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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한 나의 에피소드



일화 1. 중학교 2학년

중 2때를 기억하면 나는 고통스럽다. 대학을 수석 졸업하고 갓 부임한 역사선생(여자라는 것을 밝히고 싶다)은 개 패듯이 우릴 후려 팼다. 매일같이 쪽지 시험을 봤는데, 그 문제란 게 참으로 특이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고려시대의 문화는 ( )하고 ( )하다는 특징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 )의 ( ) 작품이 있다”는 식이다. 문제를 맞추기 위해서는 교과서를 달달 외워야만 했다.

100점 미만자에 대한 그 선생의 처벌 방식은 연좌제(?)였다. 나와 짝꿍이 틀린 개수를 합해서 맞는 식이다. 내 짝꿍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100점 맞는 것보다 걔가 10점 맞는 게 더 어려운 그런 애였다.

이런 이유로 나는 역사 시간만 앞두면 속으로 하염없이 울면서 무릎 사이에 손바닥을 비벼댔고, 역시나 20-30대는 기본으로 맞았고, 교실 밖으로 쫒겨 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지금도 내 손바닥의 각질이 두꺼운 것은 그때의 매질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니 어찌 내가 역사를 좋아할 수 있겠는가! 역사 교과서는 선생 욕으로 도배가 되어 있는데...



일화 2. 역시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

지리산 민박집에서 자는 둥 마는 둥 했는데 식전에 화엄사 구경을 한단다. 우씨… 뭔 절을 본다고 이 새벽부터 난리야… 배 고파… 하품을 해대면서 친구들이랑 잡담을 하는데, 문제의 처녀 선생이 아닌 다른 반 역사 선생님(이 분께는 ‘님’ 자를 꼭 붙여야 한다)의 목소리가 귀를 번뜩이게 했다.

“이 절의 지붕을 봐라. 이렇게 생긴 지붕은 ooo라 하고, 저렇게 양쪽으로 날개가 있는 것은 xxx라 하지.. 기타 등등..”

'앗! 세상에 이런 지식이 있다니…! 정말 지붕이 다 다르구나! 나는 왜 몰랐을까...'

아직도 그 아침의 놀람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지금까지도 그 분은 내게 최고의 스승으로 기억되고 있다.



일화 3. 2000년 가을쯤

<<내일을 여는 역사>>란 월간지가 처음으로 발행된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역사지로는 처음이라나… 역사의 ‘역’자에도 관심 없던 내가 그 한 글귀에 그만 크게 감동하고 말았다. 바로 출판사에다 “이런 잡지가 발행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너무 너무 기쁘다, 1년치를 구독하겠다”는 요지로 엽서를 보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 후로 한 2년간 모종의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읽은 기억이 있다(솔직히 내용은 어려웠다).



일화 4. 2006년 10월 독서여행

“불교를 모르면 역사를 모르는 것이다”라는 박문호 박사님의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까지 여러 사찰에 다녀봤지만 내가 본 것은 무엇이던가...

"아, 경치 좋고! 절도 이쁘네!"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신은 나를 사랑하사 세 번이나 정신차리라고 뒤통수를 때렸지만 15살 이후로 하나도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는 역사를 모른다는 것이 부끄럽진 않았지만 지금은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서론이 길었다. 아무튼 아둔하기 짝이 없는 나는 세 번의 벼락을 맞고 나서야 이 책- 역사를 이해하는 첫 걸음으로 가장 쉬워 보이는- 을 집어 들었다.

독서여행에서 앞뒤가 끊기게 들었던 것이 이 책을 통해 한 흐름으로 이해가 되었고, 어려운 용어들도 한번 들어봤다는 이유로 편하게 다가왔다. 저자는 불교를 상대적이며, 논리적이고, 포용적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책에서 알아낸 것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열심히 이야기했더니 그런건 누구나 안다는 듯이 표정이 시큰둥하다. 나는 페이지마다 밑줄인데... 뭐, 어떠냐. 나이는 좀 들었지만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는 것 같은 기쁨을 느낄 수 있었는 걸!

이젠 절에 가서 “아, 경치 좋고!” 대신 깊이있는 눈으로 보고 느끼고 싶다. 나도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될까? 분명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책은 <불교 사상의 이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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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문호 2006.12.25 09:00
    "어느 고을에서든 내 보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자는 없었다"---공자---
  • ?
    김형근 2006.12.25 09:00
    화이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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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수 2006.12.25 09:00
    엉뚱한 이야기지만 왜 채벌이 존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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