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조회 수 202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소설은 두 명의 '살인자'에 관한 이야기다. 한 명은 '자기'를 죽이고, 또 한명은 '타인'을 죽인 살인자다. 얼핏봐선 한명은 빵빵한 집안에 조건상 별다른 문제없이 자란 공주님과에 또 한명은 고아에 어려서 동생을 잃고 별의별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한 밑바닥 인생이니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을 듯 보인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둘 사이엔 극명한 차이점이 나타난다. 문유정은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차에 앉아 수면제 한통을 갑자기 꺼내들어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원샷을 한다. 죽음에 대한 별다른 공포심도,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 마치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이 태양을 가린다는 이유만으로 권총으로 사람을 쏴 죽이고,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그녀에게 죽음이란 그냥 사는 것과 별반 다를것 없는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나 정윤수는 자신이 찌른 파출부가 흘리는 피를 보며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고,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이 살해한 파출부의 어머니가 그런 자신을 용서했을때 진심으로 참회한다. 영화 데드맨 워킹에서 헬렌 수녀의 용서와 감싸안음을 통해 비로소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매튜와 같이 말이다.



근데 이런 양극단에 서서 긴 거리에 놓인 두 사람간에 알고보면 너무나도 밀접한 공통점이 존재하고 있다. 삶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으며, 자신이든 타인이든 누군가는 '죽이는' 행위로까지 자신을 몰고간 근본적 원인이 씻을래야 씻을 수 없는 과거의 치명적 상처와 암울한 환경으로 인한 외상후 스트레스라는 점이다. 유정은 사촌오빠로부터 강간을 당했고, 윤수는 바로 눈앞에서 동사한 동생의 시체를 보았다. 유정은 강간당한 후 오히려 피해자인 자신을 책망하는 냉정하고 차가운 모성을 발견함으로써 엄마에게 버림받았고, 윤수는 자신과 동생을 고아원에 맡겨버린 엄마를 찾아가지만, 역시 외면당한다. 그렇게 큰 상처를 받으면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사람은 무기력하게도 후천적인 심리적 장애에 빠지는데, 공포감이나 환각과 같은 정신과적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며, 두 주인공처럼 그러한 상처들이 극단적'분노'를 일으켜 살인의 행위로써 표출되어 나타나나기도 한다.



그러나 극단적인 공포감이나 환각증상은 남들은 가시적으로 볼 수 없는 내면적인 고통인 반면, 이들이 표출하는 분노의 형태는 외적으로 보이는, 그래서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위이다. 왜 그들은 자신의 분노를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건 삶은 포기 할 수 있어도, 아직까지는 타인으로부터의 따뜻한 시선은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커다란 해를 준 악인이지만, 과거의 상처와 그에대한 기억들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 뿐, 그때 그 상처가 자기들 탓이 아니라는 것에 누군가가 따뜻하게 공감하고, 한 사람의 '진짜' 인간으로서 자신을 바라봐주고 보듬어주는 따뜻한 손길을 절실히 원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필요없다고 외치며 세상과 자신을 단절시키고 자꾸 숨기만 하지만, 실상 그들이 진실로 원하는 것은 따뜻한 공감인 것이다.





따스한 손길이란 그저 머리로 '이해'해주고, 말로 '이해한다' 말해주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공감'해주는 것, 가슴으로 자기와 똑같이 느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슴으로의 공감 없는 타인의 이성적 위로는 그들에겐 도움이 되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공허함만 커질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상처를 오롯이 공감하고 감싸주지 못하는 위로는 유정에겐 의미없는 울림일 뿐이다.



윤수 또한 마찬가지다. 동생의 죽음에 대한 자기의 죄책감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을 때, 유정의 '이해한다'는 말은 그에게 의미없는 언어로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물론 유정의 이해는 이해가 아니라 진짜 공감이었지만 윤수는 겉보기에 부자고 능력있는 유정이 자기의 상처를 함께 공유할 수 없다는 마음의 벽을 지레 쌓고 있었다-. 그래서 윤수는 유정을 향해 '당신이 뭘 안다고 이해란 말을 지껄이냐'며 분노를 폭발시킨다.



결국 '이해'가 '공감'을 넘어 타인에게 드러내지 못했던 과거의 아픔을 고백하고, 완전히 발가벗겨진 정직한 몸을 서로 감싸안고 씻어주는 '공유'의 단계에 도달했을 때, 자신의 존재에 대해 전혀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던 이들은 서로를 통해 자신을 치유하고, 비로소 삶에 대한 의욕을 되찾고, 웃음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소설은 이렇게 대립-공감-치유의 과정을 정직하고 투명하게, 그래서 너무 빤할 정도로 그려낸다. 그러나 언뜻 비정상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들의 사랑의 감정선과 진행과정, 그리고 자기치유의 과정을 화려하지 않고 덤덤하지만 결코 심심하거나 건조하지 않게 표현해내었다. 스토리의 전개가 애초에 펼쳐놓은 책처럼 무반전에 완전히 예측가능한 단순한 전개이기에 자칫 잘못하면 진부하면서도 뭔가 빠진 듯한 공허함을 줄 수 있는 위험인자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지노선을 잘 사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악행이 과연 기독교적으로 '선천적 원죄'를 타고난 인간 본래의 악에 근원한 것인지, 아니면 소설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불행한 환경과 상처로 인한 후천적인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교도소에 출입하면서 재소자들과 일주일에 한번씩 시간을 갖는 유사한 일을 하는 나로서는 재소자들을 대하면서도 늘상 '과연 타고난 악이라는 것이 존재할까'를 고민하면서도 사실 작가의 따뜻한 시선에 공감하고픈 마음이 간절하지만 말이다.



선천적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도 신이 애초에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인간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미리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의미이기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애초부터 악을 안고 태어난, 너무나 힘없고 무기력한 존재라는 생각에 서글퍼지며, 소설에서처럼 환경과 경험으로 후천적으로 발생한 악의 개념 또한 결국엔 자기 통제의 의지가 환경에 굴복한 결과라 서글퍼지니, 과연 인간의 의지나 선험적 도덕성이라는 것이 신 또는 환경만큼의 힘을 가지지 못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나를 괴롭히고 있는 부분 중 하나다.



지나치게 휴머니즘에 의존하고 있다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삶과 죽음, 그리고 존재, 공감, 치유처럼 무겁고, 소중한 가치를 지닌 주제를 주제만큼 가치있게 다루어준 소설이었다. 책을 한 번 더 읽든, 아니면 영화를 한 번 더 보든, 또 고민해봐야할 듯 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56 공지 동물과의 대화 유경화 2006.10.10 1713
655 공지 흰 그늘의 길1(199) -김지하- (학고재) 이재우 2006.10.12 2201
654 공지 26. 앵무새죽이기 정청미 2006.10.14 1519
» 공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첫번째 감상 고명한 2006.10.15 2022
652 공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두번째 감상 1 고명한 2006.10.15 2672
651 공지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김미순 2006.10.16 1972
650 공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김미순 2006.10.16 2311
649 공지 <우리 역사 최전선>읽고...... 1 이재철 2006.10.17 1848
648 공지 생산적 책 읽기 50 1 김미순 2006.10.18 1935
647 공지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201) -돌베개- (박지원) 1 이재우 2006.10.19 1896
646 공지 배려 김미순 2006.10.20 2040
645 공지 27.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정청미 2006.10.22 1446
644 공지 자전거에 꿈을 싣고...... 5 이재철 2006.10.24 2037
643 공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3 리틀 서윤경 2006.10.26 2189
642 공지 '교단일기'를 읽고 김미 2006.10.27 2087
641 공지 몰입의 즐거움 김미 2006.10.27 1839
640 공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203) -올리버 색스- (이마고) 3 이재우 2006.10.28 2053
639 공지 '삶과 죽음을 초월한 사귐 ' 1 이재철 2006.10.30 2075
638 공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2 신지선 2006.10.31 1525
637 공지 공병호의 10년 후, 세계 신지선 2006.10.31 177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 72 Next
/ 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