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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을 거쳐 결과를 얻는 게 아니라 결과를 거쳐 과정을 얻는다.





세계불교사에서 일가족이 모두 성불했다는 기록은 아직 보지 못했다. 물론 거사로서는 인도의 유마 거사, 중국의 방 거사도 유명하지만, 한국의 부설 거사처럼 가족 모두 도통한 경지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월명암은 거사 불교, 나아가서는 가족불교(?)의 성지라고 하여도 결코 과찬의 언사는 아닐 것이다. 월명암에서 이처럼 일가족 성불이라는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세상사 큰일 치고 어찌 사연 없이 이루어진 일이 있겠는가. 가족 성불의 역사에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

아버지인 부설 거사의 영향을 받아 월명은 오빠 등운과 함께 큰 발심을 일으켜 도를 닦고 있었다. 그때 땔나무를 해주는 불목한이 있었는데, 이 불목한이 월명의 미모에 그만 반해 버렸다. 불목한이 계속 접근해 오자 월명은 오빠와 의논을 한다. 성적인 요구를 들어줄 것인가 아니면 물리쳐야 할 것인가.

등운은 불목한이 그렇게 소원한다면 한 번쯤 허락해도 좋다고 했다. 그리하여 월명은 불목한에게 몸을 내맡겨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등운은

그 일에 대하여 누이 월명에게 소감을 물었다.

“허공에 대고 장대를 휘두르는 것 같다.”

얼마 후에 불목한이 다시 요구한다. 이번에도 등운은 동생에게 들어주라고 하였다. 오빠는 월명에게 두 번째 소감을 물었다.

“진흙탕에서 장대를 휘젓는 것 같다.”

그 뒤에 불목한은 또다시 요구를 해 왔다. 이번에도 월명은 오빠 등운의 허락을 받고 불목한에게 몸을 허락하였다. 세번째로 오빠가 소감을 물었다.

“굳은 땅에서 장대가 부딪치는 것 같다.”

처음에는 허공이었다. 그 다음에는 진흙탕이었다. 다시 굳은 땅에서 장대가 부딪쳤다. 시간이 갈수록 촉감이 점점 강해진 것이다. 촉감이 강해진다는 것은 성적 쾌감이 강해짐을 의미한다. 월명의 이 말을 듣는 순간 등운은 마음속으로 월명을 이대로 버려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운은 월명에게 “깨치지 않으면 죽는다”고 결단을 요구했다.

결단이란 불목한을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성욕으로 치닫느냐 아니면 성불의 길로 갈 것인가. 두 갈래의 갈림길에서 월명은 불목한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숯불이 새빨갛게 피어오를 무렵, 월명이 불목한에게 숯불을 골라 달라는 부탁을 한다. 월명의 부탁을 받고 불목한은 무심코 허리를 굽혀 아궁이 안에 고개를 들이밀고 숯불을 고르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 때 월명이 그의 몸을 힘껏 아궁이 안으로 밀어 넣었다. 불목한이 아궁이에서 나오려고 하자 등운이 발로 차서 못 나오게 다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등운은 월명에게 비장하게 말했다.

“살인자는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법, 이제 우리가 제도받는 길은 깨치는 것뿐이다. 지옥이냐 깨치느냐, 두 길밖에 없다.”

아궁이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곳이 바로 월명암이다.

(275-277)





양기가 가득 차면 색에 대한 생각이 나지 않고, 기가 가득 차면 먹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고, 정신 기운이 충만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310)





정말 잠을 자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난 6일이 한계였다.

6일째 되던 날 퇴근 후. 분명히 난 누운 기억이 없다. 근데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이불까지 펴고 잠들어 있었다.

내 정신에 기운이 들어오려면 아직 멀었는가 보다.





나는 혜공 스님과 사흘간 같이 지내게 되었다. 흙으로 지은 토굴이며 장작으로 불을 때는 방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사진에 나오는 화전민들 사는 집같이 생겼다. 각종 한약재를 수십 개의 주머니에 넣어서 벽에 걸어 놓았던 장면이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낮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밤이 되자 나는 옆방으로 옮기려고 했다. 그러나 스님은 같은 방에서 같이 자도 좋다는 것이다. 수행자들은 대체로 속인과는 같은 방에서 오래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속인들은 고기를 먹어서 몸에서 냄새가 많이 날 뿐만 아니라 번뇌에서 오는 탁한 기운이 몸에 절어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은 느끼지 못하지만 산에서 산나물만 먹고 정갈하게 사는 산사람들은 이런 탁한 냄새를 예민하게 감지해 낸다.

이런 상황을 대충 짐작하고 있는 나에게 ‘함께 있어도 좋다’는 스님의 한마디는 그야말로 엄청난 호의로 느껴졌다. 그 시간이 아마 저녁 10시쯤 이었을 것이다. 노스님은 조그만 벽장에서 손수 이불을 꺼내어 내가 누울 수 있도록 깔아 주었다.

“스님도 이불 까셔야죠?”

“나는 조금 앉아 있을 터이니 자네 먼저 자게나.”

어른이 옆에 계신데 먼저 누워 잔다는 게 죄송하기는 했지만 피곤해서 그냥 누웠다. 나는 한참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눈을 떴다. 눈을 뜨고 나서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도 스님은 같은 자세로 앉아 계시는 게 아닌가. 지금이 몇 신데 여태 앉아 계시는가? 손목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장좌불와라고 하는 것이구나.’

나는 조심조심 뒷간에 갔다 온 뒤에 아무 말 하지 않고 다시 누었다. 혹시 방해될까 싶어서. 그러나 잠이 오질 않았다. 가슴이 뛰었다. 장좌불와중인 승려를 내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는 흥분 때문이었다. 누운 상태로 가만히 눈을 뜨고 스님을 지켜보았다. 방은 이미 불을 꺼서 컴컴한 상태였지만 달빛이 은은하게 방문 앞을 비추고 있었다. 스님은 방문 앞을 조용히 응시하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방문의 문틀 위쪽에는 5촉짜리 조그만 전구가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아마도 그 전구에다 초점을 맞추면서 의식을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떠보니 새벽 4시였다. 이때까지 혜공스님은 여전히 그 자세로 앉아 있었다.(311-312)





요즘 나에게 있어 화두는 잠이다.

적게 자고 많은 시간을 쓰고 싶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깨어 있는 시간을 그리 잘 쓰는 것 같지도 않은데 나는 잠 줄이기에 집착한다. 왜인진 잘 모르겠다.

열등감인가.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어야만 가라앉는다. 흙탕물을 보라. 흙이 가라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가라 앉히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오히려 혼탁해진다. 우리 마음도 흙탕물과 같다. 끊임없이 이 생각 저 생각을 한다. 이 생각 저 생각이 쉬어야 한다. 마음을 쉬게 하려면 그 방법은 단순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나무하고 밥하고 빨래하는 생활이 바로 그것이다. 단순 반복이라는 불도저로 복잡난마의 유리 조각들을 깔끔하게 뭉개 버린다. 산속의 단순한 생활은 이처럼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쉬는 것이다. 쉬는 일이야말로 이처럼 의미가 있다. ‘쉬고 또 쉬면 쇠로 된 나무에 꽃이 핀다’는 선가의 경구는 이를 강조한 것이다. 무조건 마음을 쉬어 버리는 무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326-327)





가끔 설거지를 미룬다.

딱히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게으름으로 설거지가 미뤄지는 경우가 있다.

쌓이는 설거지거리를 보며 귀찮음도 같이 쌓인다.

여름에는 이틀만 설거지 거리를 쌓아두어도 조그마한 방을 가득 채우는 이상야릇한 냄새 때문에 설거지를 하게 된다.

그리곤 온 몸에 찾아드는 시원하고 상쾌한 평화.

마음을 쉬게 하려면 몸의 의무를 먼저 다해야 하는 듯 하다.



이 책엔 내가 가본 사찰이 하나도 없었다.

책을 만들기 위해 준비한 자료엔 내가 가본 선택되지 못한 사찰과 내가 듣도 보도 못한 수많은 사찰들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저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사찰들에 어떤 사진과 어떤 글귀가 담겨져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저자는 18년 동안 한.중.일 3국의 600여 사찰과 고택을 현장답사하며 가산을 탕진했다고 했다.

다만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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