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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30 09:00

작가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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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부악문원, 김영하의 연구실, 강은교의 방, 공지영의 방, 김용택의 2학년 1반교실, 그리고 신경숙의 방.

개인적으론 황석영이나 이청준, 조정래, 김지하와 같은 원로급 작가들의 방도 한번 엿보고싶은 욕심이 있었으나, 책이 허락해준 작가들에 만족하기로 했다.



왜 그런지 사람들은 타인의 것을 엿보기를 좋아한다. 집들이를 하면 가장 먼저 집주인의 방을 한바퀴 들여다보고, 공부잘하는 친구가 없을 땐 몰래 그 친구의 가방 안을 들여다보고 싶어하며, 유명한 요리사들을 만나면, 그 사람들의 부엌엔 뭐가 있을지 궁금해한다. 한 분야에서 뛰어남을 소유한 사람들의 창조물을 양산하는 그 '공간'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단지 눈을 즐겁게 하는 것 이상으로, 그들의 공간엔 무언가 특별한 것이 분명 존재할 것이라는 기대감, 그리고 그 특별함을 발견해 낸다면 그것을 모방하고픈 욕구를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거기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우리의 방과 썩 다르게 보이는 것은 보이지가 않는다. 물론 글쓰기 작업을 '감옥'으로 생각하여, 자신이 글을 완성할 때까지 자기 방 문을 감옥의 철창문으로 만들어 달았었다는 '이외수'의 경우처럼 정말로 특별한 방도 있을테지만, 이 책에서 소개된 방에선 단지, 작가들의 방이니 만큼 많은 책이 있다는 점과 특별하다기 보다는 각 작가들의 취향과 그들의 문체와 조금은 연결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들만의 분위기와 냄새가 방에서 묻어나온다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찾을 수 없었다. 차라리 외적으로 풍겨지는 '방 자체'의 독특함을 발견하려면 인테리어 전문가들의 방을 엿보는 편이 더 빠를 것 같다. 그들에게 있어선 외적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업이니까.



앞서 읽어 소개했던 김진애의 '이 집은 누구인가'에서 말했던 것처럼 여섯 작가 각각의 방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방이 바로 그들 소설의 문체와 닮았다는 점으로, 말하자면 사람의 집이나 방은 곧 그 사람이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앞서 읽었던 이정우의 '탐독'과 같이 그들 방에 나란히 열맞춰 꽂혀있는 책들의 제목 속에서는 그들의 사상을 키우고 자기만의 색깔을 갖게 되기까지의 과정들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있어 '방'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주는걸까.

우선적으로 방이란 가족구성원, 혹은 집이라는 한 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타인으로부터 내가 독립할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이다. 사람이 태어나 조금씩 나이가 들어 아기때와 같이 일과의 모든 부분에서 부모의 손을 타지 않아도 될 때 우리는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된다. 즉, 독립의 의미이자, 독립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성장'을 의미한다는 말이된다. 그리고 여섯 작가들의 방과 마찬가지로, 자기만의 공간인 방 안 구석구석을 나만의 물건과, 나만의 개성과 취향이 깃들여 있는 물건이나 책, 사진, 그림들로 채워나가면서 방 하나가 바로 '정체성'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혹은 남녀차별이 심했던 빅토리아 왕조시대의 여류작가였던 버지니아 울프의 책에서 '여자에게는 얼마간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말처럼, 방이란 주체성, 그리고 자존감과도 결부된다.



그리고 우리는 방 안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휴식을 취하며, 혹은 혼자있고 싶을 때 처박혀 은둔을 하기도 한다. 그러는 가운데 내가 나이를 먹는 만큼 나의 방도 나이를 먹어가며 내 내면의 성장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사실 개념만을 놓고 본다면 방이란 그저 하나의 '공간'에 불과하다. 물론 그 말이 맞긴하다. 우리는 그 공간 안에 들어가 있으며, 그 공간 안을 무언가로 채워넣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런 의미를 넘어서 방은 공간과 시간이 공존하는 통합적 차원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방이란 공간 안에 들어가 있으면서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 시간이 계속 누적되고 쌓이면서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물들 하나하나를 통해서도 시간의 연대기를 작성할 수 있게 되니 말이다.

말하자면 방 안에 붙어있는 사진에서도 '저 사진은 10년 전에 찍은 것이고 이 사진은 2년 전에 찍은 것'이라 말하고, '이 책은 중학교 다닐 때 즐겨읽었던 책이고, 저 책은 지금 현재 열독하고 있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 오히려 방이란 시간이 주인공으로, 시간이 만들어낸 공간적 박물관의 개념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새삼스레 내 방을 들여다보게 된다. 700여권 정도 되는 책들이 꽂혀있는 책장에서, 나의 방에서도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30여년의 시간동안 내가 읽어왔던 책들의 역사와 시간에 따라 변화한 나의 호기심 거리를 훑어볼 수 있으며, 중학교때 새로 바꾼 후로 결혼하고 나서도 이것만큼은 새로 사지 않고 고스란히 옮겨가지고 와서 사용하는 나의 오래된 책상에서도 그 앞의 앉아있는 나란 사람의 성장한 몸과 더불어 내면의 변화 또한 함께 느낄 수 있다. 물론 그 시간을 통해 이루어낸 것은 아쉽게도 그리 많지 않지만 말이다.



작가들의 방에서도 그런 것을 엿볼 수 있다. 엉덩이가 오랜시간 의자에 붙어있어야만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작가들이기에 그들의 방에서는 각자의 개성들과 함께 하나의 작품이 나오기까지 치열하게 집필을 해온 작가들의 감성과 노력, 사색의 시간들이 총체적으로 버무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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