여겨지는 존재들 말입니다.(521-522)





나는 이들이 프로이트를 두고 나눈 대화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최재천

프로이트의 이론은 저 같은 진화생물학자의 입장에서는 문학적 상상력에서 나온 일종의 신화에 불과해요. 한마디로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근거를 주려고 해도 도저히 줄 수 없는 이론이죠. 프로이트가 뱀이 길게 생긴 것이 성욕의 표상이라는 식으로 말했다면, 이것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옹호해줘야 할지 참 어렵습니다. 서양에서 프로이트가 그런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한방에서도 그게 정력에 좋다고 한 걸 보면 뭔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생물학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게 생물학적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건 설명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겁니다.(463)



도정일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은 세 줄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내게는 내가 모르는 내가 있다.” “나는 나의 주인이 아니다.” “나의 주인은 나의 무의식이다.” 이건 과학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나다”, “나는 언제나 나의 주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프로이트가 깨뜨린 건 바로 이런 자아의 환상입니다. 내 의식이 나의 주인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나의 무의식이 나의 주인이라는 건 혁명입니다.(457)





앞으로 프로이트와 관련된 많은 것들이 이 책을 읽기 전과 다르게 보일 것 같다.





도정일

생물세계(biosphere)에서 일어나는 모든 혁신과 모든 창조의 유일한 기원은 우연이다. 순수한 우연, 절대적으로 자유롭고 맹목적인 그 우연만이 진화라 불리는 거대한 건축물의 뿌리이다.(207)



라며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을 인용해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기도 하고.



최재천

저는 학기마다 첫 시간에 들어가서 다짜고짜로 “죽음을 연구하는 학문에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사실 생물학은 죽음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왜냐하면 죽는다는 게 결국 생명을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특성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211-212)



라며 생명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이 책은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을 어깨너머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기쁨뿐 아니라,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나아갈 길을 두드려 볼 수 있게 만드는 좋은 기회를 준다.

아래는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이다.



“생명은 어떻게든 길을 찾는다(Life will find a way)”(315)





  • ?
    양경화 2007.02.03 09:00
    오늘 읽은 책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물질적 현실의 본질은 상식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애매하다....과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실재 세계에 대한 은유적인 그림이며, 비록 그 그림은 그럴듯해 보이긴 해도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우리의 모든 지각은 본질상 주관적이고... 따라서 모든 지식은 은유적이다" 두 분의 이야길 들으니 생각이 나네요.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이 없지만...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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