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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0 09:00

예언자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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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상훈,코란-김정위/명진‘06.3.9.2156시 사무실에서



몇 년전에 예언자의 나라, 구도자의 나라, 군자의 나라라는 3개의 책 제목을 보고 언제가 읽으려고 생각하고 있다가 2년 뒤 시간여유가 생겨 책을 찾으니 절판되어 우여곡절 끝에 구하게 되었다.



❑ 예언자의 나라

❍ 성경

1. 성경의 원본은 전해지지 않는다.

- 오늘날 ‘구약성경’의 근거가 되는 마소라 텍스트 역시 기원후 10세기경에나 편찬된 것이다.

- 학자들이 이들 필사본 중에서 원전에 보다 가까운 형태를 판단하는 큰 원칙은 ‘더 어려운 본문 형태가 더 원전 형태에 가깝다’는 것과 또 ‘더 짧은 본문 형태가 더 원전에 가깝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후대로 내려오면서 본문을 보다 더 부드럽게 고치거나 이해를 돕기 위해 새로운 내용을 첨가하는 노력들이 보태지기 때문이다.

2. 율법으로 맺은 구원의 약속

- 야훼의 의미는 ‘나는 내가 원하는 자로 존재하는 자’, ‘나는 스스로 있는 자’, ‘나는 만물이 있게 하는 자’로 번역

- 앗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잇단 지배 아래 600년을 보내게 된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왕, 사제장, 예언자와 관련된 의미로 쓰이던 메시아가 하느님에 의해 보내진 사람 혹은 ‘하느님의 임무를 받고 이 세상에 보내진 사람’이란 의미로 바뀌게 되는 것도 이때의 일이다. 그리고 메시아 상도 역시 신과 인간의 중재자임과 동시에 인간의 죄를 용서하고 심판하는 초월적 권능을 지닌 자로 점점 변모해간다.

- 고통과 압박으로 얼룩진 시간, 악한 자가 지배하는 지금의 시간이 끝나고 전혀 새로운 미래의 시간, 하느님의 왕국이 열린다는 종말론적 메시아니즘이 형성되어 가는 것이다. 메시아는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주권과 자유의 회복이라는 민족적 지상과제를 안고 있었던 유대인에게 그들의 어려운 현실을 심판으로 종식하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존재이어야 했다. 신약의 시대에 가까워지면서 이러한 메시아에 대한 관점은 이스라엘의 회복뿐 아니라 개인의 운명에도 개입하는 심판자요, 신적인 위치로 확대되어 간다.

3. 예루살렘 성전에 숨어 있는 역사

- 유대인들이 나라를 뺏기고 방황할 때 그들의 가슴 속에는 늘 성전에 대한 그리움이 ... 그들은 예루살렘 대성전을 건립했던 다윗과 솔로몬의 영광을 되찾아 줄 유대민족의 구원자,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 중에서 출현하리라는 강한 기대와 열망..... 예수가 ‘다윗의 후손으로 유대의 왕이자 메시아’라 불려진 것 역시 여기에서 비롯.

- 유대교에는 성전의 대제사장을 수장으로 하는 산헤드린(사두개인, 바리새인, 율법학자 등이 참가했던 유대교 최고 원로회의로 예수를 재판하기도 했다)이란 제도가 있었다.

- 사두개인은 유대인의 삶의 중심인 신성한 성전의 수호자이며 성전 의식을 집전하는 자들로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계층이었다. 세금과 공물을 받으며 오랫동안 최고의 지위를 누렸으며 상대적으로 부유했다. 모세5경을 문자 그대로 신봉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반대로 대외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개방적이었다. 이들은 인간의 자율성과 합리성을 매우 강조하여 사후 세계, 특히 부활을 부정하는 등 바리새인들의 초자연적 세계에 대한 신앙을 거부하였다. 메시아니즘의 종말론적 사상이나 내세에 완전한 육체와 의식을 갖고 다시 부활한다는 등의 생각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보다 큰 관심사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아니라 가시적인 성전의 유지였고, 이를 위해 로마 제국의 존재를 인정하며 이들과 타협하였다.

- 바리새인들은 모세 이래 전해진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자 했던 율법의 수호자들, 이들은 세상이 언젠가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외우기도 힘든 수많은 율법들을 준수하면서 기도생활을 하였다. 율법을 준수하고 야훼의 뜻에 따라 살다 보면 최후의 심판이 닥쳤을 때 부활이라는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신과 인간의 관계는 야훼 하느님과 유대민족과의 관계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바리새파는 ‘신은 인간 개개인과 관계한다’며 개인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이로 인해 바리새인은 기독교에 중요한 영향을 주게 되었다. 내세에 대한 강렬한 믿음, 하느님의 섭리론과 계시론 등을 통해 기독교의 사상을 형성하는 데 공헌하였다.

- 우리에게 『탈무드』와 같은 책을 통해 비교적 잘 알려진 랍비의 전통도 이들 바리새파 중에서 나온 것이다. 이들의 건물에 가 보면 엘리베이터가 평일용과 안식일용 두 대가 있다고 하는데, 평일에는 쓰지 않는 안식일 전용 엘리베이터는 보턴이 없는 대신 모든 층마다 자동으로 서게 되어 있다.

- 젤롯당이라고 하는 그룹은 유대민족의 독립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로마와 투쟁하는 혁명당이었다. 이들에게 메시아란 유대민족의 해방자였던 것이다.

- 에세네파는 첨예한 사회문제로부터 물러나 율법을 지키며 금욕적으로 살아가는 무리들이었다. 유대의 쿰란 광야에서 수도원과 같은 공동체 생활을 하였다. 이들에게는 사유재산 제도가 없었으며 모든 재산은 공동소유로 하였고 결혼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초기 기독교가 이방인도 신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개방적인 입장을 지닌 것에 비해 에세네파는 자신들의 규칙을 지키는 자만이 신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4. 새로운 약속으로 세상에 오다

5. 팔레스타인 광야에서 유럽의 평원으로

- 예수의 제자들은 체포당하여 모욕적인 언사를 듣거나 심하면 매질을 당하는 등의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다행히 그들은 풀려날 수 있었는데 이는 산헤드린의 재판 과정에서 어느 율법사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그 율법사는 “이 사람들(예수의 제자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사람의 생각에서 나왔다면 이들은 곧 언젠가 지쳐 흩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신의 의지 때문이라면 그 누구도 그들의 의지나 행동을 가로막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 당시 소아시아 주변의 이방인들은 그리스 신비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다. 이 종교는 ‘썩어 없어질’ 자아에 신성을 부여하면서 신과의 합일을 추구했다.

- 바울은 유대 역사를 공유하지 못한 이방인들에게는 메시아니즘이 별로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가 행한 대로 행하고 산 대로 살면서 예수와 하나 되고, 예수가 부활함으로써 인간은 함께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다는 점 외에도, 인간이란 그리스도의 권능에 의해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는 신앙을 강조하게 되었다. 바울은 형식적 율법을 중시하는 유대교에 대항해 ‘새로운 율법’을 제시하고 나섰다. 바울은 자신의 율법이 자유를 말살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한 일을 하도록 하는 규정이라고 주장

- “유대인이나 헬라인(그리스인)이나 차별 없이 믿음으로 의를 얻는다.”는 바울의 선언은 유대인 전체의 자존심을 거스르는 폭발적인 언명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혁명적인 의미도 담고 있었다. 바울은 그의 저서 『갈라디아서』를 통해 유대 율법을 강조하는 교회 교사와 달리 기독교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주장을 한다.

- 고린도 지방은 도덕적으로 매우 문란하고 계층 간의 위화감이 컸던 지역이었다. 바울이 자신의 서신에서 강조했던 하늘이 부여한 모든 인간의 평등한 시민권에 대한 이야기는 단지 기독교 교리 내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 누가는 복음이 원래 가난한 자들을 위해 선포된 것이므로 이들이야말로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자들이라 하면서 동시에 부의 축적이 갖는 위험을 가차없이 경고하였다.

- 마태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전향하여 유대교와 대립한 사람이지만 한편에서 항상 유대교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모세5경을 비롯하여 구약에 나타난 하느님의 약속이 ‘예수의 오심’으로 성취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구약을 많이 언급하고 있다. 그는 기독교가 유대교와 연속성을 갖고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 마가는 예수의 말씀을 직접 듣지도 못했고 제자도 아니었다. 그러나 베드로와 가까이 지내면서 그로부터 예수의 행적과 교훈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따라서 마가복음에는 베드로와 관련된 사건들이 많이 등장한다.

6. 이데아의 세계와 하느님의 세계

- 구약성경과 그리스 철학의 정수를 접목시키려 했던 사람들 중에서 대표적인 학자는 알렉산드리아에 살고 있었던 필로였다. 그는 구약의 초월적인 야훼 하느님을 플라톤이 주장한 이데아론과 연관지었다.

- 초기 기독교인 중 ‘회의주의자’라는 흥미있는 무리가 로마세계에 기독교가 확산되는 것을 도왔다.

- 이들에게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제논, 에피쿠로스 같은 이방인 출신의 위대한 스승들은 기독교가 전파되기 이전에 이미 하느님으로부터 ‘계시의 영감’을 받은 사람들로 받아들여졌다. 계시의 영감은 인간이 이성을 초월하여 하느님과 만나는 통로이다.

- 기독교인들은 특히 플라톤의 영혼불멸설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스적 영향 아래 있던 지역의 기독교인들은 ‘몸의 부활’을 믿지 못했다. 바울은 그리스의 고린도 지방 기독교인들에게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는데, 그들은 육체의 부활까지 의미하는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는 대신 ‘영혼불멸’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플라톤의 육체에 대한 생각은 2세기 초에 등장한 기독교적 영지주의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영지주의는 세상을 부정하고 육신을 영혼의 감옥으로 생각하였으며 심지어는 지상에서 몸으로 존재한 예수의 존재, 그리고 그의 탄생과 설교, 고난과 부활 일체를 부인하기까지 했다.

- 순교자 저스틴과 그의 수제자인 타티안은 기독교 신앙을 이방 문화의 철학과 비교하며 기독교를 변호하려 했던 사람이었다. 타티안은 그의 저서 『헬라인들에게 고함』이라는 저술을 통해 기독교를 야만적이라고 공격하는 사람들에 맞서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변호하였다. 그에 따르면 그리스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가치들은 소위 ‘야만인’들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그리스인들은 바빌로니아인으로부터 점성술을, 이집트인으로부터 기하학을, 그리고 페니키아인들로부터 글자를 배웠다. 철학과 종교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리스 문화와 기독교 사이에 공통점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리스인들이 소위 기독교 ‘야만인’들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 저스틴은 당시 철학자들과 기독교의 부분적인 일치를 로고스에서 찾았다. 그는 철학자들이 말하는 ‘세상 만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로고스’를 성경에 나오는 ‘말씀’이라고 보았다. 저스틴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및 기타 고대의 현자들도 일종의 ‘기독교인’이라 했다. 다만 로고스는 옛 철인들에게는 부분적으로만 알려졌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전히 드러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소위 카톨릭이라는 명칭이 시작된다. ‘보편적임’을 뜻하는 이 명칭은 2세기 중반 이후부터 기독교의 단일 체제를 의미하는 말로 쓰이게 된다. 즉 카톨릭은 외부의 반대 세력으로부터 기독교인들을 보호하고 이단과 구별하며 내부 분열을 방지하는 통일된 조직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이다.

- 예수란 대체 어떤 존재인가의 문제는 핵심적인 고민거리로 기독교 역사에서도 쉽게 풀기 힘든 수수께끼였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신의 존재로서 야훼를 생각했고 필로는 이와 같은 존재가 로고스라고 봤다.

- 소위 이 과정에서 기독교의 정통 교리로 등장한 것이 삼위일체론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갖춘 존재라는 심오하고도 정교한 교리들이었다.

7. 기원후 313년의 어느 날

- 모든 병사들에게 한 주일이 시작되는 일요일에 ‘최고의 신’을 숭배하라고 명하기도 했다. 이리하여 일요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한 것을 기념하는 날인 동시에 로마의 ‘태양신’을 숭배하는 날로 주일 예배를 드리는 기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순교자를 기념하는 것은 2세기부터 있었는데 지상으로 나온 기독교인들은 순교자가 묻혔다는 곳을 찾아 교회를 세우는가 하면 순교자의 유골을 교회 제단 밑에 안치하기도 하였다.

- 기독교의 초기 역사부터 기독교도들의 일관된 관심사였던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특히 어려웠던 시절, 초기 기독교인들에게는 이 ‘하느님 나라의 도래’란 해방과 구원의 약속이었다. 그런데 이제 많은 사람들은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과 함께 하느님 나라가 이미 지상에 도래하였다고 믿게 되었다. - 초대 교회가 그렇게 기다렸던 ‘구름을 타고 예수께서 재림하여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한다’는 날을 이들은 오히려 연기하고자 애썼다. 그래서 마침내는 종말론적 열망을 전파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단자나 반란자라고 배척되는 경향까지 생겨났다.

8. 천국의 열쇠로 열린 교황의 시대

9. 하느님의 해방, 인간의 해방

- 루터파와 관련된 개신교도와 카톨릭의 오랜 종교전쟁은 결국 ‘특정 지역의 통치자가 믿는 종교를 그 지역의 종교로 인정한다’는 신구교 간의 평화협정을 통해 막을 내리게 된다.

-1962년 카톨릭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아주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민족은 자연과 인간의 역사 속에서 어떤 신비로움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여 왔으며 어떤 민족은 때로 지고의 존재를 인식하기도 하였다. 이를 인정하고 승인함에 의해 많은 민족들은 그들의 삶이 심원적 종교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발전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종교들은 똑같은 문제에 대하여 더 세련된 개념과 더 발전된 언어를 가지고 해결하고자 하였다. 힌두교는 심오한 명상 등을 통해 고뇌로부터 인간의 자유를 추구하고 불교는 변화무쌍한 세계에서 완전한 자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길과 최고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카톨릭 교회는 이러한 종교들이 지니고 있는 진리와 성스러움을 결코 거부하지 않고 마음으로 존경한다. 비록 카톨릭 교회와 많은 점에서 상이한 점도 있지만 이들은 인류를 밝혀 주는 진리의 한 줄기 빛이다. 카톨릭 교회는 이슬람교인들도 역시 존경심을 가지고 대한다.” 이어 카톨릭은 여러 기독교 개신교파와 화합을 이룰 것을 선언하였다.

10. 성경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 정경화 작업은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 소위 ‘모세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이나 ‘토라’로 알려져 있는 율법서는 구약성서의 첫 부분이자 전체 성경의 첫 부분으로 천지창조의 이야기가 첫머리에 등장하고 있다. 율법서가 정경으로 확실히 인정되는 것은 기원전 400년경의 일이다.

- 그 다음으로 구약 중에서 정경화 작업이 진행된 부분은 ‘예언서’들이다. 이 중에 전예언서(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상ㆍ하, 열왕기상ㆍ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정착해서 왕을 세우고 나라가 분열되었다가 결국 멸망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이들은 주로 기원전 650년에서 550년 사이에 기록이 완성되었다고 보여진다. 후예언서(이사야, 아모스, 호세야, 미가 등의 예언들, 예레미야, 에스겔, 요엘, 요나, 스바냐, 학개, 나훔, 하박국, 스가랴, 말라기 등)는 적어도 기원전 165년경의 다니엘 때까지는 정경으로 인정된다. 예언서라는 명칭이 말해주듯 이들 책에서는 ‘예언(혹은 예언자)’이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주는 의미가 아니다. 예언자로 쓰이는 히브리어의 ‘나비’는 ‘하느님의 감동을 받아 하느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 가장 나중에 정경화 작업이 이루어지는 성문서군은 오랫동안 성서라기보다는 종교문학으로 간주되어 내려왔다. 이들 성문서에 속하는 11권의 책들이 완전히 정경으로 확정된 거은 기원후90년경 ‘얌니아 회의’ 때의 일이다. 즉 기원후 90년경 유대교 랍비들의 회의가 팔레스타인 남쪽 얌니아에서 열렸는데 바로 이때 히브리어 성경3부 24책을 구약의 성경으로 확정한 것이다.

- 이러한 구약의 자료는 지금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현재의 구약성경은 기원후 10세기경에 유대인들에 의해 제작된 마소라 텍스트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 기원후 930년 경에 제작된 마소라 텍스트와 2,000여 년 전의 사해문서는 그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한치의 오차가 없다는 점에서 현재 구약의 권위를 입증하는 것을 넘어서 일종의 신비로움까지 전해 주고자 했던 ‘하느님의 섭리’가 작용했던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 바로 실현되리라 믿었던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연되고 막연해지자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현실적 문제로 쏠리게 되었다. 다양한 입장 차이 속에서 교회 조직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서는 구전으로만 떠돌던 말씀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 중요한 일로 떠오르게 되었다.

- 성서의 기록과 정경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 준 결정적 사건이 영지주의자인 마르시온 같은 이들의 출현이었다. 마르시온은 유대인의 구약에 등장하는 창조신과 예수에 의해 알려진 신약의 신은 다르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구약성서의 하느님은 예수를 보낸 ‘사랑의 하느님’보다 열등하다고 주장하였다. 마르시온은 이 때문에 구약성서를 완전히 거부하고 신약의 복음서 중에서도 유대교의 냄새가 나는 것을 모두 삭제해 누가복음과 10권의 바울 서신만을 그리스도교의 정경으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마르시온은 천당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오른편에 앉아 있다고까지 하면서 바울을 추종하였다.

- 사도가 아닌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자기 글을 성서라고 주장하게 되자 교회는 이런 문제의 원천적인 해결을 위해 모종의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신약성서의 목록인 ‘무라토리 정경 목록’이었다.

- 정경 목록에 나타는 책들은 170년경에 작성된 것으로 그 당시 교회가 성경의 올바른 텍스트, 즉 정경으로 받아들였던 책들이다. 성경이 정경화되는 과정에서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 외경과 위경의 문제이다. 외경과 위경은 대부분이 구약과 신약이 빠뜨리고 있는 중간기, 400년간의 기간에 있었던 이야기로 순수한 유대교적 관점에서 유대인에 의해 쓰여진 책을 말한다. 구약의 경전은 기원전 2세기 무렵까지는 거의 경전의 형태가 확정되었다. 경전은 더 이상 함부로 다른 내용을 넣을 수도 뺄 수도 없는 책이 되어 버렸다. 외경과 위경은 이렇게 정경으로 확정된 구약이 대변할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과 시대적 요청을 반영했기에 보다 대중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카톨릭에서는 외경을 정식 경전으로 취급하고 있다.

- 종교개혁자들은 외경을 정경 결정에서 감히 빼내지는 못했어도 외경에도 타락을 유도했던 교리들, 이를테면 천사와 악마의 등장에 대한 언급 등이 많이 있다는 이유 등을 들어 외경을 꺼렸다. 실제로 구약에서는 타락과 관련된 이야기가 다니엘서 정도에 간단하게 언급되어 있는 반면 외경에서는 사탄의 정체, 등장 배경과 활동 내용 등이 자세히 거론되고 있었다.

- 1599년에는 외경이 삭제된 ‘제네바 성경’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1827년 미국에서 외경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성경이 출판된 이후 외경 없는 성경이 보편화되게 된다. 그러나 외경과 위경은 구약과 신약 사이의 공백기인 400년 동안의 시간을 통해 신약에 등장하는 용어들의 역사적 유래를 전달해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그 한 예가 신약에서 종종 사용되는 ‘메시아’란 말이다. 구약성경에서 메시아라는 용어는 왕, 제사장, 예언자와 관련된 의미로 쓰였는데 신구약 중간기의 문헌에서 메시아는 ‘하느님의 임무를 받고 이 세상에 보내진 사람’이란 의미로 바뀌는 것이다.

- 로마 카톨릭에서 외경으로 취급하고 있는 위경은 천사, 사탄, 악령, 앞으로 올 세계, 낙원, 스올, 지옥, 부활, 영생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자신의 이름 대신에 유다족장, 레위족장 등의 거짓 이름으로 자신들의 해석에 대한 종교적 권위를 높이려는 것이 많았다.



❑ 예언자의 나라 2부 - 완전한 역사로의 도전

❍ 코란

1. 신에 대한 예배는 새벽잠보다 달콤하다.

- 이슬람사원에는 ‘종’이 없다. 대신 때가 되면 한 사람이 전망 좋은 첨탑 위에 올라 목청을 가다듬고 선다. “신에 대한 예배는 새벽잠보다 달콤하다.” 그는 예배 시각을 알리는 사람, 즉 무에진이다.

- 성경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읽혀지는 책’이라면 코란은 아마도 ‘가장 많이 외워지는 책’일 것이다.

2. 누가 그의 뜻을 알 것인가?

- 함무라비 대왕이 공손한 자세로 정의의 신 ‘샤마쉬’가 내미는 법전을 받고 있는 그림이 새겨져 있다. 샤마쉬라고 하는 신이 법의 제정자라는 뜻이다. 즉 함무라비 법전은 절대신의 뜻이 ‘계시’를 통해 인간에게 전달된 율법의 형태를 띠고 있다. - ‘절대신’과 ‘계시’, ‘예언’이나 ‘예언자’ 등의 개념은 이슬람을 비롯하여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기독교 등 중동 지방에서 발생한 종교에서 공통되게 자주 등장하는 말로 이들 중동 종교가 갖고 있는 일종의 골격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 수메르족은 태초에 전지전능한 절대신이 이 우주를 창조했으며 처음 창조된 우주는 절대신처럼 완벽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완벽성으로부터 점점 멀어져서 세상은 알 수 없는 혼돈에 빠졌고 갖가지 모순과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래서 신이 만든 태고의 완벽함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곧 수메르인들의 신앙 내용이자 종교

- 인간이 신을 대신해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는 대리인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믿음이 성립하자 하나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인간은 어떻게 절대자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가, 고대 중동의 역사에 등장하는 예언자나 제사장들은 바로 절대신과 인간 사이의 의사 전달을 담당했던 존재들이었다.

- 원시 계시들은 종교 의식을 행할 때마다 낭송되거나 읊조려졌으며 이 가운데 일부는 살아남아 후대에 전승되며 새로운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일부는 계시를 받은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 잊혀져 없어지거나 변형되었다.

- ‘함무라비 법전’은 신의 계시가 문자화되어 현존하는 것으로는 가장 오랜 된 것 중 하나에 속한다. 약간 후대의 것으로 구약성경의 ‘예레미야기’와 ‘에즈라서’에서도 신이 인간에게 전한 계약이나 율법을 발견할 수 있다. 예레미야기에선 신이 유대민족에게 일정한 시련을 준 뒤 그들과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고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을 약속하고 있고, 에즈라서에서는 신이 준 율법에 따라 십일조와 희생 제물을 바치고 지정된 축제일을 지켜 신을 만족시킬 것을 강조하고 있다.

- 신앙의 대상으로 받드는 범신적인 경향을 보였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전통 속에서는 예언자의 위상이 확실하지 않다. 그대신 무당이나 주술사, 점술사 등이 초자연적 존재인 절대신이나 신령, 조상신과의 연결을 담당한다. 그러나 우주를 관장하는 오직 유일한 절대신을 숭상하는 중동 종교에서는 절대신의 계시를 받은 인물은 예언자로 자처하게 된다. 즉 절대신은 예언자를 통해 인간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게 되며 역으로 신의 말씀은 예언자를 통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역사에 등장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중동 지역의 과거사에 등장했던 예언자들은 일정한 공동체나 민족의 운명과 관련하여 절대신의 뜻을 받드는 존재였다. 즉 우리의 무당과는 달리 개개인의 운명에는 깊이 개입하지 않는 것이 이곳 예언자들의 중요한 특징이다.

- 대부분의 예언자는 주로 사회가 불안하여 사람들이 위기감을 느낄 때 등장하곤 했다. - 예언자들은 자신이 거짓 예언자가 아니라 참된 예언자임을 알리기 위해 사생활의 깨끗함으로 순수성을 증명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3. 예언자를 부르는 시대

- 알라는 무함마드 이전에도 아라비아 반도 전역에서 최고의 신으로 알려져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이 막연하게 최고신으로 하느님을 생각하면서도 막상 하느님을 위한 의례나 사원을 두지는 않고 산에 가면 산신을 찾고, 아기가 태어나면 삼신할머니에게 비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하느님은 위험에 부딪히면 얼른 생각나지만 위험이 지나가면 잊혀지기 일쑤인 존재였던 셈이다.

- 아랍 사회의 다신교적 풍습은, 지금도 이슬람교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카바 사원 순례 풍습에서 명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카바의 사원이 있는 메카를 숭배하며 정기적으로 이곳을 순례하는 것은 그때에도 중요한 종교적 행사였다. 그때는 카바의 검은 돌 주변에 당시 각 부족의 신들을 대표하는 수백 개의 우상이 세워져 있었다. 이슬람교가 탄생할 무렵에는 약 360개 정도의 우상이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 메카의 무역업은 당시의 양대 강국인 페르시아의 사산 제국과 비잔틴 제국 간의 오랜 전쟁으로 육지를 통한 무역로가 막히면서 홍해를 거쳐야 하는 인도양과 지중해 연안의 무역을 독점할 수 있게 되었다.

- 메카는 결국 외부와의 교류 확대로 생겨난 여러 내부적 갈등을 해소하고 밖으로는 팽창을 꾀해야 하는 시대적 요청에 직면하고 있었다. 아울러 종교적인 면에서도 아라비아 반도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었다. 빈번한 교역을 통해 유대교, 그리스도교 및 조로아스터교 등의 종교들이 밀려들어왔던 것이다. 아라비아의 토속 신앙을 위협했다.

4.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

- 부유한 상인들은 이승의 삶을 선하게 살아야 저승의 삶을 잘 살 수 있다는 가르침이 부의 축적에 매달리는 자신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더욱이 유일신 알라에 대한 강조는 메카의 카바에 있는 우상들을 파괴함으로써 순례객의 발길을 끊기게 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 쿠라이시 부족 내 어느 씨족원이 무함마드를 공격하면 무함마드의 하심 씨족은 씨족의 명예를 걸고 상대 씨족에게 복수를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온 부족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물론 하심 씨족 사람들도 대부분은 무함마드의 종교를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매우 싫어했지만 함부로 무함마드에게 테러를 감행할 수는 없었다.

- 삼촌 아부 라합은 그의 이런 말에다 “이슬람교가 탄생하기 이전에 죽은 과거 하심 씨족의 조상들도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여 소문을 퍼뜨렸다. 무함마드는 소문 때문에 씨족들의 불만을 사게 되었고 결국 씨족은 그에 대한 보호를 철회했다.

- 쿠라이시 부족의 여러 씨족들이 꾸민 암살 음모를 피해 극적으로 메카를 탈출하여 622년 9월 22일에 드디어 메디나에 도착한다. 이것을 ‘히즈라(이주)’라 하는 데 후에 제2대 할리파가 된 우마르(634~644 재위)가 이 해를 이슬람력의 기원으로 확정하였다. 그런데 당시 메디나에도 두 아랍 부족과 소규모의 유대 씨족이 살고 있었지만 오랜 분쟁에 지친 이들은 종교 지도자인 무함마드를 중재자로 평화를 유지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무함마드가 메디나에 도착한 후, 두 아랍 부족 내 8개 씨족은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무함마드의 이주자 집단을 하나의 씨족으로 인정하여 9개의 씨족이 상호 공수동맹을 체결했다. 후일 ‘메디나 헌장’으로 불리는 이 협약은 종교 공동체의 규범으로 자리잡게 되고 이들 아랍인 부족은 이슬람의 종교 공동체인 움마의 모태가 되었다.

- 이주자들의 생계를 해결하는 것, 대상 행렬과 주변의 정착촌을 습격하게 함으로써 이 과제를 해결했다. 무함마드는 이런 약탈 행위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했다. 즉 그 약탈 행위를 지하드(성전), 그 참여자를 무자히둔(알라의 길에 나선 사람)이라 불러 일종의 선교자로 대접한 것이다. 더구나 그는 지하드의 목표를 무슬림들에게 박해를 가한 쿠라이시 부족의 부유한 대상 행렬에 두었기에 참여자들은 더더욱 죄악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 원정 도중 무함마드는 이교도인 유대교 및 그리스도교 부족들을 만나 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은 후대에 비무슬림 소수파를 피보호 백성으로 맞아들이며 이교도에 관용을 베푸는 모형이 되었다.

5. 세계 제국을 예비한 개혁가

- 무함마드의 행동과 말씀이 책으로 역어졌다. 이 책은 『하디스』, 즉 ‘예언자의 전승’으로 이슬람 세계에서는 제2의 성전으로 받들어지며 이슬람 율법의 원천이 되었다.

6. 예수와 무함마드는 무엇이 다른가?

- 코란에서는 예언자의 의미로 ‘라술’과 ‘나비(예언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나비는 절대신과 직접 대화를 나눈 모든 사람을 뜻한다. 이에 비해 라술은 여기에 절대신의 말씀을 책으로까지 받은 예언자를 말한다. 예를 들면 라술은 모세나 예수 그리고 무함마드 같은 사람이다. 따라서 라술은 나비보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는다.

- 이슬람교에 따르면 모세의 ‘오경’, 다윗의 ‘시편’, 예수의 ‘신약’ 및 무함마드의 ‘코란’은 모두 태초의 말씀을 그대로 전한 것이어서 모두가 같다. 그러나 모세와 다윗 그리고 예수의 추종자들은 태초의 말씀에다 사람의 생각을 첨가함으로써 하느님의 말씀과 인간의 말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코란은 유대교인과 그리스도교인들을 아브라함의 유일신에 대한 종교를 분열시켜 종파를 만든자들이라 비판하면서 그들의 성서인 구약과 신약은 각각 태초의 말씀 전체가 아닌 부분이라고 한계를 짓고 있다. 이에 따라 부득이하게 마지막 예언자가 필요해졌으며 절대신은 무함마드를 전세계 인류에게 보내 순수한 태초의 말씀을 그대로 보전시키게 했다고 보고 있다. 코란은 신의 최종적이고 가장 완벽한 말씀을 수록하고 있는 문헌이며 동시에 무함마드는 최후의 예언자로 그의 뒤를 잇는 예언자는 없다는 것이다. ‘예언자의 봉인’이란 바로 이러한 의미를 갖는다.

- 예언자 무함마드는 단순히 절대자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 주는 문맹자, 즉 복사기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예수가 차지하는 위치와 달리 이슬람교에서의 무함마드의 위치는 명확히 ‘인간’일 뿐이다.

- 622년 무함마드는 메디나로 이주했을 때 유사한 예언자의 전통을 지니고 있던 유대인들이 자신을 예언자로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했다. - 구약을 들먹이며 비유대인은 예언자가 될 수 없다는 등 그의 계시 자체를 의심하고 들었다. 무함마드는 메디나로 이주한 후 1년 반 동안 이들 유대 부족들을 자신의 종교에 끌어들이려고 애썼다. 심지어 그는 메카 시절에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예배하도록 하였고 유대교의 ‘속죄의 날’을 기념하여 이날에는 무슬림도 단식하도록 하는 등 유대교도에게 매우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다.

- 무함마드는 예배를 이끄는 도중에 예루살렘 대신 메카를 향해 기도를 올리라는 계시를 받고 그 자리에서 즉시 예배의 방향을 돌렸던 것이다. 이 외에도 유대인의 ‘속죄의 날’에 행하던 기존의 단식도 폐지하였다. 대신 이슬람력 제9월인 ‘라마단’ 한 달 동안에 매일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식음, 끽연 등 일체의 본능적 행위를 금지하도록 하였다.

- 코란에 따르면 메카에 있는 카바 사원의 창건자는 다름 아닌 기독교 구약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이다. 또 아브라함의 자손은 유대인과 아랍인으로 이들 가운데서 예언자가 나올 것이라는 구절을 들어 무함마드 자신도 예언자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유대인만이 예언자를 배출할 수 있다는 유대교의 교리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7. 코란이 바로 기적이다

- 코란은 아랍어 최초의 문헌이다.

- 무함마드는 그의 사촌이며 사위인 알리에게 “내가 죽은 후에 엄청난 소동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자 알리는 “그러한 재앙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요?”하고 물었다. 이때 예언자의 대답이 이랬다. “알라의 책으로! 그 속에는 너보다 먼저 살다 간 선조에 관한 기록이 있고 너보다 뒤에 올 후손들의 대화가 있으니 너희들에게는 판단의 기준이 되리라....”

- 무함마드의 적들과 경쟁자들은 그에게 진정한 예언자라면 기적을 한 번 행해 볼 것을 요구하곤 했다. 이때 그가 내보인 응답은 “코란 자체가 바로 기적이다. 이렇게 우아한 구절을 단 한 줄이라도 좋으니 지어 보라.”는 것이었다. 코란에는 기족과 관련된 구절이 많지만, 결정적인 부분은 무함마드가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는 구절로 이는 무슬림들에게 일종의 도그마가 되어 있는 부분이다.

- 많은 부족들은 ‘협약 당사자가 죽으면 해당 협약은 무효가 된다’는 아랍 관행을 근거로 무함마드 사후 다시 옛날의 자유분방한 부족 공동체 생활로 돌아가려 했다. - 이슬람 역사에서 ‘변절자와의 전쟁’이라 부르는 이 전쟁의 와중에서 코란을 암송하고 있는 독실한 무슬림들이 많이 전사했다. 이에 우마르(후에 제2대 할리파가 됨)는 코란 구절의 일부가 영원히 상실될 우려가 있다고 보고 초대 할리파 아부 바크르(재위 632~634)에게 코란 구절을 모두 수집하여 책으로 편찬하도록 건의했다.

- 제3대 할리파 우스만의 통치기(재위 644~656)에 시리아와 이라크 출신 병사들이 섞여 있었는데 예배 시간에 함께 코란의 장을 암송하는 과정에서 서로 차이가 났다. 이때의 유일한 편찬 원칙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속했던 쿠라이시 부족의 아랍어 방언을 발음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코란의 국정본으로 불리는 『우스만 코란』이다.

- 교육받은 아랍인들은 주야로 코란을 독송한 덕택으로 아랍어의 변화가 심하지 않았다. 오늘날까지 표준문어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코란을 ‘아랍어를 지켜 주는 파수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실제 아랍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인과 북서부 아프리카의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인 사이에 의사소통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코란은 이들을 하나로 이어 주는 교통로 구실을 한다.

8. 무슬림으로 살아가는 법

- “절대신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 순니파가 정통 교리로 인정하고 있는 육신오행의 여섯 가지 믿음 가운데 가장 중요하며 코란의 핵심이기도 한 것이 곧 이 선언이다. 두 번째는 ‘천사’에 대한 믿음이다. 악마의 개념도 유대교나 그리스도교와 같은 다른 중동 종교와 마찬가지로 등장한다. 코란에서 악마는 이블리스와 샤이탄이라는 두 이름으로 나온다. 성경에서처럼 코란도 절대신께서 천사들에게 아담 앞에 경배하라고 명령했을 때 모두 순종했으나 이블리스, 즉 샤이탄은 순종하지 않고 악마가 되었다고 보는 점이다. 악마를 타락한 천사로 보는 점은 대체로 다른 중동 종교와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세 번째로는 절대신의 사자로, 최후의 예언자로 무함마드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코란은 신의 최종적이고 가장 완벽한 말씀을 수록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다. 다섯 번째 믿음은 ‘최후의 심판’에 대한 것이다. 많은 종교학자들은 이러한 ‘종말론 사상’이 조로아스터교에서 시작되어 다른 중동 종교로 넘어갔다고 말한다. 순니파의 여섯 번째 믿음은 카다르로 ‘나의 운명을 정한 신의 섭리’에 대한 믿음을 뜻한다.

※ 카바의 검은 돌 주변을 들고 있는 메카의 순례자들 : 무슬림에게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카바 사원은 아담 때 처음 세워졌는데 노아의 대홍수 때 사라져 버리자 아브라함이 다시 이를 세웠다고 한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에 대한 진실된 믿음의 증표로 자신의 아들인 이스마일을 제물로 바치려 하지만 하느님은 이를 어린 양으로 대체해 주었다. 감격한 아브라함은 그 장소에 카바의 성소를 세우는데, 천사 가브리엘이 검은 돌을 나르며 도왔다고 한다.

- 대체로 순니파는 이 개념을 ‘인간의 능력과 생명은 신에 의해 제한되어 있고 운명은 절대신에 의해 예정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정명으로 번역한다. 물론 수니파도 인간의 자유 의지를 더러 인정하지만 창조성은 절대신이 갖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므로 인간에게 창조의 능력을 부여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시아파에선 카다르를 강압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 보며 자유 의지를 강조한다. 즉 인간은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지만 보다 적극적인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아파는 카다르 대신 이맘, 즉 최고 종교 지도자를 따라야 한다고 본다.

- 신앙의 다섯 기둥

① ‘신앙의 증언’ ② ‘예배’ ③ ‘종교 납부금’ : 근로소득의 2.5%, 불로소득의 10%를 의무적으로 바친다.

④ ‘금욕적 단식’ ⑤ ‘순례’

9.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완벽한’ 공동체

- 무함마드 다음으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할리파라지만 그들은 이전 아랍 부족 사회의 부족장 선출처럼 움마의 합의에 의해 선출되었고 그들의 지위 역시 공식적으로 다른 무슬림들과 평등했다. 그만큼 할리파들은 암살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 3대 할리파였던 우스만의 살해 세력에 대한 보복 문제를 놓고 4대 할리파였던 알리와 당시 시리아 총독이던 무아위야 사이에 내전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이 과정에서 알린는 살해되고 무아위야는 새로운 우마이야 할리파 조를 창건하게 된다. - 우마이야 조의 집권 세력에 저항하는 정치 집단이었던 알리의 추종자들은 종교운동으로 그 방향을 바꾸기 시작하였다. 이들 무리가 ‘알리의 당’이란 뜻의 ‘시아 알리’로 알려지면서 시아파가 된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시아파는 순니파와 달리 4대 할리파 시대를 ‘이슬람의 정통 시대’가 아니라 ‘할리파의 찬탈 시대’로 규정했다.

- 대부분 순니파로 분류되는 무슬림들은 코란이나 예언자의 언행(하디스)과 예언자 시절의 관행(순나)에서 무슬림의 삶의 원칙(이슬람 성법)을 확인하고 여기에서도 해답이 안 나올 경우에는 할리파를 중심으로 한 움마의 의견 일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 시아파의 활동은 결국 할리파를 중심으로 한 움마의 울타리로부터 이탈한 것이었다. 정치와 종교의 통일 속에 확립된 움마의 단일성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 시아파의 행위는 무슬림들의 일반적인 신앙 행태와는 구별되는 것이었다.

- 순니파가 법체계가 확립되는 이슬람력 3세기 이후로는 무즈타히드의 전통이 닫히게 되었다고 보는 반면에 시아파는 어느 시대에나 자격을 갖춘 법학자는 코란과 하디스의 원칙 위에서 스스로 논리를 전개하여 직접 판정을 내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즉 순니파의 할리파와 달리 시아파의 이맘은 울라마를 능가하는 법의 해석권마저 물려받은 셈이다. 시아파는 첫 번째 이맘이 바로 알리였다고 주장했다. 이맘의 권능이 알리의 후손들에게 전해졌기에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할리파의 계승권자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12번째 이맘이 자손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는데 언젠가는 이 ‘숨은 이맘’이 마흐디(일종의 구세주)가 되어 다시 나타나 진정한 이슬람을 회복하고 온 세상을 다스릴 것으로 시아파(시아파의 주류를 이루는 12이맘파)는 기대하고 있다.

10. 이슬람의 또 다른 얼굴, 이슬람 신비주의

- 절대 다수인 피정복민을 대상으로 이슬람 개종을 실천한 역군들은 바로 수피들이었다. 이들은 엄격한 이슬람의 유일신의 원칙을 적용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정복지의 전통적인 관습과 사상을 관용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쉽게 원주민들의 정서와 결합해 나갔다. 그러나 확산의 과정에서 수피즘에는 미신적 경향이 많이 흘러들었고 이슬람의 고유한 공동체 중심의 신학사상이 퇴조하는 현상이 빚어졌다.

11. 철인이 다스리는 세상을 향해

- 18세기 중엽에 아라비아 반도에서 발생하여 무슬림 세계를 풍미한 와하비,(초창기의 순수한 이슬람으로 돌아가자는 일종의 개혁운동)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수피의 성인 숭배 사상은 물론 울라마가 맹종하던 종교 문제에 대한 ‘권위 있는 전통적 해석’도 비판하였다. 이슬람 신학파와 법학파의 해석 대신 예언자의 교우의 관계인 순나를 중시하며 오직 코란과 순나가 기록되어 있는 하디스의 권위만을 인정했다. 후에 추종자들은 이를 조금 수정하여 이즈마(이슬람력 300년까지 이루어진 움마의 합의 사항)에 대해서는 지켜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여 그것을 의무 규정으로 받아들였다. 이는 하디스의 구절 하나하나가 이 시기의 움마의 합의에 의해서 완성되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이슬람의 원리주의 운동은 와하비적인 청교도 정신과 압두의 살라피야 정신이 결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와하비파는 사우디아라비아를 건설하여 보수 이슬람의 보루가 되었던 반면 원시 이슬람으로 돌아가 현대 세계의 인본주의 사상과도 완전한 조화를 도모하자는 살라피야 운동은 혁명적 행동주의로 발전하였다. 명목상으로나마 1,300여 년 간이나 존재하던 할리파제가 폐지된 것이 두 가지 개혁의 조류에 새로운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 신은 예언자에게, 예언자는 이맘에게, 이맘은 파키에게 그 권한을 이임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호메이니에 따르면 지난 역사에서는 이들 권한을 파키보다 세속의 군주들이 휘둘러 왔다는 것이다. 이 모순을 바로잡아 철인이 다스리는 플라톤의 이상공화국처럼 파키라는 종교인이 다스리는 이슬람식 이상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 호메이니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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