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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0 09:00

군자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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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박원재,사서오경-최진덕,2006.3.25.1532시 서울집에서,



❍ 1부 도덕경 - 제도화된 삶에 대한 반란

1. 동아시아 지성사의 두 라이벌 - 맹자의 논적은 양주와 묵적이었고 한유의 논적은 노자와 석가모니의 후예들이었다는 점이다. 당시의 사상적인 세력 판도는 불교와 도교가 유교에 비해 우월한 상황이었다. - 일부 유학자들이 공자를 노자나 석가, 특히 노자의 손 아래에 두는 데 쉽게 동의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공자가 노자를 찾아가 예에 대해 묻고 배웠다는 역사적인 기록이 엄연히 전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2. 공자가 꿈에서도 주공을 흠모했던 이유

- 주공은 무왕을 도와 은을 멸했고, 무왕이 죽고 나자 나이 어린 조카 성왕을 보좌하여 주나라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공자는 주공에 대해 극진한 예로 흠모와 존경의 염을 표했으며, 주공은 훗날 유가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 공자와 주공은 바로 이 주례를 통해서 연결된다. 주례야말로 공자가 평생에 걸쳐 부흥시키고자 했던 이념이었기 때문이다. - 제자백가의 궁극적인 관심은 새로운 질서에 대한 모색으로, 그것은 묵시적으로 기존 질서와의 결별을 의미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제자백가는 이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존의 것을 부정하는 대신 그 의미를 새롭게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했던 특이한 그룹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유가였다. 유가는 당시의 혼란이 기존 질서의 문제점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들은 반대로 과거의 근본정신이 여러 가지 시대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결과로 진단하였다.

- 공자가 그토록 긍정하고자 했던 기존의 질서 체계란 무엇이었을까? 그것이 바로 주례였다. - 인간사회의 가장 기본적 조직인 가족, 그 가족의 구성원 사이에 존재하는 친애의 감정에서 통치질서의 원리를 끌어 낼 수 있다면 최상의 통치원리가 될 것임은 명약관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롯된 것이 주나라 통치제도의 양대 기둥인 ‘종법’과 ‘봉건’이다. ‘종법’은 한 집안의 혈통을 대표하여 계승하는 승계권자를 정한 제도이다. ‘봉건’은 종법을 주나라의 정치체제 전반에 확대 적용한 것이다. - 구성원들이 사회제도를 자신들의 자연스런 삶의 질서로 받아들이게끔 만드는 규범의 체계가 필요한데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예’이다. 주나라의 ‘예’는 한편으로 상하관계의 위계질서를 떠받치는 이데올로기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 유가는 인간사회만을 도덕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세계 전반을 역시 도덕적인 관점으로 보는 특유의 세계관을 만들어 냈다.

- 인간은 자신과 우주의 도덕적인 본성과 질서를 인식하고 이에 걸맞은 적절한 도덕적 실천을 통해 우주의 움

직임에 동참할 수 있으며 이런 과정을 통하여 마침내 인간은 세계와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세계와 하나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유가의 기본적인 사유방식이며, 동시에 신 중심의 다른 문명권과 구별되는 동아시아 문명의 독특

한 세계관이다. - ‘인간의 완성’이라는 말보다 ‘인간의 구원’이라는 말을 선호하며, 어떤 초월적인 존재나 절대

신에 의지해 구원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보았다. - 이에 비해 유학과 이를 축으로 하는 동아시아 문명은

인간의 문제는 인간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는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 유가가 바라본 세계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아니라 특정의 가치, 즉 도덕적으로 바라본 세계이다. - 그러나 우리가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인간을 ‘만물’ 가운데 하나로만 겸손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러한 왜곡의 가능성은 최소화된다.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노자를 만나게 된다.

3. 진리, 그 자체에는 침묵을 지켜라

- 노자의 세계에서는 다른 어떤 것에 앞서거나 절대적으로 귀중한 존재란 없으며 도덕적으로 더 우월한 존재도 없다. 만물은 세계 속에서 서로 맞물려 하나의 생명체처럼 떨어질 수 없고 관계 속에서 자기의 개성을 드러내고 유지하되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열려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 자기들 문명의 논리를 널리 알리고 이를 잘 포장한 구성원에게는 높은 관직을 보장하거나 포상금을 내리고, 위대한 교사나 영웅이라는 칭호가 내려진다.

- 장자가 꼬집은 대로, 문명의 요구대로 다리를 잡아늘여 ‘학이라는 표준을 흉내내는 오리’가 되든지, 스스로 아웃사이더로 소외되든지 두 가지 길뿐이다. - 노자는, 아무리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다 해도 문명이란 결국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 있는 그대로의 인간의 삶을 굴절시키고 왜곡하는 폭력임을 간파했던 것이다. - ‘도’의 특정의 그 무엇이 아니라 만물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모습 그 자체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도’는 고정된 내용이 없다. 만물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쉴 새없이 변해 가는 것이 그 특징이기 때문이다. - 노자는 ‘도’를 ‘텅 빔’, 곧 ‘허’라고 말한다. ‘도’는 이처럼 스스로 비어 있기 때문에 세계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최고의 원리가 될 수 있다.

- 맹자는 양주를 공격하면서 그의 학설은 ‘군주를 염두에 두지 않는 학설’이라고 비판하였다. 위계질서를 부정한다는 뜻이다. - 『노자』는 결국 어떤 종류이건 ‘권위에 인간을 얽어매려는 일체의 시도’로부터 인간을 본연의 모습으로 해방시키고자 했던 저항의 외침이었던 셈이다. 우주는 한 생명처럼 만물이 유기적으로 얽혀 돌아간다는 세계관을 공유하면서도, 도가와 유가는 결별할 수밖에 없었고 끝내 화해할 수 없었다. - 만물이 지니고 있는 전체의 질서를 도라고 한다면 만물의 하나하나에도 이러한 도가 숨어 있을 것이다. 노자는 이를 ‘덕’이라고 부른다.

4. 노자는 있다, 노자는 없다

- 『사기』에 수록된 「노자열전」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공자가 주나라에 갔을 때 노자에게 예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그러자 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가 지금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것을 말한 사람은 이미 그 뼈까지 썩어 문드러져 없어지고 다만 그 말만이 남아 있는 데 지나지 않는다. 내가 듣기로는 뛰어난 상인은 재물을 깊숙이 감추어 마치 아무것도 없는 듯이 하고, 군자는 훌륭한 덕을 갖추었어도 겉모습은 마치 어수룩한 듯이 한다고 한다. 그러니 그대의 교만함과 욕망, 허세와 야망을 버려라. 그런것들은 그대의 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내가 그대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전부다.” 공자는 물러나와 제자들에게 말했다. “달리는 것은 그물로 잡으면되고, 헤엄치는 것은 낚시로 잡으면 되며, 날아다니는 것은 주살로 잡으면 된다. 하지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용에 이르면 나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오늘 나는 노자를 만났는데, 그는 바로 용과 같은 인물이었다.”

- 노자를 언급하면서 그의 성을 ‘이’라 하는 것도 오로지 사마천의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사마천이 무슨 근거로 노자의 성을 이씨라고 했는지, 춘추시대에는 이씨란 성이 없었다는 반론에도 불구하고 달리 확인할 길은 없다. 선진시대의 관행에 맞게 『이자』라고 했어야 하지만 왜 굳이 『노자』라고 했는지 사마천의 기록은 명확하게 밝혀 주지 못한다. -「노자열전」에 기록된 국경의 관문이 서쪽에 있는 함곡관으로 해석되면서, 노자가 인도로 가서 석가모니로 변신하였거나 혹은 석가를 제자로 삼았다는 이른바 ‘노자화호설’과 관련된 논쟁의 발단이 된 것이다.

5. 에피고넨의 시대(1) - 세속과 탈속의 경계선에서

- ‘장자’라고 하는 호수이고, 다른 하나는 ‘황노도가’라는 호수이다. 이 둘은 도가가 만든 흐름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했던 사상들로, 후대 역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 동아시아의 문화에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삶보다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삶을 더 높이 평가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이 전통 속에는 두 개의 정신이 흐르고 있으니 하나는 정도가 아니면 참여하지 않는다는 유가의 명분의식이요, 다른 하나는 일체의 세속적 가치를 백안시하는 장자의 탈속의 정신이다. 장자는 나비가 된 꿈을 꾸면서 자신이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자신이 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탈속의 철인 장자가 내뱉은 이 말이야말로 ‘물아일체’의 경지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이런 정신에서 자연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는 데 탁월한 성취를 보였던 동아시아의 예술혼이 싹텄다.

- 황노도가는 바로 노자가 꿈꾸었던 자연의 운행원리에 기반을 둔 정치라는 이상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 황노도가라는 호수는 ‘자연처럼 연출된 문명’이라는 풍광을 그려 낸다. 즉 ‘있는 그대로를 연출하라’는 다분히 인위적인 명제로 바뀌는 것이다. - ‘황노’란 명칭은 ‘황제’와 ‘노자’라는 인명의 첫 글자를 합쳐서 만든 조어이다. ‘치우’라는 또 다른 제왕과 판천들판에서 싸워 승리 함으로써 중화문명, 즉 중국 역사의 기원을 열었다고 한다.

- 제나라는 주나라의 건국 과정에서 일정한 공헌을 한 강태공, 그의 후손에게 분봉된 나라였다. 기원전 392년 전화라는 인물이 정권을 찬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씨의 제나라도 이 점은 예외가 아니어서 자신들의 가계에 대한 신성화 작업을 시작, 전설시대의 황제에까지 연결된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 황제와 노자가 결합된 ‘황노학’이라는 학문적 흐름이 탄생하게 되었다. ‘황노도가’라는 도가의 한 분파가 형성되었다. 황노도가는 전국시대 말부터 사상계의 대세를 장악하면서 한대로 이어져 갔다. 『노자』가 한나라 초기의 황노학적인 분위기 속에서 최초로 ‘경’의 칭호를 획득하면서 「도덕경」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는 후세에 ‘문경지치’, 즉 아버지인 문제와 아들 경제의 훌륭한 치세의 시대라고 칭송되는 정치적 황금기였는데, 한의 통치계급은 이 시기 국가권력의 적극적인 행사를 가급적 억제하여 노자의 무위정치를 구현해 보고자 했다.

- 무제는 동아시아의 문명사를 바꿔 놓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선택을 한다. 그는 동중서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학을 한제국의 공식적인 국가 이데올로기로 채택했다. 도가 계열의 사상은 제도권에서 밀려나게 된다. 당시 주류에서 밀려난 몇몇 사조와 결합하면서 이후 동아시아인들의 일상적인 삶에 유학만큼이나 중요한 영향을 미친 하나의 종교적 운동과 깊숙한 관련을 맺는다. 그것은 도교였다.

6. 에피고넨의 시대(2) - 소설 삼국지가 숨겨 놓은 진실

- 두 개의 주목할 만한 도교 교단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병을 고쳐 주는 대가로 쌀 다섯 되를 받았다는 데에서 그 명칭이 유래한 ‘오두미교’라는 조직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앞에서 말한 황건의 봉기를 일으킨 ‘태평도’라는 조직이다. - 도교 역시 전국시대에 발원하기 시작한 적어도 네 가지 이상의 사상적 흐름이 하나로 합쳐진 결과이다. 첫 번째는 자연에서 타고난 인간의 생명을 온전히 지켜 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양생술’과 두 번째는 세계를 음양이나 오행과 같은 기의 운동으로 설명하는 ‘음양오행설’ 그리고 세 번째로는 불로장생을 꿈꾸는 ‘신선기’의 전통이다. 마지막으로는 황노도가를 중심으로 하는 황노학이다.

- 한의 무제가 국가 이데올로기로 유학을 선택하였다. 황노학은 그 안에 품고 있던 지식들 중의 하나를 새롭게 발전시키면서 변화된 상황에 능동적으로 적응해 갔다. 『황제내경』은 한의학의 고전 중에서도 고전으로 꼽히는 책이다. 황제는 ‘통치술의 묘미를 체득한 성인’에게 점차로 ‘양생술의 달인’으로 간주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신으로 격상되기에 이른다. - 노자는 인간 노자에서 ‘노군’이라는 신으로, ‘노군’에서 ‘태상노군’으로, ‘태상노군’에서 ‘천존’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원시천존’으로 불리면서 서서히 도교의 최고신 가운데 하나로 신분이 높아져 간다. 결국 노자는 도교에서 최고의 신이 되었다.

- 도교의 역사에서 노자에 대한 신격화 작업의 백미는 역시 중국 당나라 때 내려진 일련의 조치들이다. 노자의 성씨가 이씨라는, 다분히 믿어지지 않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 도교의 교주인 노자가 자신들과 성이 같다는 사실이 굉장히 매혹적이었다. 그들은 주저없이 노자와 자신들의 가계를 연결시키는 작업에 들어가서, 우선 자신들의 건국을 노자가 꿈에서 예언했다는 이른바 ‘꿈의 계시’를 조작해 냈고, 뒤이어 노자에 대한 신성화 작업에 들어갔다. - 천보 13년(754)에 이르러서는 노자에게 ‘태성조고상대도금궐현원천황대제’라는 어마어마한 칭호가 부여된다. ‘세상을 다스리는 지극한 대도를 관장하시면서 금으로 된 하늘의 궁궐에 사시는 모든 것의 근원이신 우리 황제의 위대한 조상 옥황대제님!’

- 도교는 불사의 신앙을 중심으로 신비스럽고 주술적인 여러 사상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것이므로 도가와는 하나의 사상적인 흐름으로 묶을 수 없으며 어떤 면에서 이 도가와 도교는 서로 상반되기까지 하다. 노자는 ‘도’로 표현되는 자연의 질서에 순응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도교가 추구하는 불사의 신앙은 이런 자연스런 삶의 질서에 대한 명백한 거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자와 도교가 밀접하게 연결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우선 도교가 노자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도교는 무엇보다 자신의 교리를 체계화시켜 줄 고등이론을 필요로 했다. 반면에 노자의 입장에서도 도교와 같은 종교적 결사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인간사회의 ‘불균평’함을 자연의 ‘균평’함으로 되돌리고자 할 때, 노자의 꿈을 실제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이 되기 때문이다.

- 민중봉기 속에서 ‘균평’이나 ‘태평’이라는 구호가 쉽사리 발견된다는 사실은 봉기들을 실질적으로 움직였던 힘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지배계층의 중심에 서서 기존 질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던 유가에 반발하는 노자적 전통이 담겨 있는 것이다.

7. 질서를 세우는 자, 삶을 즐기는 이 - 위진의 현학은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그 이후 동아시아의 문명사의 흐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첫째, 중국 문명과 불교의 만남을 가능케 하였다는 사실, 둘째, 성리학에 부정할 수 없는 그림자를 짙게 남겼다는 점. 셋째, 장자에서 싹트기 시작한 예술정신의 혼을 충분히 발아시킨 것.

- ‘검다’는 말은 말 그대로 ‘색깔이 검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깊게 파인 우물 속처럼 너무 깊어서 분간이 안간다는 뜻이다. 위진 현학은 바로 이 ‘현’이라는 글자의 의미가 보여 주는 그대로 ‘심오함’, 즉 기본적으로 강한 형이상학적 성향을 띤 사상이었다.

- 경학에서 볼 때 자연과 인간 세계는 ‘하늘’의 뜻을 중심으로 도덕적으로 얽혀 있는 세계로서 ‘하늘의 뜻’이라는 도덕적인 목적이 있고, 이러한 도덕적인 듯을 실현하는 인간세상의 장치가 바로 한나라의 정치ㆍ사회 체제였다. 이런 배경에서 한대에는 인간세상의 무질서, 특히 정치적으로 혼란이 오면 의지를 갖춘 존재인 ‘하늘’이 천재지변과 같은 경고를 통하여 자신의 의지대로 인간사회를 감독해 간다는, 이른바 ‘천인감응론’이 극성을 부리기도 하였다. - 위진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공동체를 지탱하던 이데올로기가 허물어져 내리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이를 해결할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해야 했다. ‘경학’이라는 방식을 통해 자연에 덕지덕지 입혀 놓은 도덕 등의 인간적인 껍데기들을 벗겨 내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현학가들에게 힌트를 준 것이 노자의 사상이다.

- 왕필은 가장 주목을 받았던 사람이다. 그는 스물네 해라는 짧은 시간을 살았지만 『노자』와 『주역』에 대한 독보적인 주석서를 남긴 천재였다. 왕필은 중국철학사에서 통상 ‘유ㆍ무의 논쟁’으로 불리는 위진시대에 벌어진 일련의 논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주장을 펼쳐 보인다. 그는 ‘무’를 ‘유’와 상대되는 차원에서 한 단계 끌어올려 ‘도’와 똑같이 놓고 보려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그러나 ‘무’에 대한 위진 현학의 새로운 접근은 결과적으로 당시의 현실보다 동아시아의 문명사 전체에 더 큰 족적을 남기게 된다. 그것은 불교가 중국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 현학이 본격적인 철학 개념으로 승화시킨 ‘무’라는 개념은 불교의 핵심 개념인 ‘공’을 동아시아인들에게 이해시키는 데 결정적인 다리 역할을 하였다.

- 성리학은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학문이다. 그것은 타락한 자기 시대의 현실을 개탄하면서 그것이 인륜의 질서를 도외시하는 불교라는 외래사조가 자신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 진단했던 중화주의자들이 태동시킨 학문이다. 성리학 역시 그 출발에서부터 불교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역설적으로 성리학의 곳곳에는 부정할 수 없는 불교의 숨결이 깊숙이 베어있다. 성리학의 수양론에 배어 있는 선불교적인 요소는 결코 부정할 수 없다.

- 성리학의 기본 논리인 ‘이기론’에도 바로 현학적 요소가 담겨 있다. 성리학은 ‘유’를 생성시키는 근원적인 원리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런 속성도 개념도 없는 현학의 ‘무’에다가 모종의 윤리적 개념을 부여하여 새로운 ‘리’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세상은 ‘리’라는 도덕적 원리가 지배한다는 유학 특유의 세계관을 새롭게 부흥시킬 수 있었다. 노자는 두 개의 필터, 즉 중국불교와 위진 현학이라는 두개의 필터를 통하여 성리학에 깊숙이 스며들어가 있는 셈이다. - 현학에서 활발히 연구된 『노자』와『주역』,『장자』를 일러 ‘삼현서’ - 규범적인 내용을 걸러내고 순수한 사유의 틀만을 놓고 말한다면 『주역』은 유가적보다는 오히려 도가적이라 보는 것이 더 타당

8. 주류의 질서와 문명이 가지 않은 길 - 서양에서 『성경』다음으로 가장 많이 영역된 책이 바로 『도덕경』이라는 주장도 그냥 들어 넘길 말은 아닌 것이다. - 최치원이 쓴 「난랑비서문」이라는 글에서 주나라 황실 도서관의 책임자라는 노자의 직함이 분명히 거론되는 것으로 보아 노자의 사상은 상당히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걸로 추정된다. - 조선이 유학의 나라로 도가를 이단시하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 긴 시간 동안 『도덕경』에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다.

❍『도덕경』에 대해 더 알거나 깊게 배우려 하신다면

- 김용옥의 『길과 얻음의 성경』(통나무), 김학주의 『신역노자』(명문당), 오강남의 『도덕경』(현암사), 장일순의 『노자이야기』(다산글방), 윤재근의 『노자 : 왜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가』(둥지) - 개론서 김충열 『노장철학 강의』(예문서원), 이강수 『노자와 장자』(길), 막스 칼텐마르크, 장원철 옮김『노자와 도교』(까치): 허항생, 노승현 옮김 『노자철학과 도교』(예문서원): 홀름 웰치, 윤찬원 옮김『노자와 도교』(서광사)

❍ 군자의 나라 2부 사서오경 - 일상을 지배한 인간의 윤리

1. 지금 유학은 왜 매력없는 학문인가? - 고종 31년(1894) 과거제도를 공식적으로 폐지한 것이다. 고려 광종 9년(958) 이래 936년간 지속되어 온 과거제도가 종말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 과거제도의 폐지는 조선 반도에서도, 한자문화권의 유학적 전통을 견지할 수 있게 해주던 마지막 버팀목이 사라져 버렸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2. 공허한 경전에서 먼지를 닦는 이유 - 오늘날의 우리는 정신적인 면에서, 고전을 만들어 낸 우리 조상보다는 백인에 가깝다. 우리의 경우 과거의 전통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계승 속에 20세기가 전개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3. 문명과 경전 사이의 수수께끼

- 하나의 문헌이 경전이 된다는 것은 역으로 경전에서 말하는 세계관이 그들 사회의 상식을 지배하는 보편적인 가치관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 동아시아의 사회에서는 경이란 글자가 하나의 문헌과 동일시되거나 독점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 실제로 유가가 아닌 어떤 종파나 학파도 자신들이 보편적인 진리로 받들어 모시는 경에 대해서는 아무 제한 없이 ‘경’자를 붙일 수 있었다. -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진리체계, 즉 경전을 갖고 있었던 각 문명권은 이를 사수하고 전파하기 위해 때로는 무자비한 종교 전쟁을 일으키는가 하면 입장을 달리하는 쪽에 엄청난 탄압을 가하기도 하였다. - 동아시아의 양상은 다양한 경전들이 나란히 존재해왔고 여타의 문명권과는 달리 경전의 수호를 위해 심각한 살육 사태나 전쟁을 일으키는 경우도 별로 없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여러 종교가 들어와 있지만 상대적으로 종교 간의 갈등은 덜 심각하다. 많은 사람들은 그 이유를 독특한 동아시아적 전통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 동아시아에서는 하나의 종교가 국가와 사회의 모든 것을 온전히 지배한 일이 없었다. 대신 정치와 종교 사이에는 늘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 - 종교는 국가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힐 경우에만 가차없는 탄압을 받았을 뿐, 교리적인 이유로 정치적 탄압을 받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천주교가 조선 사회의 봉건적 질서와 규범을 위협한다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유가 강했다.

4. 공자, 가장 특별한 보통 사람

- 대개의 종교는 깨달음을 얻은 창시자나 신의 계시를 받았던 위대한 예언자로부터 시작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 대부분은 우주의 창조 과정을 설명하는 전통적인 신화에서 출발한다. - 기독교는 유대민족 사이에 내려오던 신화에 예언자가 전하는 계시가 결합하며 탄생한 대표적인 종교이다. 기독교의 구약성경은 천지창조의 신화에서 시작하고 신약성경은 예수 탄생의 신화에서 시작한다.

- 유학 속에 천이나 천명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것은 인간을 넘어선 세계에 대해 유학자들이 가졌던 관심의 일단을 보여 준다. 이를 심화시킨다거나 체계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 죽음에 대해서도 “삶을 모르거늘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고 말하는 데 그칠 뿐 죽음 너머의 세계로 순례를 떠나지는 않았다.

- 주자는 이에 대해 “공자는 괴이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것을 말하고,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덕을 말했으며, 어지러움이 아니라 다스림을 말하고, 신이 아니라 인간을 말했다.” - 주공이 건설한 문화는 주공의 아들이 봉해졌던, 공자의 고국 노나라에 잘 보존되어 있었다. - 주문의 구체적인 내용은 당시 이미 문자로 쓰여져 전해지고 있던 『시』와『서』그리고 아직 문자화되지 못하고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예와 악이었다.

- ‘시’는 언어를 분절하여 운을 맞추는 데서 성립한다. ‘서’라는 역사 기록은 역사적 사건을 분절하여 본받을 만한 좋은 일과 본받지 말아야 할 나쁜 일을 구별하는 데서 성립한다. 그리고 ‘예’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분절하여 서로 적절한 거리를 취하도록 하는 데서 성립하고, ‘악’은 자연적으로 울려나오는 소리를 분절하여 듣기에 좋은 음악을 만드는 데서 성립한다. 그런데 이러한 분절은 모두 공통되게 서로 대립하는 두 요소로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오경 가운데 『역』과 같은 경전은 인간과 자연의 모든 “변화하는 현상”을 우선 음과 양으로 분절해 놓고 설명한다.

- 공자는 “시를 통해 감동하고, 예를 통해 바로 서며, 악을 통해 완성된다.” - 사마천은 『사기』에서 “공자는 시서예악을 가르쳤는데 제자가 삼천 명이었다.” - 공자가 보여 준 이런 미묘한 흔들림은 사실 공자만의 특별한 무엇이 아니다. - 맹자는 공자를 두고 “시중의 성인”이라 칭송하였다. ‘시중의 성인’이란 늘 변화하는 상황에 딱 들어맞게 행동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 공자는 제나라에 전해져 오던 순임금의 소악을 듣고는 석 달 동안이나 음식맛을 모를 정도로 그것에 심취해 있었다고 한다.

5. 중국 인문주의의 원형을 만들다

- 공자 당시부터 유가의 중요 임무 가운데 하나는 한없이 복잡한 의례의 절차를 교육하고 주관하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유학은 전국시대의 다양한 제자백가 사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종교적 색채가 강한 사상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 하지만 유학의 의례는 일상적 삶의 세계를 넘어선 세계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 점은 죽은 자를 기념하는 의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 상례에서 중요한 것은 죽음 자체의 의미가 아니라 죽음을 꾸미는 장례식의 구체적인 절차이며 제례에서도 중요한 것은 죽은 자와 사후의 세계에 대한 기념이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해 산 자들이 행하는 제례의 구체적인 절차이다. - 여러 의례를 행하는 것도 결국은 삶의 세계,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이다. 유학의 상례나 제례에서는 죽음이라는 사건까지도 산 자들이 모여서 질서를 이루고 사는 세계와의 관련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 이렇게 죽음에 집착하지 않은 유학에는 종교뿐만 아니라 ‘철학’도 부재한다. 종교나 철학은 죽음 너머의 절대적인 존재를 찾거나 절대존재로 나아가기 위한 초월의 길을 발견하고자 애쓰게 된다. 그래서 철학에는 늘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중심에 있다. - 중국의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천단원구 : 공자는 천자가 하늘에 드리는 제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모르겠다. 그 의미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을 보듯이 쉽게 세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바닥을 가리켰다고 한다.

- 예는 기독교『신약성서』에서 비난하는 구약시대의 율법과 그 본질이 비슷하다. -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대성전 앞에서 공자에 대한 제례를 행하는 모습 : 유가는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났을 때 ‘죽은 자가 신의 곁으로 돌아간다거나 환생한다’는 믿음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다만 망자와 그의 가족에게 어떻게 예를 갖출 것인가에 유의. 공자는 상사가 있는 사람 곁에서 식사를 하면 배불리 먹지 않았고 곡을 한 날에는 하루 종일 노래를 하지 않았다. -『논어』를 읽고 하나의 진리를 깨달았다면 잘못 읽은 것이다.『논어』만 보아도 이처럼 그 내용이 잡다한데 사서오경, 더 나아가 십삼경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그런 이념을 찾아낸다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

- 송나라와 명나라 시대에 도교와 불교를 비판하면서 유학이 새롭게 부활했다. 송명이학은 대개 주자학과 양명학으로 나뉘는데, 이기심성을 다지기 때문에 얼핏 보면 그 이전 어떤 시대의 유학보다도 철학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편이다. - 동아시아인들은, 인간은 자연에 싸여 무리를 이루고 살면서 결국 인간의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 혹은 자연의 힘으로 풀 수 있다고 보았고, 자연과 인간 사이에 건널 수 있는 벽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람들끼리 부대기며 살다가 지친 이들은 경서라는 책으로 돌아가 성인에게서 삶의 가르침을 받거나 인간이 없는 자연으로 물러나 잠시 쉴 뿐이지 전혀 다른 세계, 신의 왕국으로 떠나 버리는 것은 동아시아인들의 궁극적인 관심사가 아니었다. 우리는 이를 일러 ‘중국적 인문주의’라고 부른다.

6. 지식인의 숲에서 문명의 평원으로 나아가다 - 기존 권력의 후광을 등에 업지 못했던 유학의 언저리에는 무제의 통일정책에 걸림돌이 될 세력가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진시황에 의해 분서갱유를 당한 지 백년도 안되어 이제 제자백가는 모두 추방되고, 오직 유학만 관학화됨으로써 유학의 오경은 국가가 인정하는 유일의 공식적 경전이 된다. 그리고 다른 책을 연구하는 박사들은 모두 추방되고, 오직 오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오경박사만이 박사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 - 유학을 굳이 종교라고 한다면, 아마도 ‘책의 종교’라고 해야 할 것이다. 유학에서는 예부터 내려오는 문화적 전통을 문자로 기록해 놓은 책 이상으로 신성시하는 것이 없다. 유학은 책을 우상숭배한다. 오경이라는 책의 신성함이 유학의 궁극적 보루였던 것이다.

7. 수천년을 살아남은 유학의 비밀

- 유학자들의 간섭과 비판 앞에 군주의 권력이 자주 노출되면, 군주의 권력은 약화되기 마련이다. 군주의 권력이 약화되고 또 약화되다 보면, 종국에는 군주는 사라지고 오직 유학자들만 남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유학의 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권력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그리하여 국가의 이익도 백성의 이익도 실현하지 못하고 오로지 유학자층의 이익만 실현될 우려가 있다. - 이 같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대표적인 본보기가 바로 유학의 영향력이 동아시아의 어느 나라보다 강했던 우리의 조선조였다.

- 정치적 이념으로는 별로 효용이 없는 유학이 왜 그토록 오랜 기간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첫 번째 이유는 유학이 추구하는 가치가 인간이면 누구나 그 속에 살 수밖에 없는 일상의 삶에 뿌리박고 있다는 것이다. 유학이 강조하는 인륜 질서는 군주로부터 보통 사람에 이르기까지 인간이면 누구라도 벗어나거나 거부하기 힘들다. 두 번째 이유는 유학의 보편적 가치를 부정하고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대담하고 강력한 군주가 출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8. 역사적 난제, 성악설과 성선설

- 『논어』에서 공자는 “효제가 인을 행하는 근본”이라고 하면서 늘 효제의 실천을 중심으로 삼지만, 때로는 효제를 넘어 법가 쪽으로 기울기도 하고, 때로는 효제를 넘어 도가 쪽으로 기울기도 한다.

- 성악설과 성선설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론으로서는 둘 다 참으로 한심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 두 이론을 모두 당시 사회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의 문제와 관련되어있다. - 성악설을 주장하게 되면, 인간세계 쪽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서 인간을 예법에 의해 교육하고 인간세계를 군주의 엄격한 통치 아래 두는 것이 좋다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 반면 성선설을 주장하게 되면, 선을 취하기 위해 예법에 의지하기보다는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맡겨 선이 자연스레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 당연히 군주의 엄격한 통치보다는 인간세계를 있는 그대로 두자는 입장이 강조된다. 성선설이 극단화되면 필연적으로 자유방임을 가져온다.

- 가부장적 가족질서를 절대시하는 효제의 윤리는 가족질서를 넘어서 가려는 유학자의 행보를 가로막아 그를 다시금 가족 질서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래서 효제의 윤리는 유학자가 인간세계의 변혁을 노리고 법가 쪽으로 나아가더라도 법가가 될 수는 없게 만들고, 그가 무위자연의 세계로 달아나려고 도가 쪽으로 나아가더라도 도가가 될 수는 없게 만든다.

- 송대에 들어와서는 특별히 사서가 중시된다. 『논어』는 공자의 손을 거친 적이 없는 책이고, 『맹자』는『순자』나『묵자』와 마찬가지로 제자의 서에 불과한 책이다. 그리고 『대학』과 『중용』은 『예기』에 들어 있는 조그마한 두 편의 글에 지나지 않는다. - 송대 유학자들은, 사서가 훈고 없이는 해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난해한 오경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간단명료하게 압축해 준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훨씬 중시했다. 이들은 사서만 읽으면 옛 성현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그런데 그 메시지란 천지자연과 인간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좋은 것이라는 자연도덕주의적 질서였다. 이로 인해 성선설을 말하는 『맹자』를 특히 중시하게 되었고 『맹자』가 경서의 하나로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 주자학에서 사서는 오경보다 먼저 읽어야 하는 책일 뿐만 아니라 오경보다 더 중요한 경서로 간주. 송대 이전까지는 오경이 경학의 중심이었지만, 송대에 와서는 주자를 계기로 사서가 경학의 중심이 된 것. - 그런데 『맹자』는 주자학보다 양명학에서 더욱 중시 여겼던 문헌. 양명학은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본성은 하나로서 모두 ‘지극한 선’의 경지에서 합한다는 입장으로, 주자학 보다 자연도덕주의적 믿음에 더 충실하였기 때문.

9. 동아시아인의 중력장, 유학 - 사서오경에 의해 도야된 유학자들의 눈으로 본다면, 세속을 벗어나 높고 고상한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구도자들이나 거꾸로 세속 안으로 돌아와 세속의 질서를 전복하고자 하는 혁명가들이나 모두 다 패륜이고 이단일 뿐이다.

10. 경전이 부재하는 시대의 사서오경 - 유학이 승리하게 된 것은 유학이 비범한 진리를 말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평범한 진리, 진리하고 할 것도 없는 그런 진리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 사서오경에 대해 더 알거나 깊게 배우려 하신다면

- 원전 :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동양고전국역총서』 - 연구서 : 『맹자와 순자의 철학사상』(김형효, 삼지원, 1990), 『주희에서 정약용으로』(한형조, 세계사, 1996),『퇴계의 사상과 그 현대적 의미』(김형효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김용옥 교수의 사서오경 관련 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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