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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203) -올리버 색스- (이마고)

by 이재우 posted Oct 2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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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는 혼자 산다.

나도 혼자 살기에 우리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책이 더 잘 읽혔다.

이는 저자가 서문에서 파스칼의 말을 빌려 이야기 한 것처럼 책을 다 쓰고 나서 무엇을 쓸 것인지를 결정한다는 말로 설명이 가능할 듯 하다.

(책을 다 보고 나서 올리버 색스가 혼자 산다는 걸 알았다.)



이 책에 소개된 뇌에 신경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음악과 그림, 혹은 수학에 천재적인 재주를 보인다. 이것은 우리(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사회인) 입장에서 재주인 것이지, 그들의 입장에선 생존일 것이다. 살기 위한 몸부림일 것이다.

대뇌피질에 기억이 저장되어 있다 한다.

자판을 두드리는 내 손을 둘러싼 피부는 무엇을 저장하고 있을까.

이들도 뇌에서 태어났으면 기억이란 신비롭고 고상하기까지한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었을 텐데, 귤이 탱자가 된 격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해본다.



기억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려봐야만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억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라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의 통일성과 이성과 감정 심지어는 우리의 행동까지도 기억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을.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루이스 부뉴엘- (53)



쇼스타르코비치는 그의 뇌실 관자뿔 부분에 금속 파편인 탄환 부스러기가 있었다고 한다.

파편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면 반드시 음악이 들려왔다고 그는 말했다. 그때마다 새로운 선율이 머릿속에 가득 차 그것을 작곡에 이용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친구 공연에 짐을 날라 준 적이 있다.

수십개의 마이크를 연결하고 콘솔이라 부르는 중앙제어장치에 연결하고 제 자리에 제 코드가 꼽혔는지 하나하나 확인한다.

우리의 뇌도 기타, 드럼, 보컬, 베이스 드럼, 하이햇등 각각의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이 있고 그들을 콘솔처럼 조합해 외부로 뿌려주는 기능을 담당하는 곳이 있는 듯 하다. 그 중 어느 것 하나만 고장이 나도 전체가 이상하게 되는 것처럼, 몸의 어느 곳 하나가 고장 나도 전체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뇌도 그러한 듯 하다.



대뇌피질이 기억을 저장하고 있다고 한다.



내 머리속에 처음으로 새겨진 뇌와 관련된 어려운 용어다.

나의 짧고 얕은 지식으로 이 책의 모든 것을 이해하긴 어렵다. 그냥 이런 일이 있구나 정도만 어렴풋이 느낄 뿐이다. 먼 길에 발을 내디딘지 얼마지 않아 너무 큰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천천히 꾸준히 서두르지 않고, 한발 한발 호흡을 가다듬고 그렇게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