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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소설을 한번씩 더 보았다. 고민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해답을 찾고 싶은 나의 성급한 마음 때문이었다.



작년부터 한 교도소에 약 3개월씩 매주 1회 두시간짜리 음악치료를 재소자들과 함께 해왔는데,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세 군데의 일정을 끝마치고 벌써 네번째 일정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니 그곳에서 만난 재소자들의 유형들도 참으로 다양할 수 밖에. 성폭력사범, 강도, 사기, 그리고 한 기관에서는 참여자 모두가 살인범-살인을 한 사람들이긴 하지만, 이들의 경우 초범이며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격정범'이었다. 오히려 이들을 교도소에서는 안전한 집단으로 분류하고 있었다-인 적도 있었다. 죄질로 인간자체를 분류할 수는 없는 법. 어쨌든 속해있는 공간이 '죄'로써 분류되는 곳이기에 그런 식의 분류로밖에는 이들을 나누고 다룰 수 밖에 없지만, 이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기에, 소설과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여러가지 다양한 성향들, 모습들, 가지고 있는 상처들을 닮고 있었던거다.



유정처럼 세번, 아니 그 이상의 자살시도를 했었으나, 매번 실패하고 병원에서 눈을 떠 자신이 살아있음을 깨달은 순간, 말그대로 '죽고싶은' 좌절감을 느꼈다는, 그래서인지 어떤 상황이든, 어떤 말이든 항상 차갑고 무기력하게, 그리고 건조하게 받아들이는 체념한 듯한 모습마저도 유정과 닮아있던 재소자. 윤수처럼 고아로자라 수소문 끝에 찾아간 어머니에게서 외면당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를 키워갔다는 또다른 재소자, 비단 수감되어있는 재소자 뿐 아니라, 교도관들의 모습에서도 재소자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응당 치뤄야 할 댓가를 치르는 재소자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차가운 시선의 교도관들이 대립적 구도를 이루고 있다.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부분들은, 가슴아프게도 그들이 지닌 상처들의 근본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이 '가족'이라는 점이었다. 윤수처럼 고아로 자란 경우나, 혹은 부모와 가족은 있었으나 늘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밑에서 자랐거나, 바람난 어머니가 자신을 버리고 도망을 갔던 경우들처럼 가장 가까우면서 사람이 성장하는데 있어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가족의 부재와 왜곡은 이들의 성향을 형성하는데 꽤 지대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런 재소자들과 함께 하며 나에게 드는 의문은 '과연 타고난 악이라는 것이 존재할까'였다. 그 의문은 그들과 함께하는 순간순간마다 늘 악착같이 내게 달라붙어 항상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소설과 영화의 기본 방향은 '휴머니즘'에 입각하고 있기에,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반드시 악한 마음의 소유자는 아니며, 그들의 상처를 이해하고 보듬어 감사주어야 한다는 것일테고, 내 경우에서도 재소자들과 함께 보내는 그 시간만큼은 - 평소에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대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많은 법정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살인 등의 죄를 저지른 피고인에 대해 변호인이 정신과적인 접근을 하거나, 불평등적인 환경 등으로 인한 영향을 언급하는 것처럼, 환경결정론에 입각한 시선들은 재소자들을 다룰때 무시하지 못할, 그리고 그들과 인간적인 접촉을 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와 다른 개념인 '싸이코 패스'를 본다면 생각을 달리하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반사회적 성향을 지녀 도덕적 관념에 무감각한, 우리나라에서는 얼마전 연쇄살인으로 세상을 경악하게 했던 유영철과 같은 경우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악행을 반드시 환경학적 요인으로만 돌리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싸이코패스 마저도 환경적 요인에 기인하고 있으되, 다만 상처에 대한 분노 표출이 전자와는 달리 '세상 사람'으로 보편화 되고 내면화되어버려, 악행이 '분노'에 기인한다는 의미가 퇴색되어버리고 악행을 위한 악행으로까지 내면화된 것일까..



또다른 경우로, 수감되어 있는 재소자들 가운데서는 사업상으로 배신을 당해, 상대방은 돈을 횡령하여 도망가고, 파산의 짐을 자신이 짊어진 경우,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사람을 죽인 윗전을 대신하여 감옥에 수감된-영화 속 윤수도 그런 경우다-사람들의 경우 진정한 가해자가 누구인지, 그들은 가해자인지, 아니면 오히려 피해자인지 머리를 쥐어짜게 되기도 한다.



결국 사람들의 사는 단편들 모두가 그러한 것처럼 '죄'에 대한 것도 어느 한가지로 단정지어 결론 내릴수는 없는 것인가보다. 단순한 결론이 불가능할만큼 사람의 사는 방식과 삶의 일장 일장이 너무도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일까.



어떠한 것이 근본적인 악행의 원인으로 작용했는가를 떠나,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본능, 욕구를 통제하고 억누를 수 있는 선험적 도덕성이 있다고 칸트가 말하지 않았던가. 물론 그것을 통제하건 그저 방관하건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지만 말이다. 어찌되었건 악을 행한 행위자체에 대한 처벌은 재소자 모두가 법이 규정한 만큼의 형량을 살고 있는 것이 적절히 타협되어 집행되는 지금의 현실인 것이다. 문제는 행위에 대한 집행은 이루어졌으되, 그들에 대한 시각을 어디에 두느냐일 것이다.



재소자에 대한 시각을 어디에 두는지는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소통'의 문제, 그리고 소통을 통한 '공감'의 문제와 직결되며, 내게 있어서는 '공감'의 문제가 가장 나의 어깨를 짓누르고 머리를 압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흔히들 우리는 공감과 이해를 동일한 개념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 의미에는 분명 커다란 갭이 존재한다. 유정이 윤수의 과거를 들으며 '나도 이해해요'라고 말했을때, 윤수는 그 말을 던진 유정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이해란 상황을 듣고 보았을 때, 도출된 결과가 '일리있다', 혹은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겨주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논리에 기초한 이성적 동참일 뿐, 가슴으로 함께 느끼는 감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차이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소자들을 대하고 소통하는 순간마다 난 이해와 공감 사이에서 항상 방황하고 혼돈에 빠진다.



그렇다면 동정심과 공감은 어떠할까?



감성에 입각한다는 점만을 본다면 동정심은 이성적 이해보다는 한층 공감에 가까이 다가갔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들이 오광록이나 강동원이 죽는 모습에서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도 일종의 '동정심'에서 우러나온 것일테고, 그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그 순간에는 적어도 그들이 죽인 사람들에 앞서 그들의 상황에 공감하고 있는 것일테니 말이다. 측은지심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공감이란 일정부분 동정심에 기초한다고 해도 과언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연민의 감정만으론 내가 그것을 똑같이 경험해 보지 못했다면 완전한 상호 교감을 이끌어내지는 못할 것이 분명하다.



결국 유정이 윤수와 완전한 공감대를 형성하여 서로의 영혼을 함께 치유하는 단계에 오른 것은 자신이 숨겨왔던 엄청난 상처의 과거를 윤수에게 고해하듯 털어놓고, 윤수나 유정이나 아픔에 대해서는 피차간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가 아닌가.



'죽음'이라는 문제만 해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의 아픔에, 단순히 친구 아버지의 죽음 정도만을 겪은 사람은 절대로 공감할 수 없는 것처럼, 가장 완벽한 공감은 상호 동일한, 혹은 서로 상응할만한 경험을 갖고 그것을 오픈하여 나눌 수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난 나의 재소자들과 절대 완벽한 공감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해와 동정심, 그리고 최선을 다한다면 그들의 경험을 내 경험에 대입시키고 상상하여, 간접적으로나마 그 감정에 몰입하거나 역전이 되는 것일게다. 그들과 같은 경험을 가지고 공감하지 못함을 아쉬워 할 수는 없지만-오히려 이건 무난한 삶을 살게된 것에 감사해야 할 문제니까-적어도 우리들이 함께하는 2시간 동안의 행복한 시간에서만큼은 간접적 공감의 경지에 이를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다짐해야 하는 것이 내 숙제인 것이다. 근데 자연스럽지 못한, 인공적으로 노력해야만 하기 때문일까. 그래서인지 그 2시간을 보내고 나면 온몸에서 기가 다 빠져나간 듯이 몸이 흐물흐물 힘 없이 늘어진다.



마무리이니 밝은 마무리로.



윤수는 유정에게 '일주일 내내 목요일만 기다린다. 항상 목요일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며, 나를 비롯한 우리 팀이 함께했던 한 재소자가 우리에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요즘은 수요일(우리가 함께했던 요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말을 들으며 정말 가슴 뿌듯했지만, 그 말을 했던 그 사람의 진짜 심정을 이해하지 못해오다가, 소설과 영화 속에서 같은 말을 하는 윤수의 말에서 묻어나오는 설레임과 첫눈을 기다릴 때의 어린아이와 같은 깨끗함에서 비로소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넸던 재소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어, 더더욱 그 말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결국 그 말 또한 난 100% 공감하지 못했었던 것이다.



이제 얼마후면 네번째 교도소에서 또 다른 새로운 재소자들을 만나게 되고, 난 여전히 어디까지가 이해이고, 어디까지가 공감인지 혼동하며, 때때로 경우에 따라 그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어느정도의 거짓말은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유정이 윤수에게 말했듯이 '난 그쪽이 무서워요'라고, 나의 마음을 아무것도 숨김없이 솔직하게 펼쳐놓고 소통하는 것이 좋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세번의 시행착오와, 많은 머리아픈 고민의 시간을 거치면서 내 자신이 얼마나 많은 성장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민한 만큼,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간접적이나마 대입과 감정이입을 한 만큼, 미세하게나마 개념들에 대한 나의 주관과 사상이 희뿌연 연기를 통과하여 선명하게 성립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http://blog.naver.com/babpoo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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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우 2006.10.15 09:00
    저는 책 뒤에 있는 '작가의 말' 중 '.....박봉을 털어 귀한 소주를 사주셨던 교도관님들.... 이자리를 빌려 감사를 드리고 싶다.' 이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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